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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PICKS] 플랫폼 P 스태프들의 6월 책 추천
2022-06-28 / 김소연, 안원경, 이기원 / 플랫폼 P 운영사무실

[PIC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운영사무실 스태프들이 재밌게 읽은 책을 한 권씩 안내합니다. 6월의 책은 『Los Angeles Palms』,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박 수영장』입니다. 

 

Los Angeles PalmsMarie-José Jongerius Fw:Books│2017

사진책은 영화나 TV 드라마 또는 게임만큼의 몰입감이나 현장감을 제공하진 못하지만, 손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진을 바라보는 경험에는 여전히 나름의 즐거움이 존재한다. 어떤 사진책들은 사진과 사진 사이의 틈을 파고들며 이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며 어떤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정교하게 설계된 디자인으로 ‘책'이라는 형식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형태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진책은 사진 자체의 힘으로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던 어떤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여기서의 ‘다른 세계'란 지구 반대편의 어딘가일 수도 있고,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의 풍경일 수도 있고,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의 뒤집힌 세계처럼 보이는 완전히 다른 세계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소개할 마리-호세 용에리위스(Marie-José Jongerius)의 <Los Angeles Palms>는 나를 잠시나마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사진책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때는 책이 막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정갈한 나무 사진들로 구성된 사진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로 습하다 못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한국의 더위와 맞설 때마다 문득 문득 이 책의 사진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찾아 사진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왠지 액정화면을 통해서는 사진 속 풍경의 뜨겁게 건조한 느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서촌의 사진책방 이라선에 우연히 들렀을 때, 오랜만에 이 책과 다시 만나고서는 역시즌 세일 때 코트를 사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매했다.(아직 이라선에 재고가 남아있다!) 덕분에 올해엔 여름의 습한 기운을 견뎌내야 할 시기가 되자마자, 다시 이 책을 꺼내어 볼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특별한 반전 없이, 제목처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상징적인 야자수 사진들이 정직하게 담겨있다. 이는 ‘다른 세계'라는 말을 쓸 만큼 무척 대단한 장면을 보여주진 않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습하디습한 여름을 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뜨겁지만 건조한 여름'은 분명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다. 에어컨이나 제습기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바짝 마른 느낌으로 아주 쨍쨍한 햇볕과 그 사이를 시원하게 가르는 야자수의 기이할 정도로 길쭉한 줄기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마음도 보송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기원(PLATFORM P 매니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곰출판│2021

이 책을 의식하게 된 건 인스타그램이었다. 온라인 서점을 뒤지며 이미 언뜻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흘려 넘겼다. 그러나 누군가의 피드에서, 누군가의 스토리에서 책의 사진과 추천의 말들이 반복되니 ‘나만 이 책 관심 없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내용을 말하지 않겠다. 절대 찾아보지 말라! 그냥 읽어라!”라며 강요까지 했다. 아니 무슨 보험 광고 속 이순재도 아니고 왜 자꾸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으래? 하지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주문했다. 그리고 읽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19세기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1851-1931)의 생애와, 이를 파헤치는 저자 룰루 밀러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의 삶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구성은 마치 한 권의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각 분야 에세이들이 범람하는 출판계에서 인지도 없는 저자, 과학서라는 소수 분야, 넉넉지 않은 마케팅 예산을 뚫고 알라딘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서사야말로 책의 내용 못지않게 흥미를 끈다. 

사실 이 책을 성공으로 이끈 키맨은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북튜버 ‘겨울서점’은 라이브 방송과 영상 콘텐츠에서 이 책을 소개하며 “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일단 한 번 읽어봐라, 당신의 베스트 책이 될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겨울서점’ 채널이 가진 파워와 함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전법이 퍼지고 퍼져 입소문을 낳은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친구에게 “요즘 그 물고기 책이 재밌다던데?”라는 말을 들은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너도 그냥 읽어봐!” 

안원경(PLATFORM P 매니저)

 

 

수박 수영장│안녕달│창비│2015

올해 유난히 여름이 늦게 온다고 생각했다. 6월 중순까지 일교차가  커서 ‘더위’에 대한 감각에 문제가 생긴 건지, 혹은 지구에 무슨 일이 난 것인지 이상 기온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을 하기 무섭게 흘러내릴 듯한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마 무시한 무기력함을 끌어내는 계절의 변화와 날씨를 온전히 느끼며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겠다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주관적인 생각이다.)

독서가 의지만 있어서 될 일은 아니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 중 하나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내 손과 시선이 머문 책이 있었으니 바로 안녕달 작가의 <수박 수영장>이었다.

책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하늘색 배경에 커다란 수박과 그 안에 몸을 담근 사람이 그려져 있고 책 배는 수박의 과육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으로 칠해져있는데 이런 섬세한 디자인 요소가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수박 수영장이 있는데 개장 준비를 해야 한다면, 개장한다면 어떻게 운영이 되고 분위기는 어떨 것인지’가 주 줄거리라고 볼 수 있다. 그림책이라 역시 감상하는 기분으로 책을 볼 수 있었는데,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체는 책을 보는 잠시 동안 잊고 있던 편안함과 느긋함을 안겨주었다. 

예약 없이는 음식점도 가기 어려운 요즘 같은 때에 휴가 계획을 세우기에 늦었다면,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귀여운 휴가철 기분을 내고 싶다면 <수박 수영장>에 빠져보시길.

김소연(PLATFORM P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