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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

출판사 특성에 맞는 서체 고르기

하형원 디자이너

2020.12.07

서체 디자이너가 말하는 “책과 시너지가 나는 서체를 선택하는 방법”

하형원 디자이너, 출판사 특성에 맞는 서체 고르기 강연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는 다양한 역량이 필요하지만 원고를 형태가 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북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특히 ‘어떤 서체를 사용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작은 로고 하나가 브랜드의 인상을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서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책의 인상이 달라진다. 책과 잘 어울리는 서체를 고르는 방법과 북디자인에서 최근 많이 보이는 서체의 경향성에 대해 현재 업계에서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하형원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레터링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고있는 하형원 디자이너는 ‘서체 디자인’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됴웅체’는 방각본 계열의 세로쓰기 서체로 영웅소설 됴웅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체다. 서체 디자인으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첫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여성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소속이기도 한 하형원 디자이너는 여성 디자이너의 일과 삶에 대한 글을 모은 다섯 권의 책으로 구성된 ‘FDSC.txt Vol.1’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기획과 패키지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컴퓨터 문서 화면에서 텍스트를 입력할 때마다 깜박이는 커서를 모티프 삼아 ‘FDSC.txt’의 로고 타입부터 제작한 뒤 서체로 확장한 사례라고 한다. 모험을 키워드로 한 책을 내는 출판사 린틴틴의 로고 타입은 통통 튀는 밝은 느낌과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표현한 작업물이다. 반대로 조주현 작가의 전시 ‘검지도 어둡지도 않은’의 연계출판물 작업을 할 때는 블랙홀을 다룬 전시 내용에 부합하도록 어둡고 강한 인상을 주는 서체를 전시 타이틀과 출판물 ‘검고 어두운’의 표지에 사용했다고 한다. 다루는 작업물의 내용에 따라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를 고려하고 고유한 서체를 디자인하거나 고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출판 시장에서 눈에 띄는 표지디자인과 자주 활용되는 서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형원 디자이너는 먼저 “경향성을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많이 보이는’ 표지 디자인의 경향을 네 가지 유형으로는 나눌 수 있다. 그래픽이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디자이너 서체를 활용한 디자인, 그래픽 요소를 제한하고 글자로만 디자인을 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레터링을 활용한 표지, 마지막으로 영문 서체를 중심 요소로 활용한 사례가 있다.

 

  먼저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디자이너 개인의 특색이 많이 묻어나는 ‘디자이너 서체’를 활용한 디자인에서 ‘디자이너 서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 서체란 산돌이나 윤디자인 같은 기업에서 제작한 서체가 아닌 개인 디자이너가 기획해 제작한 서체로 상업용으로 제작된 폰트에 비해 디자이너 개인의 기획력과 스타일에 따라 한글 서체의 미학적 요소가 더 잘 드러나기도 한다. 디자이너 서체를 그래픽 요소와 함께 책의 표지디자인에 활용한 최근 사례로는 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를 들 수 있다. 제목에 사용된 서체는 윤민구 디자이너의 ‘블랑이다. “부리 계열이면서 세리프 장식이 돋보이는 서체로, 가로획과 세로획의 대비에서 힘이 느껴지기에 디스플레이에 적합한 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형원 디자이너는 최근 이 서체가 표지의 타이틀 부분에 많이 보이는 이유를 서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윤민구 디자이너의 ‘윤슬바탕체 또한 본문 서체처럼 보이지만 잔잔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너의 뒤에서>라는 책에서 타이틀로 활용된 바 있다.

 

  다음으로 김태헌 디자이너의 ‘평균’이 있다. 서체 자체가 주는 낯선 느낌 때문에 명조 계열의 서체를 사용할 법한 지면이지만 실험적인 느낌을 주고 싶을 때 사용된다. 이처럼 어딘가 처음 보는 듯한 낯선 인상을 주는 글씨도 있지만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익숙한 서체도 있다. 이용제 디자이너의 ‘바람.체’다. 책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목소리를 드릴게요> 등 소설책의 타이틀에 많이 활용된 서체인 ‘바람.체’는 옛스럽고 묵직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통적인 느낌의 서체이지만 심플한 표지에 배치했을 때와 강한 일러스트레이션 위에 배치했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같은 서체라도 어떤 요소와 함께 배치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한다. “때문에 서체의 가능성은 열려있고, 특히 제목 서체는 ‘잘 골랐다’는 정답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하형원 디자이너는 제목 서체는 기획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서체를 활용한다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유도가 높다고 말한다. 앞서 소개한 서체 외에도 한글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듣기도 한 안삼열 디자이너의 ‘안삼열체’, 명징한 인상을 주는 책에서 많이 활용되는 노은유 디자이너 ‘옵티크’, 강한 인상을 각인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편인 함민주 디자이너 ‘둥켈산스’도 있다.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서체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꾸준히 활용되는 ‘클래식’한 서체도 있다. 직지소프트에서 구매 가능한 ‘SM중명조’, ‘SM세명조’, ‘sm세고딕’, ‘SM견출명조’, ‘SM견출고딕’과 같은 ‘SM계열’의 서체다.

 

  그래픽 요소나 그림과 함께 글자를 배치한 사례 외에 글자로만, 즉 타이포그래피를 표지 디자인에 활용한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뉘연 작가의 책 <모눈 지우개>의 표지는 오직 산돌고딕네오 서체만으로 디자인한 사례다. 2019년 젊은건축가상 기획 단행본인 <젊은 건축가 질색, 불만 그리고 일상>의 표지 역시 서체는 산돌명조만 활용했다. 표지 색상도 단조롭지만 서체를 도형처럼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디자인한 사례다.

다음으로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시리즈가 있다. SM견출명조를 표지에 활용한 시리즈로, 강한 인상을 주는 표지 디자인 때문에 “‘SM견출명조체’ 하면 이 시리즈만 생각이 난다.”던 하형원 디자이너는 그러나 책 <어린이라는 세계>의 타이틀을 예시로 들며 같은 SM견출명조체를 활용해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서체를 선택하는 것과 함께 ‘서체를 어떻게 다루느냐’하는 문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책의 표지디자인에 직접 디자인한 글씨인 ‘레터링’을 활용한 사례는 주로 동화책, 에세이 분야에서 많이 보인다. <미쓰 홍당무> 각본집은 손으로 그린 그림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느낌을 살려 책 제목도 디자인한 사례다. 책 <아무튼 하루키> 역시 크레파스로 쓴 삐뚤빼뚤한 손글씨 느낌을 살려 글씨를 디자인했다. 그외 책 제목을 흘려 쓴 듯한 느낌의 글자로 표현한 <우리는 서울에 산다>, ‘V’와 ‘W’란 글자를 반복함으로써 운율감을 부여한 <자기만의 방>등 다수의 사례를 소개한 하형원 디자이너는 “영화계에 비해 출판계에서는 책 표지만을 위해 레터링을 활용하는 사례가 드문 편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격월간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처럼 서체 디자이너가 제호를 직접 디자인한 사례도 있다. “기존 서체를 활용했을 때는 낼 수 없는 미묘한 부분까지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레터링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영문 서체를 중심 요소로 표지에 활용한 디자인도 있다. 책 <대리모 같은 소리>는 제목 서체로는 좌측엔 SM세나루, 우측엔 윤슬바탕체를 나란히 활용했다. 동시에 책의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는  ‘SALE’이라는 영문은 ZC Casual을 활용하여 서체 자체가 하나의 그래픽 요소로 기능한다. 이처럼 국영문 서체가 모두 인상적인 표지도 있지만 국문 서체는 마치 공기처럼 인상을 남기지 않는 동시에, 영문 서체만 도드라지는 사례도 있다. 책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의 표지 디자인을 설명하며 하형원 디자이너는 표지에 사용된 한글 서체인 고딕, 명조는 “표정이 없는 서체에 가깝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뚜렷한 느낌의 영문 서체가 표지의 스타일을 결정짓는 것이다. 영문 서체가 책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 비슷한 사례로는 책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히틀러에 대한 유일한 내부 보고서>도 있다. 출판사 마티에서 펴낸 ‘미학 원전 시리즈’ 역시 로만 계열 영문 서체가 표지디자인에 비중있게 배치된 형태다.

 

  표지 디자인의 경향성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에도 하형원 디자이너는 직접 준비해온 본문 내지 디자인의 예시를 들어 각 요소에 활용한 폰트와 크기까지 실무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했다. 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SM계열’ 서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고있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며 대체해 볼법한 서체를 소개하기도 했다. 부리계열 서체로 뾰족한 느낌과 차가운 인상을 주는 채희준 디자이너의 ‘초설체’가 있으며 안삼열 디자이너의 ‘정인자’는 획에서 단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반대로 같은 부리계열이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원할 때는 산돌 단편선 바탕과 류양희 디자이너의 고운한글돋움을 활용한다. 두 서체는 연필로 눌러쓴 듯한 따뜻한 느낌으로, 감성적인 내용에 어울린다. 뾰족하고 차가운, 단단한, 부드러운 등 마치 글꼴에도 인격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수식어를 동원해 서체 자체에서 풍기는 느낌과 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다채로운 레퍼런스와 함께 설명한 하형원 디자이너는 마지막으로 서체를 고를 때 유용한 툴과 사이트를 소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레터링을 기반으로 다양한 그래픽,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는 하형원 디자이너의 작업물은 hyngw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형원 디자이너 Pick: 서체 고를 때 참고할 만한 사이트와 툴]

1) 산돌 클라우드 서비스 (월 단위, 연 단위 멤버십을 구매하면 16,400 종의 폰트를 사용할 수 있다)

2) 윤 멤버십 (윤디자인에서 운영하는 연 단위 멤버십 서비스)

3) 직지소프트 아카이브 (직지소프트의 폰트가 사용된 그래픽 작업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4) AG Typography Institute (AG최정호 민부리, AG최정호체, AG안상수체 등의 AG 글꼴과 다수의 디자이너 글꼴도 구매할 수 있다)

5) 한글씨 (광고나 영화 타이틀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HG꼬딕씨체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

6) 마켓히읗 (안상열체, 바람.체, 됴웅체 등이 있으며 신진 서체 디자이너들의 서체가 많이 있다)

7) lo-ol Type Foundry (디자이너 이노을과 Loris Olivier가 함께 운영하는 한글, 라틴 계열 서체를 다루는 신진 파운드리)

8) 퓨처폰트 (한글 디자이너의 서체도 입점되어 있는 글로벌 사이트로 개발 단계인 서체라 할지라도 미리 공개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서체를 볼 수 있다.)

9) 마이폰트 (영문 서체 구매에 적합한 사이트로 메뉴 중 이미지를 넣으면 최대한 비슷한 서체를 찾아주는‘WhatTheFont’라는 기능이 유용하다)

10) WhatFont (크롬 확장 프로그램. 크롬에서 확장 프로그램을 추가한 뒤 폰트를 클릭하면 폰트 스펙을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다)

11) 어도비 Type Kit (어도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용자라면 Type Kit에 있는 서체를 어도비 프로그램에서 활성화하여 바로 사용할 수 있다)

12) Type Foundries Archive (전세계의 타입 파운드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로 새로운 서체를 찾고 싶을 때 참고하기에 좋다)

 

 

 

 

 

필자 : 황유미
글 쓰고 책 만드는 프리랜서. 소설집 <피구왕 서영>,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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