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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

기성 출판계 편집자 18년, 8년 차 출판인은 아직도 만들고 싶은 책이 있을까?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2020.12.07

기성 출판 18년, 1인 출판 8년차, “아직도 만들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 에디토리얼 출판사 최지영 대표, 커피브레이크 세미나

 

과학 X 인문 X SF 삼색 실뜨기를 한코한코 정성껏 재미나게 추구하고자 한다.

  Platform P 입주사 소개 자료에 기재된 ‘에디토리얼’ 출판사의 소개 글이다. 짧은 한 줄의 소개 글로 에디토리얼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지만 출판 업계에서 에디토리얼은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출판사로 꼽히곤 한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아홉 권의 책을 출간한 에디토리얼 출판사는 최지영 대표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다. 1인 출판을 시작하기 전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스무 해 가까이 편집자로 일을 하며 다수의 책을 만든 경력이 있는 최지영 대표는 입주자 대상 네트워킹 프로그램인 커피 브레이크 세미나에서 “아직도 만들고 싶은 책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준비해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20년이 넘도록 책 만드는 일을 한 ‘관록의 출판인’도 아직 만들지 못한 책이 있을지, 새로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여전한지 궁금했다.

 

  ‘관록’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다며 겸손하게 말문을 연 최지영 대표는 “지금도 책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만들고 싶은 책이 있다.”고 말한다. 출판사에서 일하며 기성 출판의 책과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고 싶은 책을 마음껏 만들기 위해 시작한 에디토리얼 출판사는 크게 과학, 인문, SF 책을 펴낸다. 그중에서도 주력 출판 분야는 과학 분야이다. 왜 하필 과학 분야인가? 과학서 전문 편집자도 아니었고,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기존 과학책들과는 ‘다른’ 과학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보통 과학책을 쓰는 사람들은 전문 연구자거나 혹은 오랫동안 조사한 지식, 깊은 이해도가 있다 보니 과학책을 읽는 독자는 늘 지식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게 된다.”라고 말한 최지영 대표는 다른 방식의 과학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방향을 설정한 뒤 ‘만들 수 있는 책’을 찾기 위해 기존 출판시장에서 과학 도서의 특성을 파악한 ‘지형지도’부터 그렸다고 한다.

 

  과학책 시장은 크게 네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 규모가 작다. 공식적인 데이터라 할 수는 없지만 업계 내부에서 과학서는 인문서 시장 규모의 십 분의 일 정도로 본다. 둘, 번역서의 비중이 높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과학 도서를 집필하는 작가가 소수였으며, 대체로 번역서 중심이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얘기한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 난도가 높은 지식을 다루기에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높은 진입 장벽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과학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은 늘어나고 있으며, 시장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과학 분야 도서의 판매 실적은 해마다 약진하는 중이다.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이기에 오히려 좋은 과학 도서를 만듦으로써 에디토리얼만의 색깔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던 최지영 대표는 비전공자, 일반인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독서 과정에서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는 과학책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런 과학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을 위해 세그멘테이션 전략을 사용해보기도 한다. 흔히 출판사에서 도서를 전략적으로 기획하기 위해 사용되는 세그멘테이션은 시장의 수요자를 세분화하는 것으로 각 층의 욕구와 필요를 잘게 나누어 분석하여 어떤 층에 잠재 고객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다. 예컨대 책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현재 과학책을 읽지 않지만 성장기에 과학 도서를 읽으며 자란 성인 중에서 교양서적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독자로 유인하고자 했던 과학책이다. 어려운 내용을 딱딱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만화로 설명하는 ‘과학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만들어 시각적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과학책의 견고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자 했다. 또한 ‘문과 출신’인 최지영 대표가 과학책을 읽을 때마다 실제로 지식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역사주의적 관점’도 반영되었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발견만 이해하는 대신 발견에 이르는 데에 영향을 끼친 배경까지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함께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렇듯 전략적 접근을 통해 기획한 도서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우수과학 도서로 선정되는 등 일련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와 달리 과학 분야는 저자 섭외부터 어렵다.”고 말한 최지영 대표는 과학 지식을 글로 풀어 쓰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책을 저술하는 ‘전문 연구자인 저자군’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얘기한다. 1인 출판사 에디토리얼을 설립한 후에 만든 첫 책인 <과학 기술의 일상사>는 저자군을 넓힌 사례다. <과학 기술의 일상사>를 집필한 박대인, 정한별은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이라는 과학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박사 과정생이다. 즉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 중에 있는 과학도를 섭외하여 책을 만든 것이다.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에서 과학에 대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들리자 저자로 섭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던 최지영 대표는 <과학 기술의 일상사>를 “과학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라 표현한다.

  “과학책을 오래 읽다보니 가끔 ‘과학자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어쩐지 ‘그들만의 리그’ 같은 위화감도 느껴졌고, 커뮤니티 ‘내부’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과학자가 이해하는 과학과 우리가 책을 통해 읽는 과학은 다르다는 걸 느낀 때부터 과학자들 내부인끼리만 공유하는 과학계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고 한다. 과학 커뮤니티 내부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기에 책은 과학 서적이면서도 에세이 같기도 하다. 과학계에 몸담은 청년 연구자 당사자의 솔직한 이야기를 실었다. 젊은 과학도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과학의 대중화를 바라보는 문제의식 또한 담겨있다. 최지영 대표가 “앞으로도 이렇게 쉬운 과학책은 낼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던 책, <과학 기술의 일상사>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sia Pacific Center for Theoretical Physics, APCTP)에서 선정한 올해의 과학책 10권 안에 들어 ‘과학자 커뮤니티’에서도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과학 X 인문 X SF 삼색 실뜨기를 정성껏 재미나게 추구’하는 에디토리얼 출판사는 주력 분야인 과학과는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문학 책을 펴내기도 한다. 예컨대 <스피노자 매뉴얼 : 인물, 사상, 유산>이 있다. 때문에 “책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듣기도 하지만 “과학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책이다. 과학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 가치 판단을 위해 살피고 성찰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인문학만큼 깊게 연관된 학문도 없다. 과학의 발전을 둘러싸고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피고 성찰하기 위한 책들이 에디토리얼 출판사의 인문, SF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을까? 최지영 대표는 여전히 다음에 만들 책을 찾기 위해 처음 과학책을 만들기 시작할 때처럼 그래프를 그려 분석하고 고민한다. 아직 충족되지 않은 독자의 욕구를 발견하고, 그에 맞는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엔 포스트 코로나, 즉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의 출판물에 대한 고민도 많다.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양 도서에서 ‘진화론’, ‘역사적 유물론’, ‘생태학’, ‘페미니즘’이란 키워드만큼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관록의 출판인’이라는 수식어가 적절치 못하다며 몸을 낮추면서도 최지영 대표는 먼저 길을 가본 선배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들을 옮긴다. “한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입니다. 자주 들었던 말이지만 최근에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최지영 대표가 공개한 이른바 ‘기성 출판 선배들의 라떼’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하나, 출판은 쌓아가는 것이다. 둘, 출판은 토탈파워다. 셋, 원칙과 루틴을 세우고 지켜라. 출판은 ‘쌓아가는 것’이자 ‘토탈파워’라는 말은 곧 시작 단계의 출판사는 최단기간 내에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종수를 발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1인 출판은 예외라 생각했으나 1인 출판 8년 차에 접어들자 선배들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판사는 책 한 권, 한 권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운영하는 힘도 중요합니다.” 에디토리얼 역시 전체적인 힘을 증가시키기 위해 쌓아가는 중이다. 많은 종수로 힘을 쌓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특정 이슈가 생길 때 발 빠르게 책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모멘텀 출판’도 있다. 본인의 체질과 지향하는 바를 고려하여 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칙과 루틴을 세우고 지키란 말은 꾸준히 학습하고 따라잡아야 하는 분야를 선정하고 이를 위한 루틴을 설계하고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본인이 주력으로 삼는 분야에서 나온 신간 도서는 물론 관련된 사회적 이슈와 출판계 동향 등 소식을 얻을 수 있는 창구를 정하고 거르지 말고 꾸준히, 매일 모니터링을 하는 일을 하나의 습관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방점은 ‘매일 꾸준히’다. 매일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비슷한 화면을 보는 것 같더라도 “계속 보면서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정한 제안 같았던 노하우 공유가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혼자 일하는 것, 1인 출판, 파트너와의 협업에 대한 세미나 참여자들의 질문이 뒤따랐다.

 

Q. 루틴을 설계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하다. 트렌드 파악을 위해서는 어떤 루틴이 필요한가?

A. 외국 서적을 번역해서 내는 편집자라면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아마존에 접속해서 책 신간 리스트를 확인할 것이다. 주시하는 작가의 신간 뉴스를 놓치지 않도록 뉴스도 함께 봐야 할 테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찾아 정해두고 매일 빠트리지 않고 보는 행위를 말한다.

 

Q. 계속 같은 업무를 하면서 매너리즘이 왔을 때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A. 출판사에 다닐 땐 이직을 하면서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매너리즘보다는 오히려 1인 출판을 하면서 사고의 빈곤함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하니까 새로운 생각을 하기 힘들때도 있다. 자칫하면 결과물이 늘 고정될 수도 있다. 혼자 일하더라도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Q. 고립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예컨대 네트워킹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A. 일이 바쁠 때에도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주로 출판계 동료들이다. 출판계 강연도 다닌다. 1인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도 있다.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은 편하게 물어보고 도움을 준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지지대가 되어주는 셈이다.

 

Q. 편집자는 작가가 쓴 원고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인 출판사를 준비 중인데 작가에게 원고를 받고 나서 어느 정도까지 피드백을 해야 할지 적정선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A. 이상적인 건 원고를 받기 전에 미리 협의하는 것이다. 저자가 원고를 넘긴 후 출판사 선에서 얼마만큼 개입하게 될 것인지, 만약 출판사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도 있음을 사전에 협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이미 원고가 들어왔다면 무턱대고 손을 대기 전에 아쉬운 점을 솔직하게 공유한다.

  무수히 많은 책을 만드는 동안, 책이 세상에 나오면 책과 함께 주목을 받는 작가와 달리 업무 특성상 작가와 함께 책을 완성하는 일을 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운 편집자 일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한 최지영 대표는 여전히 책 만드는 과정 자체를 좋아하고 작업한 책이 잘 팔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말한다. 2021년에도 만들고 싶은 책을 내면서 쌓아갈 예정이라는 에디토리얼 출판사의 출간 목록과 출간 소식은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http://www.editorialbook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 : 황유미

글 쓰고 책 만드는 프리랜서. 소설집 <피구왕 서영>,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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