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독립서점 ‘노말에이’의 서지애 대표가 소규모 출판사들의 작지만 알찬 책들을 소개합니다. 1편은 <마음 맞는 책을 찾는 기쁨>입니다.
서점 주인은 바쁘다. 이젠 많은 사람이 알겠지만 서점에서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 종종 여유가 생기면 책을 꺼내 들지만 이내 강렬한 생각들이 떠올라 책장을 덮고 만다. ‘그 책 주문해야 하는데……. 재고 채워 넣어야 하는데……. 메일 오늘까지 보내기로 했었지!’
나의 일과는 이렇다. 서점에 출근해 밤새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운송장을 출력한다. 택배 포장을 반 정도하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컴퓨터 전원을 켜고 음악을 재생하고 출입문을 연다. 미처 끝내지 못한 택배 포장을 마친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문이 필요한 책과 상품을 정리해 발주한다. 입고 문의 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길고양이 밥을 주러 잠시 외출한다. 오후 2시 30분이면 출판사에서 보낸 대부분의 택배가 도착한다. 상자를 뜯어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한다. 서점 내부 입고 목록 파일에 들어온 날짜, 수량, 출판사 등 정보를 기재한다. 바코드가 있는 책은 포스 기기에 등록하고, 바코드가 없는 책은 바코드를 만들어 출력한다. 들어온 책을 신간 코너에 정리한다. 온라인스토어에 신간을 등록한다. 블로그에 상품 정보를 올린다. SNS에도 새로운 책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린다. 손님이 산 책은 채워 두고 틈틈이 재고 정리를 한다. 수시로 정리를 해야 주문이 필요한 책을 예측할 수 있다. 분리수거 할 상자를 정리하고 마감을 준비한다. 청소하고 기계의 전원을 모두 끄고 퇴근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업무는 신간 입고다. 어떤 날은 10박스가 넘게 도착할 때도 있는데 할 일이 많아 하루 안에 끝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엔돌핀이 샘솟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얼른 누군가에게 이 책을 알리고 싶다. 미리 읽어보고 판매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출판사, 제작자가 보낸 보도자료와 책 이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입고를 결정한다. 아쉬운 선택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방법이고 지금은 서점과 어울리는 책을 고르는 일종의 비결도 터득했다. 새로 들어온 책은 주로 퇴근길에 가져가 읽는다. 책은 커피나 음식처럼 바로 맛보는 게 아니라 즉각적인 피드백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책이 잘 닿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책을 완독하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겠구나.’
서점 주인은 읽을 책이 끊임없다. 그 중에서 마음 맞는 책을 찾을 때가 있다. 마음 맞는 책이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편하고 오래된 친구 같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날 이해하는 다정한 벗. 물론 글쓴이의 견해와 관점도 뚜렷해야 한다. 그런 책은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싶다. 애서가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을 골랐을 때의 기쁨을 잘 알 것이다. 그런 책을 만났을 때 서점 일을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많이 팔고 싶다. 내 마음을 흔든 『소박하고 근사하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걸어서 만든 그림』 3권을 소개한다.
『소박하고 근사하게』는 두 아이, 남편과의 일상을 섬세하게 기록한 김수경 저자의 두 번째 에세이다. 그는 섬세하고 진지한 태도로 삶을 바라본다. 청소하고 밥을 먹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집을 가꾸고 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내기도 하는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쓰는 말들은 아름다운 옛 노랫말 같아서 자꾸만 밑줄을 긋게 한다.
해무가 가득한 밤. 남편과 바다를 앞에 두고 나란히 섰다. 거리도 깊이나 길이도 그 어떤 경계도 함부로 말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소리로 바다를 보았다. 굵은 비가 바다 위에 떨어지는 소리. 먼 곳으로부터 돋움질한 파도가 물을 움켜쥐는 소리. 힘겹게 움켜쥐었건만 쥔 손틈으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쓸쓸한 소리. / 138p
친정 부모님께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동학사에 벚꽃 드라이브를 갔다던 그해 봄을 기억한다. 걸음이 어려워 차마 내려 볼 생각도 못 하고 차창 밖으로 꽃나무를 지나칠 뿐인데도 참 좋아하셨다고. 그리고 그 가을에 우리는 두 분과 영영 영이별을 했다. 꽃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아름다운데 다만 시간이 그렇지를 못했다. 그렇다는 것을 깊은 슬픔을 맞이하고 나서야 아프게 깨닫는다. / 230p
나는 그의 문장을 좋아한다. 아이가 있어야 그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문장들로부터 사랑을 느끼고 나의 부모와 부모가 된 친구들을 떠올리며 따뜻한 말을 마음에 새긴다.
너를 잘 키우고 싶어서 아빠와 엄마는 밤에 이야기를 참 많이 해.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일을 두고도 생각이 달라서 종종 다투기도 해. 서로 자라온 시간을 되짚어가며 참 좋았던 일과 각인된 슬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과 꼭 해주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그러면서 위로를 하고 반성도 하고 새로 바로 잡으며 우리가 겪어온 많은 것들이 감사한 일이었구나 하고 생각해. / 227p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나의 어린 아이들에 대해 적을 때는 그 날로 돌아가 통통한 볼을 매만지고 땀이 촉촉하게 베인 작은 손바닥에 입술을 부비고 싶었다. 쓴 글자가 자꾸만 과거가 되어 가는 것이 아쉬워 코를 대고 글의 행간에 남아있는 그 날의 냄새와 온기를 훑곤 했다. / 에필로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는 좋아하는 일(예술 경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 던져온 질문과 실험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성공담이 아닌 오답 노트를 통해 누군가 본인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고 정리할 수 있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김해리 저자는 본인과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다.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일, 진로와 직업, 미래 등으로 속앓이하는 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되돌아보았고, 과거로 돌아가 20대 중반의 나에게 이 말들을 전하고 싶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지고 싶다. “네가 지금 모르는 것은 당연해.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즐겨 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 봐. 너를 조금만 기다려 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말은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앞둔 모든 상황에 되새기고 싶은 말이다. / 16p
떠나 왔다고 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없었다고 해서, 그저 그런 경험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초점을 ‘나'에게 맞추는 것. 일의 환경이나 이름은 계속해서 바뀔 수 있지만 나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기에, 결국 직무나 직장의 이름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캐릭터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46p
결과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태도는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만 잊는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며 초조해하기보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 하나하나를 바라보기로. 그 과정들을 진지하게 대해주기로 결심했다. / 115p
예술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예술적인 삶은, 단순히 예술을 소비하는 삶도 아니고,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삶도 아닙니다. 주체가 되어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닮아 있고, 저는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자기다운 철학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138p
『걸어서 만든 그림』은 배현정 저자의 그림에세이다. 초판은 서울 동작구의 동작충효길 7코스 산책로를 걸으며 느꼈던 것들을 기록했는데 개정판에서는 독자들이 그들 주위의 산책길을 떠올릴 수 있도록 특정 장소의 명칭을 제외했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저자가 계획한 일정들이 취소되면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집 주변을 걸으며 시작되었다. 배현정 저자가 산책하면서 본 꽃과 나무, 동물들, 서울의 풍경, 사람들, 귀여운 반려견 바우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안도감을 느낀다. 나 또한 코로나19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심하게 느꼈을 때 자연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다 보면 열린 장소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게 쉽지만은 않다. / 27p
걸어가며 만나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문진처럼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들이 나풀거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해주는 것 같았다. 바위들이 쉼표가 되어 길고 긴 불안과 걱정 사이에 쉬어 갈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 70p
비가 자주 내린다. 그 비에 애써 핀 꽃들이 질까 걱정하지만, 비가 그치면 꽃의 얼굴은 더 선명해진다. / 128p
20대의 대부분을 특별하지 못한 스스로와 다투는 데 썼고, 30대가 된 후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을 써 왔다. 여전히 스스로를 응원하고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터무니없는 일에 실망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심드렁해진 마음의 귀퉁이를 접고,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바우야 산책 갈까?” / 158p
이 3권의 책이 ‘내 마음에만 쏙 들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고민도 한다. 책을 고르고 파는 일이 자기만족에서 끝날 순 없다. 저자, 출판사, 독자에게 길을 만들어주는 서점이 되고 싶다. 책이 좋아 서점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노말에이의 슬로건은 ‘BOOK IS ANSWER’다. 서점을 찾는 모든 이들이 어떤 한 문장에서라도 답을 찾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이 웹진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 맞는 책을 찾는 기쁨을 함께 느끼고 싶다.
서지애│노말에이 대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 일삼일와트의 디자이너.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