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2022년 PLATFORM P 웹진은 출판계의 크고 작은 흐름들을 들여다보는 특집을 매달 선보입니다. 4월 특집글은 글지마 작가의 <책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 2022 커넥티드 북페어 참가기>입니다.
지난 2월, 마포구에서 오랜만에 책 창작자와 독자가 대면하는 북페어가 열렸다. 장소는 홍대 무신사 테라스. 황금 같은 주말에 책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올해로 4회에 접어드는 <커넥티드 북페어>는 을지로에 기반을 둔 독립서점 ‘커넥티드 북스토어’가 2019년부터 진행해 온 대규모 북페어 중 하나이다. 나는 작년에 이어 <2022 커넥티드 북페어>에도 셀러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플랫폼 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입주해 있는 딸세포 출판, 머스트 씨드, 하이픈 후드도 참가팀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번 특집 글에서는 독립출판 작가가 북페어에 참가하며 책을 판매하고, 독자를 만나는 과정을 상세히 풀어내 보고자 한다.
[준비]
독립출판 작가들은 항시 인스타그램을 주목한다. 북페어 참가 신청 안내는 주최 서점의 SNS를 통해 가장 빨리 소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기다리던 <2022 커넥티드 북페어> 관련 공지가 떴다. 나는 재빨리 신청 링크를 클릭했다. 작성 항목으로는 셀러의 도서 목록, 작가 소개, 올해의 신간 여부 등이 있었다. 양식을 다 채워 신청서를 제출하자, 11월에 선정자에 한해 개별 메일을 발송한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이제는 결과 발표만이 남았다.
11월 중순, 감사하게도 합격을 알리는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은 대략적인 부대 행사와 참가비, 장소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었다. 이후로도 메일은 수시로 도착했는데 공식 포스터와 자리 배치도, 정확한 운영 시간 등이 차근히 정해져 배달 왔다. 가장 큰 권고사항은 아무래도 방역 수칙 준수. 운영단은 모든 참가자에게 페어 당일 코로나 검사 결과 확인을 요청했고, 나는 책을 담은 캐리어에 자가 검사 키트를 챙겨 넣었다.
행사 장소는 동선을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북페어는 매년 서울뿐만 아니라 수원, 춘천, 부산, 제주도에서도 열리는데 나는 이동시간이 차로 1시간이 넘는다면 행사장 근처에 아예 숙소를 잡는다. 책의 권수가 적다면 단출한 배낭 차림도 가능하겠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챙길 물건도 많아지는 법이다. 운영단이 보내준 ‘자리 배치도’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혹여 판매 물품 중에 포스터나 액자가 있을 경우, 주최 측에 벽면 공간으로 배치해 달라고 요청해 볼 수 있다.
행사장은 참가팀의 행사 준비를 위해 사전에 개방된다. 나는 책 4종과 엽서, 포장지와 여러 인테리어 소품으로 가득 찬 캐리어 2개를 끌고 금요일에 홍대 무신사 테라스를 방문했다.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텅 빈 공간이 나를 반겼다. 백십여 개의 테이블과 의자만 놓인 이곳이 내일이면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1일 차]
페어 첫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구매했다. 물론 방역 수칙 준수를 위해 건물 내 취식이 불가능하지만, 양옆 참가팀에게 인사드리며 건넬 겸 초콜릿과 사탕, 에너지 바를 한가득 챙겼다. 또한 편의점을 방문한 김에 ATM 기계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최근에는 계좌 이체가 수월하지만, 여전히 현금으로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페어 전날에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두는 편이다.
토요일 오전 11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방문객이 삼삼오오 입장한다. 나는 매대에 놓인 책과, 책의 소개 문구가 적힌 종이의 각을 바로잡으며 옆 부스를 힐끔 쳐다봤다. 이틀간 함께 할 동료 작가님과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상황. 약간의 어색함과 긴장이 감돈다. 나는 아까 구입한 초코 바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좀 이따 작가님 부스도 구경하러 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 정말 준비 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독자는 들뜬 목소리로, 창작자는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다들 어디에 있었는지. 어젯밤만 해도 찬기가 맴돌던 공간이 어느새 책으로 연계한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이런 순간을 목도할 때면, 언제든 책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당찬 포부가 차오르곤 한다.
내 부스는 120번, 무신사 테라스의 가장 안쪽 위치였다. 방문객이 도달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나는 미리미리 책을 포장해두었다. 4권의 책은 각각의 콘셉트에 따라 포장지를 달리했다. 예를 들어 홀로그램 후가공이 들어간 소설 <달에서 내려온 전화>는 반짝이는 표지가 잘 보이도록 OPP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 여행책 <불친절한 여행 에세이_미국 편>은 여행을 앞둔 친구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종이로 겉면을 감싼 후 리본을 묶었다. 물론 포장하기 전에 내지를 꼼꼼히 검수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페어의 셀러는 책의 저자이자 판매자다. 결국 여느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어야 하는데, 문제는 두 역할(저자와 판매자)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이다. 독립출판 작가는 창작물을 자랑하고 싶다. 독자에게 내가 글을 쓴 이유와 표지에 담은 메시지를 설명하며 책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 한다, 판매와 상관없이. 그러나 판매자는 물건을 팔기 위해 움직인다. 수익 창출은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역할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면 어느새 부스 앞에 서 있는 손님을 발견하곤 한다. 지금의 내가 어떤 역할이든 나는 반갑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북페어를 찾은 손님의 독서 성향은 천차만별이다. 책의 날개와 목차를 차근히 살펴보는 사람부터, 페이지를 랜덤으로 펼쳐 보거나 아니면 판매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책에 흥미를 붙이는 사람도 있다. 혹은 말 한마디 없다가 덜컥 “이거 한 권 주세요.” 하며 지갑을 열기도 한다. 그래도 오전에 ‘첫 개시’를 했다면 성공적이다. 나는 책을 구매해 준 독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장부에 검은색 실선 하나를 그었다.
오후 두세 시를 넘기면 방문객이 급작스레 많아진다. 홀로 나온 참가자라면 이 시간을 피해 점심을 먹어두는 것이 좋다. 나는 주로 김밥이나 간단한 샌드위치로 빈속을 달랜다. 그렇게 한차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라지면 곧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다. 나는 장부를 들고 그날의 매출을 확인한다. 어떤 책이 인기가 많았는지, 재고는 적절한지 수량을 체크한다. 마지막으로 매대 위를 천으로 덮어 놓으면 끝. 바빴지만 행복했던 하루가 마무리된다.
[2일 차]
이튿날에는 전날 부족하다 느낀 점을 보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만일 저녁에 내린 어둠 탓에 방문객이 책 읽기를 불편해했다면 알전구나 가벼운 램프를, 휴대폰 배터리가 일찍 닳았다면 보조 배터리를 챙겨오는 것도 좋다. 이렇듯 페어는 끝날 때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래도 마지막 날 아침에는 여유가 감돈다. 참가자는 행사 공간에 익숙해졌고, 하루 만에 친해진 동료 작가들도 더러 있으니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며 실내에 입장한다. 나는 셀러 명찰을 목에 매고 부스로 향했다. 테이블 위를 덮어둔 천만 거둬내면 바로 영업 시작이다.
부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참가자마다 다르다. 노트북을 하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외주 받은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전에 방문객이 적은 틈을 타서 동료 작가들의 부스를 구경하는 편이다. 매년 새롭게 등장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놀랍고 다채로운 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내 책 판매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매주 새로운 주제에 맞춰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크래커스 북>을 진행하는 만큼 북페어 기간에 게스트 섭외에 나선다. 평소 SNS로 눈여겨보았던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며 슬쩍 명함을 건네보기도 한다.
오후가 지나면 몸이 찌뿌둥해 온다. 잠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가도, 방문객이 오면 벌떡 일어나다 보니 허리와 종아리가 콕콕 쑤셔 온다. 그래도 대화를 나눌 때는 행복하다. 오히려 사람이 없을 때, 아무도 내 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외롭고 울적하다.
이런 찰나에 깜짝 등장하는 지인이나 동료 작가들은 단비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침침했던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작가와는 반가움의 인사, 새롭게 친해진 분들에게는 존중의 말을 건네며 우리는 서로의 책을 구경한다. 지인들은 절대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넘치는 인정으로 빵과 디저트, 주스와 커피를 사 들고 행사장을 방문한다. 그러면 나는 잠시 부스를 비워두고 마치 행사의 주최자처럼 북페어를 자랑스럽게 구경시켜 주곤 한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후 7시. 슬슬 축제의 막을 내릴 때였다. 가방에는 어디서 나왔을지 모를 종이와 비닐, 동료 작가들의 책과 지인의 선물이 차곡하게 담겨 있다. 이틀이 흘렀을 뿐인데 이처럼 소중한 인연이 쌓였다.
북페어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독자를 만나, 그들의 요청으로 책에 사인하는 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독립출판물은 작가가 만들지만 이를 구매한 순간부터 독자의 소유물이 된다. 그런데 물건의 창작자로서 흔적을 남겨달라는 소유권자의 부탁은 오히려 내게 가장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나는 매번 북페어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새로운 책을 만든다.
북페어는 창작자에게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자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책을 내느라 나 홀로 고군분투했던 시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들을 뒤로하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다. 이러한 경험은 독립출판 작가가 계속 글을 쓰며, 창작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앞으로 더 많은 북페어에서 책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을 만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글지마│'글쓰기를 멈추지 마'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좋은 소설 쓰는, 참 독한 작가를 꿈꾼다. 꾸준히 1인 출판하며 매주 금요일에는 팟캐스트 [크래커스 북]을 통해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