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운영사무실 스태프들이 재밌게 읽은 책을 한 권씩 안내합니다. 4월의 책은 『채소다방』,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 『사물들(랜드마크)』입니다.
최근 가장 흥미롭게 보는 사진(이 들어간)책은 요리책이다. 물론 당장 어떤 요리를 해야 할 때, 검색결과에서 선택하게 되는 건 결국 백종원 유튜브이긴 하지만, 요리책들은 블로그나 유튜브에 비해 훨씬 세심하게 선택된 메뉴들과 정제된 레시피 그리고 정갈하게 스타일링 된 재료와 테이블, 음식(의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레시피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지면을 구성하는 글과 사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히 요즘의 요리책들은 단순히 레시피만을 전달하기보다는 요리의 재료나 스타일, 조리 방식 등을 통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고 제안하기도 한다. (가령 ‘비건을 위한 요리책’이라거나 이른바 ‘킨포크’ 스타일의 요리 레시피에서부터 별다른 기술과 장비 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자취요리’까지도) 이런 맥락에서 요리책은 독자의 입장뿐 아니라, 출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인데, 이는 어떤 경이로움에 가깝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저자가 글을 쓰고 편집자가 다듬는 과정(물론 이 과정 역시 절대로 단순하다고 할 순 없지만)을 통해 출간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본문에 해당하는 레시피를 개발/검증하고, 그 단계마다 푸드 스타일링을 거쳐 사진을 아름답게 찍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도 구성해야 하는, 여러 가지 제약과 이에 따른 노력과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내가 모르는 어떤 비밀의 요소들 역시 분명 존재할 것이다)
최근에 본 요리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채소다방>(2020)이었다. 요리책과 요리 잡지를 만들던 직장 동료 세 명(장연희, 한혜인, 노영경)이 독립출판으로 출간한 요리책으로, 제목처럼 채소로 만든 차, 음료, 디저트, 브런치 등을 소개한다. 특히 계절별로 접할 수 있는 채소에 따라 차례를 구성해 레시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간 것 없이 모든 메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고민해 개발한 흔적이 느껴져서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소개된 모든 메뉴를 시도해 보고 싶게 만드는 도전정신(!) 역시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기원(PLATFORM P 매니저)
19년부터 22년까지 쉬지 않고 변이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며 세계를 마비시키는 이 지독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언제 끝나는지, 끝이 있긴 한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서점으로 향했고 사로잡힌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바이러스’가 왜 이렇게까지 우리의 삶을 집어삼키게 되었는지를 생태계 구조를 파헤치며 접근한다.
구성은 총 4장으로 ‘환경 재앙의 역사’, ‘팬데믹의 현실화’, ‘기후변화의 위기’, ‘생물 다양성의 고갈‘로 이루어져 있다. 바이러스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고른 줄 알았던 내가 몇 번이고 뒤적거리며 읽었던 장은 ‘기후 변화의 위기’, 와 ‘생물 다양성의 고갈’이었는데,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 변화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 부분을 조금 나눠보자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온대 지방의 평균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열대 박쥐가 온대로 서식 범위를 넓히며 인간과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졌고, 그 상황에서 인간이 박쥐의 터전인 동굴 앞 숲까지 파괴하며 야생 동물들까지 괴롭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박쥐의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온 것이라는 부분이다.
바이러스의 출몰은 인간 때문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어봄 직하지만, 막상 이런 경로까지 알게 되니 나도 공범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와 물, 밟고 있는 땅이 1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을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망각했을 때,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밀려드는 후회를 경험한 적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인간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면 최후로 남는 것은 결국 무엇도 아닌 병든 지구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책 제목처럼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마지막 선택은,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닌 응당 우리가 짊어져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문장을 빌려 마무리해야겠다.
현명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서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로, 이기심과 욕망을 버리고 지구의 생명체들과 손을 잡아야 살아남는다.
김소연(PLATFORM P 매니저)
시 전문 출판사로 이름을 알린 아침달이 내놓은 작고 얄쌍하고 어딘지 연약해 보이는 이 책은 재밌는 조합들을 보여준다. 우선 이 책은 박서련, 한유주, 한정현 작가의 짧은 글의 조합이다. 세 작가는 1980년대에 태어난 여성이라는 정도의 느슨한 공통점으로 묶여 모두 사물, 특히 랜드마크에 대한 글을 두 편씩 선보였다. 더 흥미로운 조합은 각 작가가 선보인 한 쌍의 글이다. 작가들은 모두 『사물들(랜드마크)』에 짧은 소설 한 편과 에세이 한 편을 실었다. 랜드마크를 주제로 앞세우고 있지만 각자의 글에서 랜드마크는 가상의 현실이 되었다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되었다가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변한다.
박서련은 소설 <BLVD>에서 게임 속의 가상현실 공간 ‘BLVD’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캐릭터의 서사를 들려준다. 이어진 에세이 <BLVD Exp.>는 마치 앞선 소설의 해제처럼 ‘랜드마크’라는 주제를 받고 소설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부연한다. 한유주의 글은 두 편은 장르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는 짧은 호흡의 문장으로 뉴욕, 방콕, 서울 등 랜드마크로 가득 찬 대도시를 스쳐 지나간다. 한정현은 소설 ‘지금부터는 우리의 입장’에서 삼풍백화점 붕괴를 간접적으로 겪은 이모와 조카의 이야기를, 에세이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삼풍백화점을 이야기하게 된 배경을 들려준다.
『사물들(랜드마크)』의 앞표지에는 얇은 선으로 기단이, 뒤표지에는 간결한 주두가 그려져 있다. 건물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기둥은 생략된 채, 둘로 나뉘어서. 『사물들(랜드마크)』을 읽어나가는 일은 각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랜드마크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 작가는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더듬어 표지에 생략된 기둥을 스스로 세워보는 일처럼 느껴졌다.
안원경(PLATFORM P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