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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PICKS] 플랫폼 P 스태프들의 5월 책 추천
2022-05-25 / 김소연, 안원경, 이기원 / 플랫폼 P 운영사무실

[PIC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운영사무실 스태프들이 재밌게 읽은 책을 한 권씩 안내합니다. 5월의 책은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입니다.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김겨울, 고수리, 김민철, 신지민, 윤이나, 한은형, 안서영, 하현, 서효인, 김미정, 이수희, 정의석, 임민아, 김현민, 호원숙, 정연주, 박찬일, 김자혜, 이재호, 김민지, 허윤선, 봉달호│세미콜론│2022

나는 평소 충동구매를 많이, 자주 하는 편에 속하지만 나에게 책은 그렇지 않은 편에 속하는 거의 유일한 품목이다. <싫어하는 음식 :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는 정말 오랜만에 아주 순수하게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었다. 일단 기획 자체가 너무나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고,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 역시 명확했기 때문에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음식의 맛을 자각하기 시작한 이래 언제나 매운 것을 안(못) 먹는 사람이었고, 한국사회에서 매운 것을 싫어하는 게 어떤 취향의 영역이 아니라 응당 한국인이라면 갖춰야 하는 자격조건 내지는 개인의 역량과 의지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이 책에는 (당연히)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맵찔이’로 매도되는 이들을 변호해주고 이 잘못된 세태를 꾸짖어줄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기대는 좌절됐고, 이 충동구매는 실패했다. 사실 책을 사기 전 표지 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훓었을 때 어디에도 ‘매운 것을 싫어한다’고 적혀있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글의 내용에서 한 번쯤은 언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기에 22명의 저자 중 단 한 명도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정말로 없었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지만 (물론 저자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와 별개로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22편의 글들은 각자가 싫어하는 것을 애써 합리화하거나 변명하기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박력있게 달려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싫음’들을 만날 수 있다. 특정한 계기로 인해 싫어진 것, 태생적으로 싫은 것, 그것을 둘러싼 상황이나 환경이 싫은 것, 이와 관련된 기억이 싫은 것 심지어는 너무 좋아해서 그 반대급부로 싫은 것까지. 온 세상이 ‘좋아요’에 매달리고 ‘맛집 탐방’이 전 국민의 취미생활이 돼버린 요즘, 싫은 음식을 싫다고 하는 글을 읽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경험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것이야말로 기획의 승리다.

이기원(PLATFORM P 매니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옮긴이)│민음사│2021

시작은 브람스였다. 아직 날이 쌀쌀했던 3월 말, 갑작스럽게 친구가 첼로 연주회 티켓이 두 장 생겼다며 보러가겠냐고 물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청각이 매우 둔한 사람이고 지금까지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라면 모를까 연주회에 참석해본 일은 한 손가락에 꼽는다. 그마저도 거의 100%의 확률로 순간 순간 고개를 꾸벅이며 졸았음을 이실직고한다. 하지만 그나마 악기 중 첼로 소리를 좋아해서인지 아님 그냥 반차가 쓰고 싶어서 그랬는지 친구의 제안에 쉽게 응해버리고 말았다.

연주회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슈만의 곡으로 채워져있었고 중간 휴식 시간 이후 30분 가량 짧게 브람스 곡을 들려주며 마무리되었다. 당연히 슈만과 브람스 곡의 차이를 설명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리 만무했다. 다만 나는 브람스의 곡이 좋았다. 너무 낭만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적당히 소박하고 귀엽고 따듯한 느낌. 비루한 설명이지만 그런 인상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 책장을 쳐다보니 사놓고 읽지는 않았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떡하니 꽂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네, 그렇게 된 것 같네요.’라고 속으로 답하며 사강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브람스의 곡만큼이나 요란하지 않다. 딱히 특별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전개나 구성도 없다. 다만 39살의 폴이 오래 만나 익숙한 중년의 연인 로제와 14살 연하의 잘생긴 시몽 사이에서 갈등할 뿐이다. 전형적인 연애소설의 클리셰가 아닌가 싶은 설정이지만 브람스의 곡만큼이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 좋았다. 폴이 로제로 인해 겪는 좌절감과 불안함, 그렇지만 잃고 싶지 않은 안정감과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권태, 시몽이 주는 자신감과 새로움을 세밀하게 말하는 문장과 장면들이 그러했다. 

시몽이 폴에게 데이트를 청하며 가볍게 던진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폴은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짧게 답한다. 그러나 그 간단한 질문은 시몽이 잊고 지내던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족을 환기시킨다. 책 속 ‘브람스’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의 대체어와 같다. 나는 브람스의 곡이 좋았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좋았다. 생각보다 오래 잊고 있었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안원경(PLATFORM P 매니저)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정다운, 송경호, 홍지선, 신슬기, 박혜진, 오은경│자그마치북스│2020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방문을 열었는데 숨이 턱 막혔다. 분명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방이었는데 말이다. 멍하니 방문을 연 채  들어가지 않고 방 안을 둘러봤다. 책상에 노트며, 펜이며 왜 이렇게 뭐가 많은 것인지, 옷은 왜 저렇게 많이 있는지, 화장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순간 그 물건들을 야금야금 구매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랬지.. 다시 생각해 봐야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들이었다. 스스로 어이없어하면서 넋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힘없이 앉았다. 내가 소유하고 쥐고 있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들인지 돌아보면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그날’에 그치지 않도록 다른 이들의 생활의 지혜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읽게 된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 일상에 작은 습관을 더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아직 나의 모든 생활 습관을 바꿔주지는 못했지만 제목처럼 일상에 ‘작은 습관’을 만들어주며 변화를 주고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노하우가 많다기보다 이미 주변에서 공유되고 있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래서 뭐를 실천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책에 소개된 74개의 제로웨이스트 메뉴얼 중 가장 먼저 소개되었던 ‘쓰레기 기록’을 실천 중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에 개봉하지 않은 기초화장품부터 그저 향이 좋아 사두었던 바디워시, 샴푸가 줄줄이 눈에 보여 ‘그날’처럼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었었다.. 그래서 나도 그날부터 화장실에 비닐봉투를 두고 ‘쓰레기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 주기는 빠른 것 같아 삼 개월 동안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비누 제품들을 쓰고 다 쓴 통을 비닐봉투에 넣어 확인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쓰레기 기록’ 실천은 내가 어느 정도의 양을 사용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고 전처럼 향이 좋아 충동구매하는 버릇을 빠르게 고쳐주었다.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임박한 잠자는 화장품들을 찾아 쓰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당연히 내 지갑도 지켜주었다.)

나의 제로웨이스트 도전기는 물건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날의 깨달음(?)을 계기로 제로웨이스트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않았던 나를 일깨워주고 그 외에도 생활의 지혜를 나눠준 <오늘을 조금 바꿉니다 : 일상에 작은 습관을 더하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 책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김소연(PLATFORM P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