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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OOKS] 서점을 하면서 땅에 묻은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2022-06-13 / 서지애 / 노말에이 대표

[BOO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독립서점 ‘노말에이’의 서지애 대표가 소규모 출판사들의 작지만 알찬 책들을 소개합니다. 3편은 <서점을 하면서 땅에 묻은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입니다. 

 

 

2015년 장충동에서 서점을 시작하고 2번 이사했다. 2016년에 ‘을지로’로, 2020년에 ‘을지로’에서 ‘을지로(현재 공간)’로. 처음 서점을 시작한 곳은 공실이어서 물건을 채우면 됐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있던 공간은 약 30년 동안 다방이었다고 한다. 지방의 버스터미널 옆에 있을 법한 느낌의 커피숍으로 벽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가득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철거다. 철거 업체에서 벽과 천장의 모든 요소를 제거해 보니 예상보다 천장이 높았다. 불이 나서 벽과 천장이 모두 그을린 상태였다.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천장과 벽을 새로 덧대었고 그러다 보니 벽과 벽 사이에 처박혀 있는 소주병, 신문지 등 각종 쓰레기가 많았다. 예상보다 폐기물 양이 많아서 작업 시간이 길어졌다. 쓰레기는 1톤 트럭에 여러 번 가득 채워졌다. 그 폐기물은 모두 매립된다고 했다.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무엇을 파는 곳일까 좋아했을 뿐 거기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어디로 갈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많은 쓰레기가 땅에 묻힌다고? 다시 쓸 수 있는 건 전혀 없는 건가? 그럼 엄청나게 큰 빌딩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아파트 재건축 공사는? 매일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가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좀 더 서점처럼 보이게 공사를 했다. 서점에서 쓰는 가구는 전부 새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철거가 필요했다. 전보다 공간이 넓어졌기에 폐기물이 상당했다. 부수적인 쓰레기도 더 많아졌다. 가구를 만들면서 목공풀을 닦기 위해 수많은 물티슈를 사용했고, 페인트를 칠하면서 붓과 롤러를 여러 번 교체했다. 기후위기와 미세먼지의 심각성, 코로나19를 직면한 후의 이사였기 때문에 죄책감은 전보다 더 컸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몸소 깨달았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든 최초의 변화다. 이런 결심을 한 후 몇몇 책이 서점 문을 두드렸다.

 

 

2020년 3월, 잡지 볼드저널에서 ‘필환경 생활’이라는 주제의 16호가 발간됐다. ‘필환경 생활’ 편이 좋은 이유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운동가, 전문가가 외치는 말보다 이 책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쉽다. 아이의 아토피가 아주 심해서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터전을 옮긴 부부의 인터뷰,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존 과일 유통 방식에 반하는 포장 방식을 선택한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의 인터뷰, 솔직하고 다양한 관점의 에세이⋯. 특히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무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메세지도 현실적이다. 

 

어차피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에 마음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아무리 써도 불은 꺼지지 않고, 누군가는 플라스틱을 바다에 계속 버리고, 동물들은 늑대부터 말리 코끼리, 바다거북, 시베리아호랑이 너나없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나는 코알라와 캥거루의 죽음보다는 돌고래의 죽음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여름에 더운 것을 더 싫어하는 이율배반적인 내 아이를 위해 우리 집이 여름에 너무 덥거나, 겨울에 너무 춥지 않도록 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안락함을 유지하기 위해 동물과 바다와 땅에 민폐를 끼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덜 써야 할 것 같았다. / 43p

 

추천하고 싶은 기사는 ‘당장 실천해볼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실천법’이다. 이 책에선 커피 종이 필터 대신 광목 필터 사용을 제안한다. 매일 아침 필터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집에 남아 있는 종이 필터를 모두 사용하면 이 필터를 구입해 오래 사용할 것이다. 천연 수세미, 비즈랩, 소프넛 등 비닐봉지, 랩, 세제 같은 일반적인 상품의 대체제가 있다는 걸 이 잡지를 통해 알게 됐다.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지는데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후로도 ‘환경’ 관련 출판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업사이클링 도감』은 재활용하기 어려운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 소재 45가지를 소개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페트병, 우유갑, 칫솔, 포장지도 있지만, 예상 외의 소재도 있다. 와인(병), 도자기, 돌 등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와인병이다. 의문이 생겨 기사를 찾아보았다. 

 

빈 술병, 공병 등은 막연히 재활용되고 재사용 될 것이라 생각하기 좋다. 소주병은 약 8회가량 재사용 된 후 공병이 아닌 유리로 사용하지만 와인은 그렇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에서 소비되는 와인의 대부분은 수입된다. / 75p

 

와인병은 재활용이 어렵다. 모두 땅에 버려져 매립된다. 각양각색의 수입 술병도 마찬가지다. (생략) 와인병은 소주병과 비슷한 녹색인데도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이 어려운 병으로 분류된다. / 신혜정, “와인병 재활용? 한국에선 그냥 땅에 묻힙니다”, 한국일보, 2021.10.06 

 

『업사이클링 도감』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천법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의문을 품게 한다. 내가 서점을 하면서 땅에 묻은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 질문은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데 생각을 한 번 멈추게 하는 장치가 됐다. ‘이 상품은 꼭 필요할까? 쓰임새를 판단해보자.’하고 말이다. 그리고 서점 운영 철학을 굳건히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서점에서 책 이외의 문구류도 판매하고 있는데 공책, 다이어리, 포스터, 엽서처럼 종이로 만든 상품이 위주다. 책을 사는 사람이 없을 때는 핸드폰 케이스, 그립톡 같이 더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판매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 덕분에 ‘환경을 위해서라도 판매 품목을 늘리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본업의 회의감을 원동력으로 만든 책도 있다. 『쓰레기 작업 일지』는 디자인을 전공한 3명의 저자(김나연, 우인영, 홍글)가 피스모아라는 업사이클링 팀으로 활동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과잉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피스모아는 쓰레기를 만들어 내기만 하다가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쓰레기를 모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프로젝트다. 주로 헌 옷을 분해해서 실크스크린으로 그래픽을 찍는 작업을 한다. 입지 않는 옷이 패브릭 포스터, 의자 천갈이, 코스터, 카드지갑 등으로 재탄생한다. 또 각자 실천하고 있는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공유한다. 옷은 조금 덜 사고, 간소하게 남김없이 먹고,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제작하면서 콩기름 인쇄, FSC 인증 종이와 재생 종이를 사용했다. 또 잉크를 덜 쓰는 폰트(나눔명조에코)를 사용했다. 책 제작까지 여러 고민이 엿보인다.

 

 

『에코 에쎄이』는 ‘환경’을 주제로 한 에세이 12편을 엮은 책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 ‘사회적으로 옳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서 중요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열두 편의 환경 에세이를 엮었다. 포괄적인 ‘환경’이라는 주제 안에서 개인이 경험하고 사유한 지점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이 책의 필자들은 환경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를 가진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나에게 ‘친환경’은 하나의 취미생활이자 삶의 방식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나의 작은 실천들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보장해줄 것 같다. / 9p

 

환경을 주제로 한 출판물을 소개하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이 든다.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이런 말을 괜히 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들의 공통점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해보자. 그건 나를 돌보기 위해 하는 일이다.’이기 때문에 지금 꼭 전달 해야 할 말이라고 느꼈다. 다음 세대나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변화하자는 말은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으로 서점 운영을 하면서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은 어떤 게 있는지 적어보았다. 

 

*노말에이에서 하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

1. 출판사를 통해 들어오는 택배 박스, 에어캡, 종이 완충제는 재사용한다. 
: 고객이 주문한 택배를 발송하는데 사용하지는 않고, 도서 납품 등 타 업체로 발송할 때 주로 사용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종이 박스 테이프와 종이 완충재를 사용하고 싶다. 

2.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다.
: 박스에 붙은 테이프, 송장은 꼭 제거한다. 

3.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기 전 꼭 필요한지 생각한다.

4. 책이 파손되지 않게 주의한다. 
: 내용을 충분히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겉모습(구겨지거나 찢어지면)이 달라지면 판매가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공간에서 책을 완벽하게 보호할 순 없지만 힘닿는 데까지 깨끗이 관리하고 싶다. 책을 사진 찍는 소품으로만 사용하거나, 책 위에 개인 소지품(가방, 쇼핑백, 핸드폰 등)을 올려 두지 말아야 한다. 책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거칠게 보면 띠지가 찢어지고, 코팅 없는 책은 표지가 더러워질 때 판매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에 대형서점에서 김밥을 손으로 먹은 후 참기름 묻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사람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책을 깨끗하게 보는 행동이 작은 서점뿐만 아니라 대형 서점에서도 똑같이 실천되었으면 한다. 책을 조심스럽게 보는 일 또한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이다. 

 

우리가 살면서 땅에 묻은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그 쓰레기는 아주 오래 지구에 남을 것이다. 당장 지구의 쓰레기를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줄여 나갈 수 있다. 이 4권의 책이 작은 동기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이 더 많이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이 유행하길 바란다.

 

 

서지애│노말에이 대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 일삼일와트의 디자이너.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