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독립서점 ‘노말에이’의 서지애 대표가 소규모 출판사들의 작지만 알찬 책들을 소개합니다. 4편은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입니다.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달랐고, 잘하는 일이나 관심사도 제각각이었다. 바다를 코앞에서 보고 자란 친구, 눈이 쌓이는 걸 처음 본다는 친구, 운동을 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둔 친구,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닌 친구…. 스무 살의 눈에는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우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잎을 활짝 연 식물처럼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귀를 활짝 열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우리를 성장시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줄어들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고 느꼈다. 그럴 땐 인터뷰집을 찾는다. 책 한 권에 다양한 삶의 형태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집을 읽을 때면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태도가 나에게 파장을 준다. 꽤 근사한 일이다. 흥미롭게 읽은 인터뷰집 4권을 소개한다.
『나의 10년 후 밥벌이』는 연남동 책방 헬로인디북스에서 발행한 인터뷰집이다. 이보람 대표는 책방지기 7년 차이자 40대 자영업자로서 가진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또래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기로 한다. '오늘은 그럭저럭 버텨냈는데 10년 후 뭐 해 먹고 살지를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싶어진다.' 나 또한 스스로 자주 하는 질문이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보람 대표는 여덟 명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500일의 세계 여행을 마친 37살 늘샘, 귀촌 4년 차 40살 지혜, 서비스기획 16년 차 45살 준, 엄마 N년 차 40살 은영과 혜영, 마지막 이직을 고민 중인 43살 앨리스, 결혼 13년 차 딩크족 43살 성진과 유나. 저자는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얻는다. 마음을 차근히 들여다보니 책방을 좋아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운영하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먼 미래에는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느슨한 계획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친구들의 인터뷰가 머릿속 뒤엉킨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친구보다 내 이야기가 더 많은 인터뷰 책이 되었지만.) 그동안 침체되어 있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느새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 205p
참고로 이 책은 인터뷰어(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등장한다. 평소 알고 지낸 관계의 인터뷰라 그런지 딱딱하지 않고 편하고 생생한 분위기의 책이 완성되었다.
『INK ON BODY』는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타투를 한 여성을 인터뷰한 책이다. 최근에는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타투(문신) 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타투를 숨기거나 꺼리는 이들이 있다. 출판사 웜그레이앤블루는 사회의 고정관념 안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타투라는 대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타투를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사람이 살면서 후회할 일이 굉장히 많을텐데, 타투도 그중 하나가 되는 것일 뿐이라는 말을 했다." 이 문장이 참 인상 깊었다. 타투는 한 번 몸에 새기면 지우기 어렵다는 속성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본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90년대엔 찢어진 청바지를 입거나 밝은 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타투에 대한 시선도 바뀔까?
타투 한 이유와 사연은 단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싶어서, 자신감을 느끼고 싶어서, 연대하기 위해서, 귀를 뚫는 것처럼 단순히, 예뻐서, 무언가 결심한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은 타투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인터뷰이(인터뷰 대상자)는 충동적인 타투로 후회하기도 하고, 직업 때문에 직장에서 타투를 감추기도 한다. 미성년자에게 타투를 해주는 업체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중요하다. 여러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생긴다.
이제는 가끔 타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그게 좋다. 볼 때마다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몸의 일부고, 함께 세월을 보낸 친구가 된 느낌이다. / 12p
글을 쓸 때마다 보이는 이 타투가 나의 불편과 실패를 계속 기록하게 한다. 내가 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닿아 흔적을 남겼으면 한다. / 168p
막상 해보니 아프지도 않았고, 받았다고 특별한 사람이 되는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보고 싶은 다른 것들을 찾는 동기부여가 되어줬다. (생략)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찾는 과정이고, 삶에 즐거움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라고 느낀다. / 175p
『SPREAD』는 디자인 스튜디오 나이스프레스가 만난 여성 창작자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어와 창작자, 사진가와 편집자 모두 여성의 참여로 만든다. 나이스프레스는 여성 창작자들이 만든 제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나이스숍도 운영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여성 창작자들의 성취와 어려움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루는데, 각자가 하는 일만큼이나 다른 방식의 삶 속에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공감하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SPREAD』는 혼자 일하는 여성 창작자들의 인터뷰집이기 때문에 더 관심 있게 읽게 됐다. 계속해서 시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용기를 얻고 외로움을 덜 느꼈다. 나는 대체적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것보다 혼자 일하는 게 더 잘 맞지만 때때로 사업을 확장 시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 남편과 함께 일하고는 있지만 둘 다 조직에서 일했기 때문에 소수로 일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하며 힘들 때는 비슷한 발자취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게 된다.
처음에는 디자인만 하다가 제가 결국 직접 장비를 써보면서 샘플도 만들어 보고요. 그런 식으로 계속 넓어졌어요. 처음에는 제가 필요한 것,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만든 것이었는데 '나한테 필요하고 유용한 물건이면 남들에게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만들고 판매하게 되었어요. / 37p
꾸준히 시장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지만, 이건 경험으로 메꿀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물건들은 처음 만든 제품에서 놓쳤던 부분을 다음에 채워가듯이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요. / 82p
『우리가 사랑한 얼굴들』은 신유진 작가가 프랑스에서의 삶을 정리하며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은퇴를 앞둔 연극배우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일곱 살 소년, 옛 기억을 품고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선원 등. 인터뷰 속엔 아홉 명의 선명한 목소리가 있고 그들을 만날 때마다 써 내려간 작가의 글 속에는 목소리 안에 담긴 삶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우리가 사랑한 얼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세밀하게 바라본다.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좋았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관해 묻고 경청한다. 귀 기울이고 있는 저자의 얼굴이 생생히 그려진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평생 거쳐 이뤄내는 것이 삶이라면 작고 평범한 삶은 없다. 모든 삶은 커다랗고 고유하다." 우리는 우리가 고유한 삶이라는 걸 종종 잊는다. 때때로 권태롭거나 혼자서 외롭게 커다란 벽에 부딪힌다고 느낄 때 가까운 독립서점으로 가서 마음에 드는 인터뷰집을 몇 권 찾아보길 권한다. 정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될 것이다.
오늘 이 방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 음…. 할아버지의 안경이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저기 어디인가에 있을 거예요. 찾지 않아도 저기 어디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거든요. / 257p
서점을 운영하면서 종종 인터뷰에 응하게 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터뷰는 혼자 속으로만 했던 생각이나 다짐을 정리하는 전환점이 된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글로 쓸 때보다 입 밖으로 뱉을 때 더 신중해지므로 말의 무게가 생겨 의지가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인터뷰집을 만든 저자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처럼 인터뷰이도 그리고 이 인터뷰집을 읽는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인터뷰집은 선순환을 돕는 매력이 가득한 책이다. 인터뷰집에 대해 이렇게 예찬했으니 이번 달에는 인터뷰집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지애│노말에이 대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 일삼일와트의 디자이너.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