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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PICKS] 플랫폼 P 스태프들의 8월 책 추천
2022-08-31 / 김소연, 안원경, 이기원 / 플랫폼 P 운영사무실

[PIC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운영사무실 스태프들이 재밌게 읽은 책을 한 권씩 안내합니다. 8월의 책은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H마트에서 울다』, 『공채형 인간』입니다.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정멜멜 │책읽는수요일│2022

정멜멜 작가는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내 마음속 ‘최고존엄’ 사진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무엇을, 어떤 상황에서 찍더라도 ‘어딘가 때깔이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보여주는데, 가볍게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부터, 텍스처샵에 올라와 있는 상품 사진을 비롯 여행지의 풍경, 인터뷰 사진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 출간된 <채소 마스터클래스>(세미콜론)의 음식/레시피 사진을 비롯해 수많은 커머셜 사진들마저도 그의 시선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청량하고 맑은 기분이 몰려온다. 굳이 비유하자면, 정멜멜 작가가 찍은 새로운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은 마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유레카 모먼트처럼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내가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를 사지 않을 이유는 없었는데, 다만 그사이에 나는 이 책이 정멜멜의 ‘포토 에세이'가 아니라, 그냥 ‘에세이'였다는 사실을 놓쳤다. 책은 앞과 뒷부분은 1도 인쇄로 텍스트만 실려 있고, 중간 부분에만 인쇄용지를 달리해 컬러 인쇄로 사진과 글이 함께 실려 있는 구조로 사진 부분과 텍스트 부분이 분리돼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가 책 설명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막상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은 명확하게 글 중심의 ‘에세이'다. ‘포토 에세이'와는 형식상으로도, 내용 면에서도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저자가 사진가라고 해도, 글의 내용이나 무게감에 있어서 단순히 글이 사진의 보조적인 역할이나 캡션 정도에 머무를 것이 아니었기에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가 섣부르고 편협하게 이 책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글들은 그의 사진처럼 정갈하고 담백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분야를 막론하고 여느 예술가의 에세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비대한 자의식도 감지되지 않아 좋았다. 그래서인지 사실 나처럼 팬심 가득한 독자 입장에선 그의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에 가까웠다. 마치 작가와 긴 시간의 느긋한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사진가로서 활동하기 이전에 어떤 생각과 고민이 있었고 어떤 계기로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게 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중요한 사건들과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사진의 찍을 때 어떤 감정이 오가는지,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면서는 어떤 고민이 생겼는지, 나아가 동시대의 사진가로서 어떤 신념을 가졌는지까지 세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몇몇 문장들은 앞으로 작가의 작업물들을 보게 될 때마다 겹쳐서 떠오를 것 같다. 

  • 이 책을 읽을 땐 텍스처 온 텍스처의 홈페이지(textureontexture.kr)의 ‘Project’ 페이지와 작가의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meltingframe) 열어두고 틈틈히 사진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이기원(PLATFORM P 매니저)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 │문학동네│2022

우리는 가끔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관용어를 쓴다. 관용어는 대개 쓰임이 습관처럼 굳어져 종종 의미와 무게를 퇴색시키기도 한다. 미셸 자우너는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의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해 독자가 한 번쯤 미리 그 슬픔을 상상하도록 이끈다. 미셸의 엄마가 말기 암선고를 받고 생을 거두기까지 걸린 6개월은 치열한 투병과 간병으로 채워졌다. 자우너는 엄마가 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향인 유진으로 돌아오고, 항암을 함께한다. 기약없는 기간 동안 침대 병상에서 엄마와 함께 자고 일어나고 씻기고 먹이고 돌본다. 항암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안 순간부터는 엄마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면서 까무룩 잠에 드는 시간이 길어진 엄마가 잠시라도 기뻐할 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셸은 온 가족이 서울, 부산, 제주를 돌아보는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또 급하게 본인의 결혼식을 준비한다. 아파본 적이 없다면, 아픈 가족을 돌본 적이 없다면 알기 힘든 세계이다. 

미셸과 그녀의 엄마,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기에 너무 멀었기에 이 치열한 과정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미국인인 아빠의 외양을 절반쯤 닮고, 한국어를 드물게 알아듣는 미셸은 한국에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인 자신의 엄마를 떠나 동부로 옮겨갔다. 암 판정이 물리적으로 미셸과 엄마의 거리를 좁혔다면 그들의 심적 간극을 채운 건 한국 음식이다. 미셸이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김치, 미역국, 고구마튀김과 미국 도시 곳곳의 한인마트와 한인식당에서 사먹곤 했던 돌솥비빔밥, 순두부찌개, 해물파전 그리고 엄마가 떠난 뒤 유튜브 ‘망치여사’를 보며 배운 잣죽과 김치까지. 

책의 끝에서 번역자는 <H마트에서 울다>를 영화<미나리>의 모녀버전으로 설명하곤 했다고 말한다. <미나리>의 아름다운 화면과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이 다 보여주지 못한 격렬한 현실이 <H마트에서 울다>에 있었다.

안원경(PLATFORM P 매니저)

 

 

8월의 어느 날, 하루 끝에 지쳐 침대에 눕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불 다 꺼진 적막한 방에서 휴대폰 화면만 밝았는데, 입사한 지 2년이 되었다는 디데이 알림 문구가 앙증맞게 떠있었다. 문득 2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의지와 달리 일이 잘되지 않아 괴로워했던 순간이 교차되었다.

입사 초기에 비하면 꽤 많은 부분에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도 들었는데, '그게 전부일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나는 전과하면서 대학 입학이 늦었다.그만큼 배움에 열정이 있었고, 대학원도 가고 싶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나서 직업 선택은 내가 하겠다는 포부도 있었으나,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친 현실은 생각보다 팍팍하고 아름답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경험이 의미가 있을 것, 대학원은 나중에도 갈 수 있다'라는 누군가의 조언에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입사를 선택했다.

회사라는 찐 현실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전공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은, 관심 있던 분야의 일이었기에 입사 동시에 회사에서도 '잘 배워서 일 잘하는 직원'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목표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결핍 상태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생활에 먼저 뛰어든 친구들로부터 '이때가 아니면 자기 계발은 할 수 없다', '이직의 위험은 포기하고 안주하는 삶이냐, 마지막 모험을 선택할 것이냐' 며 털어놓는 고민을 심심치 않게 들어서일까? 아니면 정말 '일 잘하는 직원'으로 맞춤형 인간이 되려고 했었기 때문일까.

그 어디쯤에 내가 있다고 생각할 무렵  SNS에서 친구가 올린 이 책을 사진을 보게 되었다.

프롤로그에 ' 사회에 나를 맞춰보려고 애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리고 결국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는 사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 많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힌 문장은 마치 내 마음속 고민을 복붙해놓은 것 같았다.

책은 크게 1, 3장은 워크, 3, 4장은 라이프로 나뉘며, 좀 더 세세하게는 1장은 처음 회사원이 되고 느낀 단상들, 2장은 공채형 인간이 결국 퇴사하기까지의 기록, 3장은 내 주위를 미묘하게 공전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4장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군분투하며 헤매는 과정들이 담겨있다. 

한 사람의 진심이 담긴 에피소드로 엮인 이 책은 어떤 노하우를 전하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담담하지만 씁쓸하기도 했고 덕분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가끔 이 사회에서 나란 사람이 투명한 존재로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 불현듯 내 미래가, 내 위치가 불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어본다면 아침저녁 출퇴근 할 때 어깨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소연(PLATFORM P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