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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OOKS] 독특하고 특이한 책
2022-10-12 / 서지애 / 노말에이 대표

[BOO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독립서점 ‘노말에이’의 서지애 대표가 소규모 출판사들의 작지만 알찬 책들을 소개합니다. 7편은 <독특하고 특이한 책>입니다. 

 

 

노말에이가 여러 매체에 소개되면서 코로나19 이전에는 서점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꽤 많았다. 여행이라는 한정된 기간 중에 가고 싶은 곳이 많을 텐데 을지로의 작은 서점을 찾아 주다니!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은 서점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봤고, 조용히 책을 봤다. 서점에서 함께 지내던 고양이 지로를 보면 쓰다듬기 위해 손이 먼저 가거나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면서 예쁘다고 말해주는 점도 인상 깊었다. 공간을 존중해주는 방식이 고마워 외국인 관광객이 오면 유독 반가웠다. 

 

어느 날은 홍콩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손님이 책을 여러 권 샀다. 해외의 서점에 한국에서 만든 책을 소개한다는 점도 좋았지만 유창한 한국어 때문에 그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로부터 3~4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올해 초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판매할 책을 몇 차례 주문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 여행하러 오면서 서점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홍콩의 북카페는 최근 영업을 종료했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전 세계의 서점원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걸까? 공감대가 있어 그런지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홍콩 대부분의 독립 서점은 일부러 온라인스토어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오프라인 서점 공간으로 사람들이 와서 책을 직접 볼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개 온라인스토어를 운영하는 한국의 독립 서점과는 정반대다. 홍콩의 서점 운영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책은 직접 관찰하고 만져볼 때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주로 이메일로 신간 보도 자료를 확인한다. 추가로 관심 있는 책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소개 글을 읽는다. 그러나 분명 한계가 있으므로 종종 대형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본다. 내 취향, 흥미와 정반대인 책도 눈에 들어오고, 표지 디자인이나 주제 등의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확인한 책이 예상과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책 두께나 종이 질감도 살펴보고 조판도 확인한다. 온라인은 내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비슷한 책을 제안하거나 추천하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을 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오히려 편향된 독서 습관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꼭 종이책으로 보고 만져봐야 더 잘 알 수 있는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소설책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책 형태와는 정반대의 생김새로, 흔히 말하는 독특하고 특이한 책이다. 책의 크기와 형태, 제본 방식, 색의 표현, 종이의 촉감 등은 모니터로 보기엔 제한적이다. 실제로 봐야 하는 책을 글로 소개한다는 점이 모순이기는 하다. 그러니 서점에 방문해 샅샅이 살펴봐 주기를 바란다. 

 

 

『Mixing Dogs』는 사진 전문 출판사 piece에서 발행한 사진집이다. 이 책은 20마리의 강아지 사진을 3단으로 재단하여 자유자재로 섞이게 만든 Mix-and-Match Flip Book이다. 강아지의 얼굴과 몸이 서로 뒤섞임으로써 품종견과 혼종견의 경계는 무너진다. 아트레이블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아트디렉터 박현진과 포토그래퍼 이은별의 작업으로 강아지를 외모나 품종이 아닌 반려동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견종 차별 없는 문화가 조성되길 바라는 그들의 생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Mixing Dogs』는 내지가 잘려져 있어서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획 의도를 읽고 나면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다. 

 

 

piece에서 발행한 또 다른 사진집 『Texture of Temperature』도 소개하고 싶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수오 작가의 작업으로 용암 덩어리로부터 탄생한 화산섬 제주의 모습을 표현한다. 사진 작업을 책이라는 형태에서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태초의 제주 같은 모습을 결이 다른 3가지 종이를 사용해 자연의 질감을 생생히 나타내며, 큰 판형(228mm X 330mm) 덕분에 제주의 광활한 풍경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몸의 마음』은 서점 운영자로서도 독특한 형태로 인식하는 시집이다. 의료 차트 형태로 제작했는데, 사람의 장기인 심장, 폐, 위, 간 등의 특징을 소재로 하나씩 시로 써 내려갔다. 저자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에서 『몸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은 권영원 작가가 썼고, 기획과 디자인은 우세계 작가가 맡았다. 우세계 작가는 『공포의 미하악』, 『캐서린 666』, 『유감의 책방』, 『우아한 세계』 등을 만들었는데 중심 밖의 소재를 골라 현실에 잘 녹여내는 능력이 있다. 그가 만든 가상의 세계는 현실의 일부 같고, 주의 깊게 발견한 현실은 가상의 세계 같기도 하다. 그가 기획한 책이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우세계’스러운 형태의 시집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몸의 마음』은 장기의 특징, 진료기록부, 시의 순서로 구성했고,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은 설명서도 포함했다. 

 

 

유어마인드에서 발행한 화가 휘리의 화집 『곁에 있어』도 꼭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아코디언북의 형식으로 제작했다. 지그재그로 접어서 펼치는 방식이기 때문에 병풍책이라고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그림책처럼 페이지마다 그림을 살펴볼 수도 있고, 3페이지씩, 4페이지씩, 또는 전체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등 여러 가지 감상법이 존재한다. 한 페이지마다 홀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전체의 그림 속에선 함께 존재하고 있다. 아코디언북은 자주 접할 수 있는 제본 방식이다. 『곁에 있어』의 차별점은 접혀 있는 페이지를 모두 펼치면 가로가 3m 36cm나 되는 것에 있다. 이 접지 방식 덕분에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해 아이들과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한 휘리 작가의 작업이 잘 표현된다. 여러 겹의 획을 느낄 수 있도록 질감이 느껴지는 수입 종이를 사용해 인쇄했다. 모든 그림의 뒷면에는 주석처럼 표기한 문장이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 읽어도 내용이 이어진다. 읽는 이의 주체적 감상법과 다양한 해석에 대해 활짝 열려 있는 책이다.

 

 

『산본』 저자가 아이와 함께 뒷산을 오가며 받은 감상을 짧은 글과 연필 드로잉으로 풀어낸 작은 크기(125mm x 170mm)의 아트북이다. 산이 둘러싸인 동네 경기도 산본으로 이주하면서 변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레이싱지(도면, 그림 따위를 투사하는 데 쓰는 반투명의 얇은 종이)에 겹쳐지는 그림들 사이로 문장이 이어져 풍경의 끝에는 글이 맺어진다. 농담(濃淡)이 다른 이미지들이 중첩되면서 잔상 같은 장면을 만든다. 산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산을 바라보는 풍경 같기도 하다. 다정한 문장들은 그림과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트레이싱지에 인쇄하지 않았다면 이런 감상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독립서점에서는 저자들이 손수 실로 엮은 책을 접할 기회가 많다. 책을 낱장으로 인쇄한 후 반으로 접어 구멍을 뚫고 실로 꿰매는 작업인데 손수 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게 된다. 수제본한 책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책은 김미래 작가의 『모공: 무덤』이다. 내지의 종이 크기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맨 앞장과 이어진다. 『모공: 무덤』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아트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 속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야기가 종이의 형태와 크기에 맞게 변주되어 흐른다. 

 

 

이번에 소개한 여러 가지 형태의 출판물은 모니터, 핸드폰으로 볼 것이 아니라 꼭 실물로 봐야 한다.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하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의 질감을 만져보고, 손으로 꿰맨 형태의 제본 방식을 살펴보고, 책의 크기와 무게도 느껴봐야 한다. 이러한 형태는 저자의 의도 또는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책의 물성을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느껴보길 바란다. 

 

책도 그림과 다를 바 없다. 디자이너가 치밀하게 디자인한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책의 외형도 얼마든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북디자인에도 균형, 비례, 통일, 조화 같은 요소가 안받침 되어 있다. 북디자인이 아름다운 책은 소장하고 싶게 만들고, 독서욕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애써 디자인한 책이 조형적으로도 감상되었으면 싶다. 그것이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저장되는 디지털 시대에 물질로서 책을 즐기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민영,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아트북스, 2015, 4p.

 

 

서지애│노말에이 대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 일삼일와트의 디자이너.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