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된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아카이브 [SPECIAL] 총서의 몇 가지 풍경들
2022-10-14

 [SPECIAL]

2022년 PLATFORM P 웹진은 출판계의 크고 작은 흐름들을 들여다보는 특집을 매달 선보입니다. 10월 특집글은 지난 8월 25일 PLAFORM P에서 열린 2022 출판문화 심포지엄 <흐르고 모여 이어지는 책들 - 총서의 지형학> 중 PLATFORM P 센터장 김현호의 강연 ‘총서의 몇 가지 풍경들’을 다듬은 <총서의 몇 가지 풍경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PLATFORM P의 센터장 김현호라고 합니다. 이 시간은 2022 플랫폼 P 심포지엄 <흐르고 모여 이어지는 책들 – 총서의 지형학>의 마지막 세션입니다. 보통 듣는 분들이 기대하시는 마지막 세션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망라하거나 마치 별책부록처럼 조금쯤 다른 이야기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건 총망라보다 별책부록에 가깝습니다. 

저는 오늘 몇 가지의 지점을 좀 빠르게 건드리며 지나갈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눈여겨볼 만한 국내외 총서들의 사례들도 말씀을 드리고, 왜 우리가 총서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얘기하고 실제로 총서에서 책이 오랜 시간을 견딘다고 할 때 중요한 문제들은 무엇인지, 출판사가 총서 디자인과 제작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하는 잡다한 부분입니다. 

일단 저를 포함하여 이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PLATFORM P의 스태프들도 ‘총서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했을 때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총서’는 특정한 작가들의 글이나 책을 모은 선집일 수도 있고, 한 작가의 책을 모은 전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총서라고 할 때 상상하는 책은, 소수의 기획자들이나 출판사가 여러 명의 작가들을 모아서 일정한 탄착군을 지닌 독자들의 취향과 방향성에 맞는 책들을 쏘아나가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총서의 양상은 다양합니다. 한자만 봐도, ‘총서’라는 말의 ‘총’자는 ‘총천연색’이나 ‘총동원’ 같은 말을 쓸 때 사용하는 모두 총(總) 자가 아닙니다. 꽃다발 같은 것을 묶어둔 떨기 총(叢) 자를 쓰지요. 꽃다발을 만들 때는 다양한 꽃들이 들어가고, 심지어는 꽃이 아닌 바구니나 받침대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총서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가정하는, 이 ‘꽃다발’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지식인의 참호, 독서 대중의 물결

먼저 좀 에둘러서 외국의 사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특히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총서가 일종의 사유의 참호가 되는 경우들이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보고 계신 <이론 총서 Théorie series>는 프랑수아 마스페로(François Maspero)라는 출판사에서 나왔고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와 같은 철학자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구조주의 이후에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맞추어 마르크스주의를 재검토하기 위한 총서였습니다. 즉 이 총서는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세계와 싸워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진지처럼 작동합니다. 

여기 있는 <효과 속의 철학 La Philosophie en effet> 총서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장 뤽 낭시(Jean-Luc Nancy)필립 라쿠 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와 같은 철학자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총서를 해체주의의 본산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흥미롭게도 이 총서는 몇 개의 출판사를 옮겨 다닙니다. 저는 이것이 총서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총서가 출판사의 것이면 옮겨가기가 어렵겠지요. 철학자의 것이라 생각했기에 다른 출판사로 옮겨갈 수 있는 총서들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의 참호가 있고 진지가 있을 때 그 진지를 철학자들이 만들어내고 지켜내고 서로 옮겨가기도 하고 이어받기도 합니다. 즉 어떤 분야에서든 이 계(界)를 한번 바꿔보고 싶거나 이 사회의 주도적인 담론이 잘못되어 있어서, 나와 내 동료를 위한 집을 짓고 싶다고 했을 때 총서는 그들이 머무를 하나의 자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岩波新書>는 수천 권이 나왔습니다. 수천 권의 책은 절대 적은 양이 아닙니다. 이 책들이 하나의 범주에 묶여 있다는 것은, 마치 여러 잔물결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흐름이나 파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이와나미의 책들이 일종의 대중출판의 형식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즉 프랑스 철학자들의 총서가 학자들의 참호처럼 작동한다면, <이와나미 신서>나 <이와나미 문고>는 어떤 특정한 계의 기본적 지식들을 독서 대중에게 공급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독서 대중이 지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한 기본 지식을 공유하려면 어떤 책들이 필요할까요? 이와나미 신서는 그 기본형을 충실하게 제공해 왔습니다.  

 

 

멋지게 날이 선 한국의 총서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총서가 작동했는지도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제가 가장 눈여겨본 총서는 문학평론가 정과리 선생과 철학자 김진석 선생이 기획하시고 솔 출판사가 발간한 <입장총서>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90년대 초반에 마르크스에 대한 ‘독자적인 입장’을 세운 국내외 55명의 이론과 사상을 총정리하겠다는 야심찬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소쉬르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루는 데 무게중심을 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지하나 김우창 같은 분들의 책도 함께 놓습니다. 즉 한국의 필자들과 당대 유럽의 학자들을 같은 위계에 놓기 위해서는 물론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즉 마르크스 이후, 세계와 싸우는 방식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지식을 한국인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날서고 멋진 총서였습니다. 

출판사 이론과실천은 출판인 고 김태경 대표의 안목을 바탕으로 100권이 넘는 학술총서를 만들었습니다. 이 학술 총서는 유명한 논리학자인 어빙 코피(Irving Copi)의 『논리학 입문』 등 동서양을 망라하는 다양한 범위를 커버하고 있는데 편집과 디자인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특히 제가 이 총서에서 주목하는 것은 카르스텐 비테의 <매체로서의 영화>, 잭 엘리스의 <세계영화사> 같은 책들을 어빙 코피의 <논리학 입문>이나 빙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과 같은 위상으로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혁명이 끝나버린 게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던 90년대 중, 후반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걸었던 것은 대중매체, 특히 영화였습니다. 이론과실천이 영화를 존중하며 다루는 태도는, 분명 그들에게 어떤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의 욕망, 서로 다른

사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거대한 총서는 아무래도 세계문학전집입니다. 이 책들은 교양서이자 읽을거리이고, 대학 입시의 참고 자료이며, 어떤 거대한 읽기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세계문학전집의 성격을 파악할 때는 주로 1번에서 30번 정도까지만 보는 편입니다. 그 이후에는 서로 상호 참조하고 옮겨가고 하다 보면 성격이 희석되는데, 처음에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고 목록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는 그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좀더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59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펴낸 곳은 을유문화사입니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1번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마의 산』이에요. 이는 양차 대전 사이에 잠깐 있었다고 존재했다고 상상되는 순문학이라는 존재에 대한 강렬한 욕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1998년에 시작한 민음사의 첫 책은 오비디우스의 로마 신화인 『변신 이야기』입니다. 흥미롭게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발간사에서 번역에 대해서 강하게 언급합니다. “매 고전은 매 시대마다 계속 다시 반복돼서 새로 번역돼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건 아마도 한글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진 한글 세대들, 해당 고전의 본고장에 유학한 학자들이 기존의 일본어 중역들을 타파하겠다는 급진적인 제스처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어쨌든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고전이기는 합니다. 

반면 2009년에 시작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첫 책은 『안나 카레리나』입니니다. 그다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가 나옵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라틴아메리카나 일본 문학에 할애합니다. 즉 총서는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방향을 선언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전집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술 역시, 우리가 총서를 만들 때 쓸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닐까 합니다. 

 

 

총서를 만들 때 눈여겨보는 곳들

여기서부터는 실무적인 것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획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총서를 생각할 때 맨 먼저 영미권의 대학 출판부들을 참조합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치 총서 왕국처럼 보입니다. 특히 영미권 대학출판부들은 거대 종합출판사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특화된 영역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엠아이티 프레스(MIT Press) 같은 경우는 뇌과학(인지과학), 건축, 디자인 등에서 탁월한 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컬럼비아대 출판부(Columbia University Press)는 종교학이나 철학이나 인문학, 비유럽 연구 쪽에 오래된 백리스트를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는 거대한 규모와 총서를 지니고 있지만, 저는 이들의 <베리 숏 인트로덕션 Very Short Introductions> 시리즈가 흥미롭습니다. 이는 하나의 작은 주제를 잡아서 굉장히 탁월한 학자한테 쓰도록 만든 총서이며, 학문적으로도 정확하지만 목차나 더 읽을거리의 균형이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도 여러 권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 출판부가 오랫동안 지녀 온 교육의 노하우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작은 출판사 중에서 총서 자체를 날카롭게 만들어내는 곳은, 제가 참고하는 곳들 중에서는 단연 버소(Verso)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학출판사들처럼 버소의 시리즈들이 많지는 않은데요. <래디컬 싱커스 Radical Thinkers series>나 <페미니스트 클래식 Feminist Classics>은 잘 정제된, 누가 봐도 집중해서 총서를 구성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출판사들도 버소 책을 많이 계약해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좋은 총서들은 물론 판권 계약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아쉽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총서를 만드는 형식과 목록을 구성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새로운 총서를 일관성 있게 꾸밀 수 있을 것입니다. 

 

 

총서를 통해 협업하는 방법

아이티아이 프레스(ITI Press)라는 아주 작은 대학출판부가 있습니다. 이타카 컬리지(Ithaca College)라는 소규모 대안 예술 대학(원)의 출판부입니다. 그들은 교수와 학생, 학교 안과 밖에 있는 예술가들이 책을 바탕으로 지면에서 협업한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유럽, 한국, 일본, 미국 등 여러 예술 출판사들의 실천을 바탕으로 출판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들이 많이 생겨나는 편입니다. 꼭 예술뿐 아니라 자기가 특정 영역의 작업자라면 생각해 볼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기관과 협업하는 것 역시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한국의 공공기관들이 책을 출간해서 일반 판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복식 부기를 하지 않고, 도서매출은 잡수입으로 잡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에겐 일상적인 도서 유통이지만 왜 외상 매출을 하는지, 저자 인세는 왜 이렇게 조금씩 나가는지, 왜 입금 금액보다 계산서가 더 크게 잡히는지를 공공기관에서 납득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기관과 일반 출판사가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저는 무작정 기관에서 자체출판을 시도했던 예전에 비해 이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형식에 대한 좋은 예시 몇 가지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우선 출판사 현실문화와 국립현대미술관이 협업한 <MMCA 연구 시리즈>와, 예일대 출판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함께 발행한 책들입니다. 기관과 협업할 때는 단순히 수익과 비용의 문제뿐 아니라 판권 구성이나 인사말 배치, 헌사, 기획과 발행 표기 등 복잡 다단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부분을 구성하거나 협의할 때 이 두 협업의 결과물로 나온 책들은 좋은 예시가 됩니다. 

 

 

작은 출판사가 총서를 만드는 이유

지나치게 마음이 급해서 이런저런 사례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맨 처음에 할 질문이지요. 우린 작은 출판사고 하나의 단행본을 내기도 쉽지 않은데 왜 총서를 만들어야 하나요? 

조금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첫째는 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1인 출판이나 소규모 출판을 하다 보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관리 업무와 편집 업무와 기획 업무가 꼬인다는 겁니다. 일상적인 업무들이 더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출판사가 기획을 외부에 있는 나의 연구자나 작업자 친구한테 부탁할 수 있는 가장 매끄럽고 어쩌면 거의 유일한 방법은 총서 기획을 맡기는 겁니다. 내 친구가 알튀세나 아도르노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큰 출판사에는 계속 새로운 인력들, 지식인들이 유입되는 반면 작은 출판사는 찾아다녀야 합니다. 이것은 큰 부담인데요.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싶은 작가나 연구자와, 시간이 부족한 작은 출판사의 협업은 꽤 괜찮은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총서는 출판사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합니다. 출판사를 하다 보면 목록이 흐트러지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돈이 되는 책을 만드는 쪽으로 출판사가 점점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래도 좀 헷갈릴 때가 있다면 총서를 보면 처음의 기억이 납니다. ‘그래 한 5~6년쯤 전에 이 주제에 대한 멋진 책들을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시작했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기억은, 총서는 마치 척추처럼 작은 출판사를 지탱해 줍니다. 총서를 한두 개 세워 놓고, 그 총서가 움직이는 궤도를 바탕으로 거리를 조정하며 다양한 단행본을 기획하는 방식도 좋습니다. 그러면 작은 출판사가 정체성을 지니기가 쉽습니다. 지식인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총서를 가지고 있으면 출판사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기에 수월하기도 하고요. 

요즘 한국의 출판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저는 콘텐츠 과공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은 영역의 전문 출판사가 되는 것이 조금 확률이 높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의 책을 만들고 있다는 말은 최악의 순간에 자신을 좀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판매는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 영역을 옮겨다니기보다는 좁은 영역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자신의 독자들을 이해해 나가는 것 역시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영역의 이해도가 중요하고, 독자들에게 출판사가 해당 영역을 일구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동료를 만드는 데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출판사에는 총서를 만들 것을 권해드리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