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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OOKS]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
2022-11-02 / 서지애 / 노말에이 대표

[BOOKS]

2022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독립서점 ‘노말에이’의 서지애 대표가 소규모 출판사들의 작지만 알찬 책들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8편은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입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해가 짧아졌다. 올해는 어떻게 보냈는지 뒤돌아보게 되는 시기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떠오른다. 고맙고 도움받았던 일들이 기억난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서점에는 책을 선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사실 책 선물은 어렵다.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과 흥미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좋아하는지,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지, 선호하는 작가가 누구인지 사전 정보가 없으면 고르는 게 쉽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 줄 것이라면 이미 읽은 책은 아닐까 고민해봐야 한다. 선물이니 보기에도 예뻐야 하고, 읽기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의 책을 골라야 한다. 스테디셀러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받는다고 상상해보자. 고려해야 할 점이 많으니 까다롭기도 하지만 마음에 든다면 그만큼 만족스러운 선물이기도 하다. 상대방이 얼마나 마음을 썼을까 감사하게 된다. 

 

선물 받은 책은 유난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잘 읽지 않는 책은 중고 서점에 팔고, 낡은 책은 버리기도 하면서 책장을 정리하는데 선물 받은 책은 아무리 공간이 부족해도 간직하게 된다.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간다고 담임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던 『어린 왕자』와 『김소월 시집』, 친구가 어느 여름 그냥 주고 싶다면서 택배로 보내준 『안도현의 발견』,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잘리고 힘들어할 때 힘내라고 친구가 건네준 그림책 『힘내라 힘』. 이렇게 귀중히 간직하는 책이 있지 않은가? 웹진의 마지막 연재로 선물하기 좋은 책을 소개한다. ‘친구에게 주고 싶은 선물’과 ‘위로’를 주제로 정했다. 왜냐하면 친구의 위로만큼 큰 힘이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해

『작은 빛』은 생일을 만끽하기엔 너무 커버린 어른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림책이다. 청소년기에는 왠지 모르게 생일이 더 씁쓸했다. 아무에게도 먼저 말하지 않았는데도 떠들썩하게 축하받고 싶었다. 특별하게 보내고 싶기도 하고 평소 같이 보내고 싶기도 한 이상한 양가감정에 대해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어른이 되면 이 찝찝한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커피잔의 얼룩처럼 여전히 남았다. 『작은 빛』의 소개 글을 읽으니 다른 어른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구나 조금 안도(?)하기도 했다. “어른이 된 후, 생일은 다른 평범한 날들보다 어색한 날이 되었습니다. 나의 생일을 맘껏 축하하기엔 멋쩍고, 그렇다고 다른 날들과 똑같이 보내기엔 아쉬운, 그런 생일이라는 하루. 어쩌면 어른에게 생일은 하루의 끝에 만나는 작은 빛으로 기억되는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일 없이 무탈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케이크의 작은 빛을 만나는 날은 손꼽히게 평화로운 순간임을 이젠 어렴풋이 알게 됐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시끌벅적 축하한다고 이 책을 전해줘야겠다. 그리고 이 그림책이 생일을 맞은 이에게 작은 빛이 되길 바란다.

 

 

#회사생활로 지친 친구에게 웃음을 

이 책은 서점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도 깔깔깔 웃게 되는 마성의 책이다. 무뚝뚝한 어른의 얼굴로 들어온 사람들도 이 단어를 보면 무장 해제되어 유쾌한 어린이처럼 변한다. 어린이들은 ‘똥’, ‘방귀’라는 단어를 들으면 웃으며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회사 시렁’, ‘사직서’라는 단어를 보면 즐겁고 해맑아진다. 오이웍스에서 만든 책 『회사 시렁』은 물렁이가 주인공인 만화로 최근 4권까지 발행했다. 물렁이는 오랜 회사생활로 뱃살이 불어난 회사원 캐릭터다. 동글동글한 생김새가 매력적이다. 이 책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높은 몰입도가 있다. 『회사 시렁 1』에서 물렁이는 사회 초년생으로 억울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화를 내기보다 혼자 숨죽여 운다. 『회사 시렁 2』부터는 연차가 쌓인 물렁이가 분노를 조금씩 표출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출근해야 하는 K-직장인의 숙명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한때 서점가에 퇴사를 주제로 한 책들이 인기가 많았다. 퇴사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데, 퇴사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왜 그만두지 못할까? 라는 자책과 고민을 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직장 생활의 힘듦과 짜증을 이 책을 보면서 웃으면서 털고 지나가길 바란다. 표지를 잘 보이는 곳에 두기만 해도 웃음이 픽 난다. 책은 아니지만 오이웍스에서 만든 회사생활 봉투 세트도 추천하고 싶다. 사직서, 월급 봉투, 연봉계약서 봉투가 들어있는데, 편지 봉투로 사용하면 받는 이가 참 좋아할 것 같다. 

 

#친구의 몸과 마음을 살펴보자 

피곤하면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고 감정 상태가 좋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짜증이 난다. 그럴 때는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점점 나아진다. 어깨를 활짝 열고,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보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는 것도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도움 된다. 『몸의 기분』은 몸이 유연해지면, 마음도 덩달아 유연해지는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어 만든 그림책이다.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가 스트레칭을 하는 그림을 보면 마음이 사르르 녹고 기분이 밝아진다. 하나 둘 셋 넷 고양이와 강아지의 구령에 맞춰 몸을 움직여보자. 몸의 상태를 관찰하고 몸의 기분에 집중해보자. 

 

마음의 기분을 살펴보기 위해선 『How To Love Myself 나를 아끼는 60가지 방법들』을 추천한다. 이 책은 탁상 달력처럼 한 장씩 넘기는 형식의 출판물이다.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져니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으로 아무도 아껴주지 않는 나의 마음, 내가 먼저 아껴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내 인생이니까", "새로운 일들 하나씩 도전해보자",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 봐” 같이 위로가 되는 문장과 그림이 실려 있다. 살아가면서 이런 작고 따스한 말 한마디가 꽤 큰 힘이 된다. 책상에 올려 두고 힘이 들 때 들여다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제주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제주에 가면 해방감으로 들뜬다. 울창한 숲, 넓은 바다, 올망졸망 귀여운 집,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마음이 너그러워진 도시 사람들이 있는 제주. 자연으로 둘러싸인 제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책이 있다. 『Darang illustration Book - Jeju Island』는 일러스트레이터 다랑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의 풍경 총 24장의 그림이 수록된 엽서북이다. 엽서북은 한 장씩 쉽게 뜯을 수 있도록 제본한 형태인데, 뜯어서 엽서로 사용해도 되고 마음에 드는 곳에 그림을 붙여도 좋다. 활용도가 높아 선물하기에도 적합하다. 시원하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황홀하게 반짝이던 윤슬, 저마다의 초록으로 채워진 아름다운 곡선의 오름들, 색색의 지붕을 가진 낮은 제주의 집들, 동글동글 귀여운 돌담과 귤나무들. 저자가 제주에서 마주한 풍경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달에 추천한 책들은 나 자신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가장 최고의 친구는 나이기도 하니까. 모쪼록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일들로 지치고 힘들었을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골랐다. 누군가 기우뚱 넘어지기 전에 위로와 격려로 일으켜 주고 싶다. 무심한 말이 날카롭게 꽂히고, 다정한 말은 구원의 손길 같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부산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예순은 넘은 듯한 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젠 손님 때문에 울었는데, 오늘은 손님 같은 분들이 와서 참 좋아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을까? 지나가는 이야기로 말씀하셨는데 사정은 모르지만 속상했다. 자영업을 오래 해도 사람한테 상처받는 건 무뎌지지 않는구나. 그런데 그 말을 곱씹어보니 사장님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서점을 계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언제나 그 고민의 이유는 사람이다. 나도 손님 때문에 울고 다른 사람 덕분에 위로받는다. 고민하는 가운데에서도 서점을 계속하는 이유는 책이 좋아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래서 웹진에 책을 소개할 기회가 생겨 뜻깊고 즐거웠다. 진심으로 책을 만들고 또 그런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연재하는 동안 매달 책과 주제를 고르면서 나 또한 위로받았던 것 같다. 서점 이야기를 쓰면서는 해묵은 감정을 털어 버리기도 하고, 출간한 지 오래된 책인데도 소개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또 한 걸음 힘있게 내딛게 되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만든 창작물을 소개할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고 싶다. 

 

 

서지애│노말에이 대표이자 디자인스튜디오 일삼일와트의 디자이너.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