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2022년 PLATFORM P 웹진은 출판계의 크고 작은 흐름들을 들여다보는 특집을 매달 선보입니다. 12월 특집글은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렸던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2’에 참가한 윤여준 작가의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만났을 때: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2 참가기>입니다.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만났는데, 책을 한 권도 못 팔면 어떡하지?
만약 영화 <그녀 HER>의 인공지능체계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면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책 속 판권면과 출판사 SNS 계정 뒤에 숨어만 있을 줄 알았던 내가 직접 독자를 대면하는 오프라인 행사에 나간다니, 정말 잘한 선택일까?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나가기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동안 나의 머릿속엔 여러 고민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아담한 규모의 쥬쥬베북스의 모습에 독자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가지고 나가는 책의 고유한 이미지를 내가 깎아 먹으면 어쩌지? 책 옆에 책을 만든 사람(특히 작가)이 존재하는 것이 정말 이 책을 위해 좋은 일일까? 마치 <그녀 HER>의 사만다가 스마트 폰 속에 존재해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나 역시 책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번 고민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고민은 페어 일주일 전,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더 큰 두려움이 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날고 기는 220명(팀)의 참여 소식과 광활한 무신사 테라스라는 공간을 마주한 후 나에겐 ‘과연 책을 팔 수 있을까?’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1/2 사이즈의 부스로 참가한 새내기 출판사 쥬쥬베북스는 그곳에 방문한 수많은 테오도르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 쥬쥬베북스를 찾아온 테오도르는 아예 없을 수도 있겠구나. 이러다 3일 동안 한 권도 못 팔고 돌아오면 어떡하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300명이 채 안 되는 1년 차 새내기 출판사는 페어를 앞두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책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 거예요?
사실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건 이번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나의 첫 오프라인 북페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판 주변인으로 살며, 꽤 오랫동안 여러 국내외 북페어를 다녔기에 북페어에 대한 기본 정보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다. 즐기러 온 관객과 일하러 온 셀러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과 준비가 필요했고, 난 셀러가 지녀야 할 기본 지식도 알지 못하는 북페어 신입생이었다.
준비할수록 모르는 것은 넘쳐났다. 그중 가장 궁금한 건 3일 동안 열리는 북페어엔 몇 권의 책을 가져가는 것이 적합한지였다. 처음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책들을 가져가면 되겠지’라고 태평하게 생각하다 페어 일주일 전 보유하고 있는 책이 없음을 알고 급히 창고에서 50권의 책을 발송했고, 페어 이틀 전날 밤엔 ‘혹시 너무 잘 팔리면 어쩌지!’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다 충동적으로 30권을 추가 발송했다. 결론적으로는 처음 주문한 50권의 책이 딱 적당했다. 사실 설치하는 날 만난 동료 출판사 대표님에게 들은 조언이 아니었으면 80권의 책을 들고 갔다 30권의 책을 그대로 들고 올 뻔했는데, “대체 몇 권을 가져와야 해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너무 많이 가져오지 말고, 가져온 거 최대한 다 팔고 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요”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문현답이었다. 지나고 보니 북페어 3일간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온전한 정신건강이었고, 나는 그 조언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50권의 책을 충실히 팔 수 있었다.
당신은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입니까?
옷 가게나 화장품 가게에서, 나는 일부러 점원이 다른 손님을 응대하고 있을 때 들어가는 편이다. 나의 템포대로 천천히 구경하고 싶은데, 점원이 다가오면 오히려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황급히 그곳을 떠나곤 하는 완벽한 내향형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셀러가 되었다. 즉, 내가 피하던 점원이 된 것이다.
퍼블리셔스 테이블 첫날, 난생 첫 오프라인 책 판매를 시작한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판매자가 되기 위해 일부러 책을 읽거나 사인하는 척을 하는 등 의도적 무신경으로 부스를 지켰다. 그러다 앞에 선 관람객이 현저한 관심을 보이면 그때서야 ‘사실 난 당신을 매우 신경 쓰고 있었어요!!’라고 외치듯 신나서 책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쥬쥬베북스 부스에 확실한 관심을 주는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두 시간에 한 명 있을까 말까였고, 이러다간 정말 한 권도 못 팔고 갈 거 같다는 불안이 부스를 가득 채웠다. ‘어쩌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부스의 셀러들은 열심히 온몸을 관람객 쪽으로 기울이고 책을 설명하고 있었다. 부스에 잠시라도 눈이 머무는 관람객이라면 놓치지 않고 책 소개를 이어갔고, 책에 대한 정성스러운 설명을 들은 관객은 금세 책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내가 관람객으로 북페어에 놀러갔을 때 어땠는지. 확신의 내향형 구매자인 나도 북페어에선 출판사 혹은 작가님의 설명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물론 모든 책을 살 수 없어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은 부스에는 미안했지만, 훗날 내게 책을 소개해주었던 출판사나 작가님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날 때 괜스레 더 반가웠다. 북페어에 꾸준히 갔었던 경험은 내가 셀러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점차 파악하게 해주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나의 책을 소개하기, 구매하지 않더라도 책에 관심을 준 관람객에겐 감사를 표하기, 책을 알고 있던 관람객에겐 반가움과 고마움을 아끼지 말기. 나는 웬만해선 먼저 인사를 못 하는 사람이지만, 북페어에서만큼은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많은 ‘노오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첫째 날보단 둘째 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사를 건넬 수 있었고, 마지막 날엔 얼핏 자연스럽게 인사가 튀어나왔다.
인터넷 서점과의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가하기 위해 신청서를 보내는 순간부터 주요한 고민이었던 것은 ‘북페어에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을까?’였다. 도서 10% 할인은 물론 무료배송까지 해주는 대형 인터넷 서점의 혜택과는 차별화된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 북페어 참가비조차 부담이 되는 소규모 출판사에게 도서 10% 할인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아무런 혜택 없이 책을 판매하자니 자꾸만 인터넷 서점의 혜택이 떠올랐다.
고민 끝에 나의 결정은 작지만 의미 있는 서비스였다. 쥬쥬베북스의 원앤온리 출품 도서인 『작은 빛』은 기획부터가 생일 선물을 위한 책이고, 그렇기에 정말 선물처럼 포장해준다면 독자들에겐 더욱더 특별한 선물로 다가갈 것 같았다. 하여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가가 결정된 후 떠났던 독일 여행에서 적합한 포장지를 구매해왔고, 그 위에 독자마다 마음을 담을 수 있게 그림을 그려줄 펜도 준비했다. 실제로 포장 서비스는 꽤 효과적이었다. 포장지에 그림을 그려주는 모습에 여러 독자는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고, 예상보다 창의적인 그림 요청도 많아 그리는 나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수달을 닮은 파트너를 위해 수달을 그려달라는 분, 요가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요가 하는 고양이를 그려달라는 분 등 여러 신선한 요청사항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덕분에 독자들과 활발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포장 서비스를 하며 『작은 빛』이 어떤 의미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지, 어떤 마음을 이 책에 담고 싶은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독자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면 알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작은 서비스였지만, 내겐 책이 독자에게 닿은 후를 상상해볼 수 있는 커다란 의미의 교류였다. 다음에 다시 북페어에 나가게 된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독자들과의 소통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서비스 혹은 이벤트는 꼭 준비하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해보았다.
황새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뱁새
책을 몇 권 가져와야 하는지부터 동료에게 물어봐야 하고, 주변 부스를 따라 하며 조금씩 셀러의 자세를 익혀가는 나는 누가 봐도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뱁새였다. 하지만 이런 뱁새가 무사히 퍼블리셔스 테이블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황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운영팀은 여러 차례 북페어에 참여했었던 작가 및 디자이너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셀러가 궁금해할 것, 셀러에게 지원해주면 좋을 것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행사 전과 행사 중 그리고 행사 후에도 메일로 상세히 안내해주었다. 운영진의 안내는 모르는 것투성이었던 뱁새에게 아주 유용한 도움이었다. ‘운영진이 봉투를 제공해주는구나’, ‘카카오페이 QR을 만들어야겠구나’, ‘끼니는 옆에 있는 카페에서 해결할 수 있구나’ 등 궁금할라 하면 바로바로 메일로 안내해주는 운영진 덕분에 여러 걱정은 미리 해결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폰트 구독권, 손글씨 폰트 제작 쿠폰 등의 지원 역시 출판인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부스 참가비가 있어 고민도 했었는데, 그 이상의 지원을 받으니 참가비에 대한 부담은 새카맣게 잊혔다. 사실 운영진의 세심함은 관람객들을 향한 배려와 고민에서도 돋보였다. 구매한 책을 택배로 보내주는 배송 서비스, 책을 5권 이상 구매한 관람객은 포토 부스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벤트 등 여러 서비스를 운영하였고 이러한 서비스는 관람객에겐 편리함과 재미를, 셀러들에겐 더욱 적극적인 판매의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내가 가장 놀랐던 운영진의 세심함은 옆자리 배치 선호도 조사였다. 쥬쥬베북스는 북페어 뱁새인 만큼 친한 동료나 북페어 메이트가 없었다. 그렇기에 선호도 조사를 빈칸으로 남겨둘까 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팬심도 괜찮다면 평소 좋아하는 출판사 쪽프레스 옆자리면 좋겠다’고 기재했는데, 정말 옆자리로 배치해주어 3일간 성덕이 될 수 있었다. 팬심으로 차지한 옆자리에서 나는 좋아하는 책을 원 없이 볼(구매할) 수 있었고, 좋은 출판사의 좋을 수밖에 없는 멋진 지점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3일간 애정하는 출판사 바로 옆에서 그들의 활동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쪽프레스 뿐만 아니라,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여하는 3일간 자신을 북페어 시조새라고 표현하는 이른바 북페어 베테랑 출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뱁새의 고민을 나누면 모두 성심껏 조언해주었고, 이는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여한 3일 뿐만 아니라 쥬쥬베북스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힘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1인 출판사로 일하며 가장 힘든 점을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동료가 없다는 점이다. 외롭기보단 고독했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참여하며 얻게 된 가장 큰 기쁨은 조금은 뻔할지라도, 동료들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함께 책을 만들고 있는 동료들, 긴 줄을 서서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방문한 독자라는 동료들, 책을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준 북페어의 동료들. 책으로 모인 이들과 3일간 한 공간에서 만나며,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 동료는 아닐지라도 길에서 만나면 반가이 인사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고독한 것만 같았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을 마친 후 다시 혼자 지키는 사무실로 돌아온 지금, 고독함은 분명 흐려졌지만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만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은 여전하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동료들을 만나는 기회는 잃고 싶지 않기에, 적당한 사만다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다음에 참여하게 될 쥬쥬베북스의 두 번째 북페어에선 책마다 고유의 존재성을 흐트러트리지 않은 선에서 사만다가 되는 방법을 익히거나, 혹은 사만다가 보이지 않을 만큼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책들을 만들어 새로운 테오도르들을 만나고 싶다.
윤여준│쥬쥬베북스 운영자 aka 쥬쥬베휴먼. 올해 2월 출판사를 만들었고, 9월 첫 책 『작은 빛』을 출간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책을 만들고자 한다.
사진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http://publisherstable.kr
촬영 https://www.instagram.com/orangepo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