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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ASIC] 소규모 출판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2023-03-29 / 최진규 / 포도밭출판사 대표

[BASIC]

2023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포도밭출판사의 최진규 대표가 소규모 출판의 과정을 살피고 안내합니다. 1편은 <소규모 출판을 시작하는 분들에게>입니다. 

 

 

안녕하세요. 충복 옥천에 살면서 포도밭출판사를 운영하는 최진규입니다. 소규모 출판을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출판 일의 전반적인 과정을 소개하고, 운영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8회에 걸쳐 다음 주제들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소규모 출판의 이해 / 기획 / 편집 / 디자인 / 제작 / 마케팅 / 유통 / 협업. 이번 글에서는 ‘소규모 출판의 이해’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왜 출판을 하는가

소제목이 너무 거창한데요. 실은 저 자신에게 던져보는 질문입니다. 나는 왜 책을 만들까. 이번 기회에 새삼스레 고민해보는데, 언제나 그렇듯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뭐라고 답하실지 무척 궁금하네요. 

다양한 답이 가능하겠지요. 몇 가지 상상해서 적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 참여하기 위해서 / 저항하기 위해서 / 자본을 얻기 위해서 / 명예를 얻기 위해서 / 아름답고 훌륭한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 / 자기를 보호할 은신처 혹은 방패를 가지기 위해서 / 재미를 위해서 등등. 

이런 것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저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출판을 시작했는데, 과연 출판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적당한가. 초면(?)에 이런 걸 되묻자고 하는 게 너무 맹랑하지요? 지금 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감히’ 권하는 까닭은, 이러한 자문을 자꾸 해야만 자기 색깔을 가진 출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기 색깔을 가지는 것이 소규모 출판사에게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왜 그러한지를 설득력이 있게 밝히는 것이 이번 글의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소규모 출판’이란

우선 ‘소규모 출판’이라는 표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을 의아하게 여길 분도 계실 듯합니다. 출판이면 출판이지 왜 굳이 ‘소규모 출판’이라고 부를까. 출판업 내에 ‘소규모 출판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연히 소규모 출판업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이런 구별이 생겨났을까요. 뿐만 아니라 소규모 출판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이는 말도 많습니다. ‘1인 출판’ ‘독립 출판’ 등의 표현이 있지요. 

1인 출판이라는 말은, 원래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 활동을 두루두루 일컫는 범용 표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같은 정부 지원 사업 선정 시에 1인 출판사 우대가 시행되면서 1인 출판사 인정 요건이 구체적으로 정해졌지요. 현재는 대표 외에 노동자 2인 이내인 출판사를 ‘1인 출판사’로 보고 있습니다.

독립 출판이라는 말은, 책을 출판할 때 ISBN을 발부하지 않고 만들어서 주로 독립서점에만 유통하거나 자체 유통하는 출판 형태를 지칭할 때 주로 쓰입니다. 그러나 역시 ‘작은 규모의 출판’을 두루두루 일컫는 말로도 쓰이지요. 이런 식으로 소규모 출판 / 1인 출판 / 독립 출판 등의 표현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혼재가 지금 어떠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두어도 문제는 없겠지요. 다만 ‘소규모 출판’이라는 표현은 특정 용례를 가진 ‘1인 출판’이나 ‘독립 출판’이라는 말과 비교하더라도 무척 모호한 말이긴 합니다. 그저 규모가 작은 출판사의 활동을 일컫는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규모가 작은 출판사의 일은 규모가 큰 출판사의 일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봐야 하는데요. 사실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소규모 출판이 하는 일도 대규모 출판이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책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일반단행본을 펴내는 출판사 중에서 종사자수가 1~2인인 초소규모 출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52.4%나 됩니다. 종사자수 5인 미만 출판사의 비율은 전체의 71.8%에 달하고요. 그러니 어쩌면 ‘다수’인 소규모 출판을 그냥 ‘출판’이라고 부르고, 규모 있는 출판사의 활동을 특별히 ‘대규모 출판’이라고 부르는 게 오히려 어울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우선은 이런 현황을 알고 넘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글 지도를 확대하듯

지도 앱에서 특정 지역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배율을 높여 초점을 맞춘 곳을 확대해서 보지요. 거의 대기권 높이에서부터 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출판이 무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는 지도 앱에서 배율을 높여가는 방식을 따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매우 큰 범주를 파악한 다음 배율을 점차 높여 특정 범주에 이르는 것이지요. ‘콘텐츠 산업’이라는 큰 범주의 산업 통계에서 시작해 ‘일반서적출판업’의 산업 통계에 이르는 방식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 

<2021 기준 콘텐츠 산업 조사>에 따르면, 출판 / 만화 / 음악 / 영화 / 게임 / 애니메이션 / 방송 / 광고 / 캐릭터 / 지식정보 / 콘텐츠솔루션 등등의 산업을 포괄하는 ‘콘텐츠 산업’은 2021년 기준 137조가량의 매출을 기록했고, 61만여 명의 종사자가 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중 ‘출판’ 부문은 24조가량의 매출을 기록했고, 17만 명가량의 종사자가 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때 출판 부문에는 다음 업종들이 포함됩니다. 출판업 / 인쇄업 / 출판 도소매업 / 온라인 출판 유통업 / 출판 임대업 등입니다. 24조 매출이란 이 다섯 업종의 매출을 합한 것이지요.

계속 배율을 높여볼까요. 다섯 업종 중에서 출판업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출판업 내에는 다음의 업종들이 포함됩니다. 일반서적출판업(종이매체출판업) / 교과서 및 학습서적 출판업 / 인터넷 모바일 전자출판제작업 / 신문 발행업 / 잡지 및 정기간행물 발행업 / 정기 광고간행물 발행업 / 기타 인쇄물 출판업 등입니다. 단행본을 기획 편집해서 펴내는 우리들은 이중 ‘일반서적출판업’ 분류에 속합니다. 

일반서적출판업은 어떠한 숫자로 표현될까요. 일반서적출판업의 2021년 기준 매출액은 2조 4천억가량. 종사자수는 17,483명. 사업체 수는 6,538곳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우리가 선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1만 7천여 명의 노동자가 6천5백여 개 회사에 소속돼 일하며 연간 2조 4천억가량의 매출을 만드는 곳.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3억 7천3백만 원가량이고, 1인당 평균 매출액은 1억 3천9백만 원으로 계산됩니다. 참고로 저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개인 매출이 1억 3천만 원에 접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계산 값이 의아하긴 합니다. 하지만 평균이 이렇다는 거니까, (내가 아닌) 누군가는 맞은편에서 상당히 높은 매출을 올렸다고 믿는 수밖에 없겠지요.

약간의 씁쓸함을 뒤로 하고 자료 하나를 더 살펴볼까요. 앞서도 잠깐 언급했는데요. 일반단행본을 펴내는 출판사 중 소규모 출판사의 비율에 관한 자료입니다.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그 내용이 나옵니다. 일반단행본 출판사 중 종사자가 5인 미만인 사업체 비율은 71.8%, 종사자가 1~2인인 사업체 비율은 52.4%로 조사되었습니다. 일반단행본 출판업 외에 학술서, 수험서, 교과서, 학습지 출판업을 다 포함한 집계를 보아도, 5인 미만 사업체 비율은 69%, 1~2인 사업체 비율은 48.8%입니다. 

앞서 몇 가지 통계 조사 보고서 내용을 섞어가며 적었는데요, 지금 이 지면에서는 정확한 수치를 따진다기보다는 (조사마다 표본 추출 틀이 달라 결과 값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위치를 대략 조망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서 언급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배율을 끝까지 높인 결과를 한번 정리해볼까요. 우리는 매출 137조 규모 콘텐츠 산업 중 매출 24조 규모인 출판 부문 중 매출 2조 4천억 규모의 일반서적출판업계에 속하면서 1만 7천 명의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것이지요. 이 업계에는 6천여 개의 사업체가 있고요. 일반단행본 출판사 중 1~2인이 일하는 출판사 비율은 절반 남짓. 우리는 바로 이곳에 자리를 틀고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규모’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사실 우리 업계에서는 우리가 표준(일반적이거나 평균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잠깐 딴 얘기인데요. ‘독서인구’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통계 자료를 보다가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을 ‘독서인구’라고 부르더군요. <2021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성인 독서인구가 47.5%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한국에서 만 19세 이상인 사람 중 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이 47.5%라는 것이지요. 이는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추세에 있습니다. 

한편 인상적인 사실은, 독서인구는 줄고 있으나 신간 발행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소비는 줄어드는데 생산은 늘어난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출판사는 창업하기가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싼 임대료 내는 점포를 굳이 얻지 않아도 무방하고, 직원 없이 대표자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는 선택지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창업 절차도 무척 쉽습니다. 구청에 출판사 신고하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하면 출판사가 설립됩니다. 그다음에는 원고를 다듬어 책으로 만들고, 제작 마친 책을 서점에 납품하면 되지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사업을 오래 잘 영위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을 오래 잘 영위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지요. 사세를 키우는 것.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 단행본 출판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에는 부적당한 면이 있습니다. 속된 말로 판이 작기 때문입니다. 판이 작다는 표현이 자조적으로 들릴까 봐 염려되네요. 자조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판이 작다는 것을 결코 한계나 약점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다만 특성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직시해야 하는 현실 문제가 있습니다. 독서인구는 계속 줄고 있고 시장 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입니다. 그럼 어떤 수를 찾아야 할까요.

 

출판에 자기 방식을 담기

어떤 수를 찾아야 할까요. 이렇게 적기는 했으나 제가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알 리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드는 생각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환경과 제도를 보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려는 자구의 노력이 항상 필요할 테고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서 생각할 것은, 역시나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자기 나름의 이유. 왜 책을 만드는지에 관한 자신만의 대답. 이를 곱씹으면서 출판에 자기 방식을 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비단 더 가치 있는 태도가 무언지 따지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저는 오히려 실용적인 차원에서 이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마다 자기다운 색깔을 내면서 독자를 만들어온 역사에 의해 바로 지금의 소규모 출판 생태계가 만들어진 듯합니다. 이 생태계가 다시금 소규모 출판사의 진입과 영위를 돕는 것 같고요.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진규│충북 옥천의 소규모 출판사인 포도밭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북디자이너로도 일한다. 학교에서 편집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책방무사 멤버십이다. 어떤출판연구회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