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에 걸처 게재될 <살랑거리는 문장들>은 출판사 ‘한밤의빛’의 김서연 대표가 PLATFORM P에서 진행한 동명의 워크숍에 기반해 출판에서의 교정·교열의 방향과 방법, 원칙과 예외 등을 살펴보는 연재입니다.
살랑거리는 문장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유영하는 교정·교열 1
편집자는 쓸데없는 짓이나 하는 이일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 것.”
교정지 첫 장에 크고 거친 필체로 붉은색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동료 편집자가 저자 확인을 마친 뒤 돌려받은 교정지였다. 저자는 원고를 짓고, 디자이너는 만듦새를 일구고, 제작처는 물성을 완성한다. 마케터는 책을 알리고, 서점은 판매한다. 독자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편집자는 전 과정이 이루어지도록 한다고, 믿었다. 편집자가 창작자는 아닐지라도, 책이라는 창작물이 완성되도록 최전선에서 움직이는 이라고. 그런데 실상 편집자는 쓸데없는 짓이나 하는 이일까.
편집 일에 회의를 느끼는 편집자를 많이 만났다. (저자 겸 편집자, 발행인 겸 편집자처럼 정체성이 다층적인 이보다는) ‘편집’이라는 단일한 노동에 업무 정체성이 집중된 이에게서 이런 마음을 좀 더 흔하게 목격했다. 나 역시 자주 의문을 품었다.
대다수 편집자는 저자의 본심을 독자에게 잘못 전달하는 책을 만들까 봐 두려워한다. 저자가 쓴 문장을 직접 교정·교열하는 편집자라면 더욱이 노심초사한다. 편집자는 저자를 섬세하게 의식하는 동시에, 독자의 뜨거운 시선까지 미리 감지한다. 정성스럽고 고민스럽게, 그러나 선을 넘지 않도록 유의하며 문장을 다듬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문을 고치자고 제안하는 것만으로, 맞춤법에 맞게 표기를 수정하자고 설득하는 것만으로, 화를 내며 “왜”라고 되묻는 저자를 만난다.
저자는 소중한 창작물에 편집자가 주제넘게 참견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적당히, 만만하게 생각하고 문장을 손보았다면 물론 저자에게 외람된 일이다. 하지만 한 문장을 수십 번 읽어보며 수백 번 고심한 끝에 망설임을 담아 수정하고 의견을 전했다면, 그 노여움에 편집자는 무척 속상하다.
저자와 독자 사이를 흘러 다니는 말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 고통받아요.”
영화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내뱉는 대사다. 삶에 관한 이야기지만,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느꼈다. 사는 게 고통스럽다, 삶의 어떤 부분이 몹시 불편하다. 어쩌면, 말/글은 이런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뭔가 분출하고 싶지 않다면, 발화의 욕망도 사라질지 모른다. 기쁨과 감격을 표출하고 싶어 발화하는 사람도 보았다. 고통스러워서 발화하는 이는 더 많이 보았다.
글쓰기는 발화다. 발화는 ‘듣는 이’를 상정한다. 혼잣말이나 일기가 아니라면(이마저 청자를 상정한 행위라는 견해도 있지만), 말/글/책은 반드시 듣는/읽는 이를 전제한다.
<디 아워스>는 책이나 출판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책 『댈러웨이 부인』을 소재로 한다. <디 아워스>에는 1923년 영국 리치먼드에 사는 저자(버지니아 울프),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독자(로라 브라운), 2001년 미국 뉴욕에 사는 편집자(클라리사 본), 이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출판의 여러 복잡한 과정 가운데 ‘교정·교열’도 저자, 독자, 편집자 셋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저자는 글을 쓰고, 독자는 완성된 책을 읽는다. 교정·교열은 그 사이에서 흘러 다니는 언어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이다. 편집이 없다면 언어는 방향 없이 떠다닌다. 저자의 말을 독자에게 어떤 흐름과 속도로 흘러가게 할까. 그것이 편집자가 맡은 바다.
이 글은 2023년 3~4월에 열린 <살랑거리는 문장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유영하는 교정·교열> 워크숍을 기초로 한다. 편집자가 하는 일은 광범위하지만, 해당 워크숍은 교정·교열에 한정한 고민을 다루었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교정·교열 작업을 위주로 기술한다. 이 때문에 생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편집자가 하는 일을 협소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정·교열의 방향과 내용, 원칙과 예외, 사전 활용법, 주의해야 할 띄어쓰기와 맞춤법까지, 교정·교열 작업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생각해보려 한다. 다만 여기서 전할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일부분이고, 그마저도 지면 한계로 압축적이고 맥락이 상당히 생략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몹시 주관적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생각이므로 경험이 다른 편집자에게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 편집에는 정답이 없다. 이 글도 한 편집자의 자의적인 생각을 담고 있을 뿐이다. 좋은 책을 만들려는 이나 좋은 글을 쓰려는 이에게 그저, 일말의 참고가 되길 바란다.
교정·교열을 진행하는 다채로운 지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할 예정이다. 책은 호흡이 길어서, 교정·교열 기준을 정하려면 폭넓은 고민을 해야 한다. 책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과 다면적인 예외가 함께 존재하므로, 일관된 방향과 흐름을 부여하는 교정·교열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교정·교열은 저자·독자와 소통하는 일이기에 저자-독자-편집자의 관계에 관해서도 다소간 이야기하려 한다. 한 책의 저자인 동시에 편집자인 분도 있겠지만, 필자가 해온 출판은 주로 저자와 편집자가 구분된 작업이었기에 이를 중점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쓴 글을 교정하는 일과 남이 쓴 글 교정하는 일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좋은 문장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성을 지니므로, 입장과 상황이 다르더라도 일부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보다 어려운 국어, 수학보다 어려운 국어학
출판계에는 20~30년간 교정·교열 일을 해온 현역 편집자가 많다. 베테랑 편집자도 비문을 앞에 두고 한참 고심하곤 한다. 몇몇 편집자가 모여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교정·교열은 단기간의 학습이나 한두 권의 책으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전문가란 어쩌면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을 투여한 사람이 아닐까. 편집자라면 오래고 꾸준한 교정·교열 작업, 저자라면 반복된 퇴고와 글쓰기를 거쳐 좋은 문장을 습관처럼 익혀야만 좋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습득하거나 완전히 변모하겠다고 조급해하지 말자.
교정·교열이 국어학 연구는 아니지만, 국어 공부는 해야 한다. 언어 탐구에 특별히 흥미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법을 파고드는 일은 대체로 힘들고 지루하다. 만약 따분함을 참고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완벽한 교정·교열을 할 수 있을까. 교정·교열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실수와 오류를 줄이고, 독자가 읽기 좋은 문장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일 뿐이다. 교정·교열에는 올바른 길[正道]도 알맞은 한도[程度]도 없다. 한 권의 책, 하나의 지면을 완성하기까지, 편집자는 작업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지난함을 계속해서 견딘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콘텐츠를 어린아이는 즐겁게 보지만, 성인은 지루하다고 느낀다. 성인은 반복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짙어서, 같은 내용의 원고를 반복해서 읽기가 무척 힘들다. 자꾸만 딴생각에 빠진다. 작업을 하는 동안 체력이 고갈되고 지구력은 떨어지고 집중력도 바닥난다. 기나긴 인내를 감내해야만 마감에 이른다. 수천 번 반복되는 고민과 수만 번의 내적 갈등, 셀 수 없는 소통을 지나 비로소 정답과 오답을 넘어서는, 어떤 해답을 만든다.
예상 밖 변수까지 간파하듯이
교정·교열을 중심으로 편집 과정을 간단히 파악하고 가자. 기본적으로 ‘퇴고를 마친 확정 원고 준비–파일 교정(PC교나 화면교라고도 이른다)-조판-초교–재교–삼교–OK교–마감’ 단계를 거친다.
교정·교열에서 중요한 프로세스를 단 하나만 짚으라 하면, 파일 교정 단계를 꼽고 싶다. 이 단계에서 최선의 문장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파일 교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실수를 바로잡느냐, 이것이 책 전체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조판하고 나서 본격적인 수정에 들어가면, 본문이 계속 흔들린다. 글줄이 많이 움직일수록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더는 손볼 곳이 없다고 느낀 원고로 조판해도 결국 변수가 생기는 것이 출판/편집이다. 뒤늦게 저자가 본문을 뒤엎거나,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본문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한다고 판단하는 때도 왕왕 있다. 조판 이후 수정이 많고 복잡할수록 마무리가 불안해진다. 예상 밖 변수까지 간파하듯이, 파일 교정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바로잡고 확정해야 한다.
독자는 중2?
독자 나이, 저자나 역자, 책의 분야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교정·교열의 방향이 달라진다. 독자 나이별로 구분할 때는 아동, 청소년, 성인,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아동서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 어문 규범을 원칙대로 지키는 성향이 강하다. 보조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복문보다는 단문을 선호한다. 청소년 책은 성인서와 아동서 사이에 있는 듯하지만, 성인서와 유사하게 편집한다. 언론사에서 기사를 작성할 때, 중학교 2학년생도 이해할 만큼 쉽게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들었다. 편집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책을 만드는 데에도 같은 기준을 염두에 두라고 배웠다. 청소년 책과 성인서의 교정·교열 기준이 비슷한 까닭은, (학술서나 전문서가 아닌 대중 교양서라면) 성인서 역시 중학교 2학년생이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복문을 줄이고, 논리 구조를 명확하게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독자 범주는 상상 이상으로 넓고, 문해력 격차 또한 짐작보다 클 수 있다. 게다가 긴 호흡의 글 읽기가 점차 낯설고 어려워지는 시대다. 책이 더 많은 독자와 만나려면, 누구나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가독성과 흐름, 좋은 문장을 갖춘 책을 만들어야 한다.
교정·교열의 방향은 인문서, 예술서, 문학서, 실용서, 학술서, 사전 등 분야별로도 달라진다. 가독성, 실험성 등 책의 성격이나 강조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떤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책을 쓰거나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교정·교열 원칙은 변화한다. 이 지면에서 세부 사항까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교정·교열에는 일관성과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읽기 불편한 문장을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자의 개성을 유지하되 리듬감과 가독성을 높이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추도록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편집자는 맞춤법 검사기가 아니다
편집자가 걸어 다니는 사전이 될 필요는 없다. 부지런히 찾아보고 궁리하는 성실함이 더 중요하다. 인간 편집자만이 미묘한 맥락을 파악하고 뉘앙스를 세심하게 읽어낼 수 있다. 입체적인 사고로 책의 방향을 정하고, 그에 맞는 편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맞춤법 검사기가 수행하지 못하는 일, 그 일을 찾고 궁구하는 데서 편집 방향과 원칙이 생긴다. 결국 편집자의 전문성은 맞춤법 검사기를 넘어서고, 넘어서야만 한다. 출판사에서 전문 편집자에게 교정·교열을 맡기는 이유도 연장선에 있다. 한 분야를 오랫동안 담당한 편집자는 교정·교열 과정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지, 저자에게 어떤 특성이 있는지, 해당 분야 독자가 어떠한 책에 호응하는지 등 적확한 전략과 지침을 몸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거칠게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던 저자는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책을 내면, 여전히 꽤 잘 팔린다. 그러나 대중이 그이의 글을 재미있어할지라도 그이의 인격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사랑받는 저자는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편 그 교정지를 받아 들었던 편집자는 지금도 밤샘 작업과 주말 반납을 감수하며, 좋은 책을 만들고자 애쓴다. 저자와 독자는 때때로 움직이지만, 편집자는 대개 그 자리에 있다. 한결같이 외쪽사랑을 하면서.
김서연
『풍경의 깊이』, 『묵상』, 『신해철』, 『한국영화 100년 100경』, 『추사 김정희 평전』 등 인문·예술·문학 분야의
다양한 책을 만들었다. 『묵상』으로 제8회 우수편집도서상을 받았다. 한밤의빛을 열고, 첫 책으로 『말하는 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