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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ASIC] 관점을 교환하는 편집
2023-06-20 / 최진규 / 포도밭출판사 대표

[BASIC]
2023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포도밭출판사의 최진규 대표가 소규모 출판의 과정을 살피고 안내합니다. 3편은 <관점을 교환하는 편집>입니다. 

 

관점을 교환하는 편집
이번에는 ‘편집’에 대해 글을 쓸 차례입니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어느 출판사에서 본 입사 면접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두 곳의 출판사를 다니다 그만둔 4년차 편집자였고 2개월쯤 쉬다가 새 직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원한 출판사는 이른바 ‘대형 출판사’였고, 편집자를 뽑는 과정이 제법 까다로웠습니다. 일단 서류 심사가 있었고요. 서류 심사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용케 서류 심사를 통과한 저는 면접을 보러 회사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있었지요. 그날 가서 면접만 보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면접에 앞서 ‘교정교열 시험’을 치른다고 하더군요. 시험지에는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틀린 건지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걸 정해진 시간 안에 매끄럽고 올바르게 고쳐야 했지요. 

시험을 치른 후 잠시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사이 시험지를 채점해 그 결과로 면접 대상자를 정하는 듯했습니다. 얼마의 대기 시간이 지나고 저는 면접 대상자가 되었지요. 면접 대상자는 저와 다른 한 사람, 총 두 명인 것 같았습니다. 저희 둘은 경영진들의 방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일대일 면접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최종 면접장으로 보이는 회의실에 들어갔지요. 그곳에는 경영진 한 사람과 선임 편집자 셋이 있었습니다. 십 분 가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렇게 오래 묻는 걸 보면 나 합격 아닌가’라는 생각이 제 마음 속에서 슬며시 피어날 때였습니다. 저와 마주 보고 앉은 경영진이 제게 물었습니다. 

“만약 저자가 탈고했다며 보내온 원고가 여러 모로 수준 미달이고 문장에도 문제가 많다면, 이럴 때 진규 씨는 어떻게 하겠어요?”

뭐라고 답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출판사에서도 왕왕 겪던 일이고 그럴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냉큼 대답했지요. 

“싸워야죠. 싸워서 고쳐야죠.”

그런데 제가 말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짧은 탄식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죠. 아니나 다를까 이내 이런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건 곤란하죠. 저자는 출판사의 가장 귀한 재산이에요. 저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요. 우리 출판사는 저자를 모시는 일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여겨요. 저자와 싸우는 건 금물이에요. 원고를 뜯어 고치더라도 저자를 정성껏 모시고 받들면서 그렇게 해야죠.”

이때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고, 미소를 띤 채 활달하게 이야기하던 면접장의 모든 사람들이 이때 이후로는 모두 말을 아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떨어졌구나’ 하고 직감했고 최종 결과도 직감한 대로였습니다. 취업 실패. 

아마도 ‘저자와 싸운다’고 한 제 말이 면접관들에게 은은한 충격을 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자를 모신다고? 저자는 귀한 재산이라서 저자와는 싸울 수 없다고?’ 하면서요. 저 역시 저자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저자보다 원고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만약 원고를 모신다고 했으면 그나마 납득했을 텐데 저자를 모신다는 말은 영....” 하면서 갸웃했었지요.

지금 저때의 일을 돌아보면, 그 자리의 누구도 옳게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싸운다’는 제 말도 틀렸지만 ‘모신다’는 면접관의 말도 틀린 것 같습니다. 싸우는 차원이든 모시는 차원이든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금은 가지게 되었거든요. 저는 더 근본적이며 중요한 차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관점 교환’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자의 관점과 독자의 관점, 그리고 편집자의 관점
저는 편집자가 편집자로서 취하는 관점에 다소 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편집자의 관점은 저자의 관점과 다릅니다. 편집자의 관점은 독자의 관점과도 다릅니다. 그럼 편집자의 관점이란 어떤 성격에 가까운가. 제 생각에 편집자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관점을 교환하는 주체이자 장소인 것 같습니다.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편집자의 관점이 다소 묘하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차례대로 한번 따져볼까요. 우선 편집자의 관점은 저자의 관점과 분명 다릅니다. 저자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 전달하고 싶은 것, 그리고 이 책 출간을 통해 얻을 기회와 효과에 더욱 밀착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는 책의 영혼을 담당합니다. 책에 영혼성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은 저자에게서 기인할 테지요. 이때 편집자 역시 책의 영혼을 맡으려고 한다면? 그런 일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제 생각에 그런 일은 무척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한 몸(=책)을 두 영혼이 좌지우지하는 일은, 안 될 일은 아니지만 자칫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구체적으로는 이런 일이지요. 저자 입장에서 정말 쓰고 싶지 않은 내용이나 표현이 있는데, 그걸 편집자가 강요해서 쓰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좋을까. 반대의 경우를 고민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반드시 꼭 넣고 싶은 내용이나 표현이 있는데 그걸 편집자가 강요해서 뺄 수 있을까.

저자와 편집자 사이에 입장차가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은 실제로 꽤 자주 벌어집니다. 저러한 갈등 상황이 생기면 저자와 편집자는 협의를 해야 하지요. 이때 싸울 수도 있고 모실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때 싸우든 모시든 그러한 수단보다 더 중요한 차원이 있습니다. 독자의 관점을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편집자는 다름 아니라 독자 관점을 근거로 삼아 저자에게 간섭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는 편집자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독자의 관점을 ‘통해’ 저자 관점에 간섭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저자가 무심코 쓴 비인간동물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이 있을 때, 편집자는 저자에게 해당 표현을 고치자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저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지요. 자신의 윤리 의식과 표현 행위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수정을 거부할 수 있지요. 이때 편집자는 이러한 표현을 문제로 여기는 독자의 관점을 ‘가져와서’ 저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교환 행위처럼 말이지요. 독자의 관점을 (제대로) 수용한 저자라면 더 이상은 자기 관점만 고수하기가 어려워지겠지요. 이러한 교환들이 자꾸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겠지요. 저자의 원고 내용에 중언부언하는 부분이 많고 때로는 고루한 느낌일 때. 편집자는 역시 독자의 관점을 가져와 저자에게 주어야 합니다. 당신의 독자들이 이번 책에 바라는 게 무엇일지,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일지, 어떤 내용과 정서일지를 독자 관점에서 고민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저자의 마음가짐이나 방향 설정 등에 문제가 있다면 독자 관점을 알려주어서 이를 고치게 하는 것이지요. 이때도 편집자는 관점 교환을 일으키는 주체이자 관점 교환이 벌어지는 장소처럼 기능합니다.   

편집은 매우 단순하게 한정하면 ‘교정교열윤문’의 업무이지만, 좀 더 넓게 보면 (시시각각으로) 방향을 정해나가는 기획 업무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따지면, 여러 행위자들의 관점을 교환하는 장소를 만들고 운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소가 제 역할을 하며 잘 운용될 때 비로소 쓴 사람도, 만든 사람도, 읽는 사람도 흡족한 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러한 차원을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입니다.

 

한 권의 책을 위한 법 집행

또한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을 위한 법을 집행하기도 합니다. 이때 편집자는 경계가 유동적인 장소의 느낌이 아니라 냉철하고 단호한 집행관의 모습이지요. 그 법들이란 ‘한글 맞춤법’을 비롯해 ‘표준어 규정’과 ‘외래어 표기법’ 등입니다. 이러한 한국어 어문 규범을 지키면서 원고를 다듬는 것이 편집자의 주요한 업무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재밌는 것은, 한국어 규범 중에 원칙을 제시하는 동시에 원칙의 변형을 ‘허용’하는 규범이 간혹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는 원칙이 있지요. 그래서 본용언과 보조용언 사이는 띄어 써도 되고 붙여 써도 됩니다. ‘그릇을 깨뜨려버렸다’로 써도 맞고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로 써도 맞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지요. 전자도 가능하고 후자도 가능하지만, 한 원고 안에서만큼은 동일한 법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붙여 쓰기로 정했다면 원고 내내 붙여 써야 합니다. ‘그릇을 깨뜨려버렸다. 컵은 던져 버렸다’라고 쓰면 잘못된 것이지요. 보조용언을 붙이기로 했다면 컵도 ‘던져버려’야 하지요. 

법 집행에는 늘 합리적인 이유가 따라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 혼란과 반발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붙여 쓸지 띄어 쓸지를 정할 때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겠죠. 해당 원고가 자꾸만 멈춰 서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산책처럼 읽히기를 바란다면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띄어 쓰는 것이 어울릴 테죠. 반대로 원고가 거침없이 읽히기를 바란다면 붙여 쓰는 것이 어울릴 것입니다. 또한 워낙 원고 분량이 많고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이라 표현을 모두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해야겠다고 판단한다면, 이럴 때도 붙여 쓰는 게 좋겠지요. 

이러한 합당한 근거가 정해졌다면,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세부 사항들을 정해나갈 수 있습니다. ‘간결, 정확, 효율’을 위해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모두 붙여 쓰기로 정했는데, 원고의 어미가 모두 ‘하였다’, ‘되었다’ 등으로 돼 있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경우 해당 원고는 간결하게 다듬는다는, 앞서 정한 대원칙에 따라 ‘했다’, ‘됐다’로 고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 저자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오래 전부터 ‘하였다’로 써왔기에 ‘했다’로 바꾸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고 반대하는 것이지요. 실제로도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논리를 확장하면 ‘하지요’라고 쓰인 곳은 모두 ‘하죠’로, ‘것이’라고 쓰인 건 ‘게’로 줄여 써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붙여 썼다고 해서 원고 내 모든 표현을 할 수 있는 한 줄여 쓰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겠지요. 때문에 모든 사항을 기계적으로 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집행관으로서 편집자는 자신이 해당 원고 내에서 어떤 원칙을 적용시켜왔는지 만큼은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띄어 쓴 것과 붙여 쓴 것과 줄여 쓴 것과 안 줄여 쓴 것의 기준을 최소한 스스로는 알고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한 원고 안에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편집자는 원고마다의 법을 제정하고 집행합니다.  

정리하면, 편집자의 일은 저자와 독자 간 관점을 교환하는 주체이자 교환이 이뤄지는 장소가 되는 일이고, 원고마다의 특성에 따라 규범을 제정하고 집행해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특히 관점을 교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디자인’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최진규│충북 옥천의 소규모 출판사인 포도밭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북디자이너로도 일한다. 학교에서 편집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책방무사 멤버십이다. 어떤출판연구회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