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에 걸처 게재될 <살랑거리는 문장들>은 출판사 ‘한밤의빛’의 김서연 대표가 PLATFORM P에서 진행한 동명의 워크숍에 기반해 출판에서의 교정·교열의 방향과 방법, 원칙과 예외 등을 살펴보는 연재입니다.
“단어는 생겨나기도 하고 또 소멸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하지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살랑거리는 문장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유영하는 교정·교열 2
교정·교열은 방정식이 아니다
한 척의 배가 있다. 오랜 항해로, 배는 점차 상한다. 고장 나고 낡은 부품을 떼어내 새 부품으로 바꾼다. 하나씩 바꿔 끼우다 보면, 어느새 배의 모든 부분이 바뀐다. 원래 있던 부분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면, 이 배를 처음의 배와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배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유명한 ‘테세우스의 배’ 논쟁이다.
저자가 쓴 글의 정체성을 지키는 교정·교열은 어디까지일까. ‘교정’만 수행한 책은 처음의 배와 같고, ‘교열’까지 가한 책은 처음과는 다른 배일까. 교정·교열 기준과 범위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교정·교열에는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신입 편집자에게 선배 편집자가 작업한 교정지 대조를 맡기곤 한다. (편집자는 교정지에 저자 및 편집자 수정 요청 사항을 적어서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디자이너는 수정 사항을 반영한다. 디자이너가 수정하여 출력한 새 교정지를 기존 교정지와 비교하여, 누락된 바나 문제가 발생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일을 ‘대조’라 이른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열심히 공부하면 익힐 수 있지만, 어색한 문장을 분별하고 저자와 독자를 헤아리며 교정·교열하는 방법은 방정식처럼 습득할 수 없다. 조사를 고치면 정체성이 유지되고, 동사를 고치면 정체성을 해치는가.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의 마음과 독자의 눈으로 글을 읽어내는 편집자의 ‘감각’에 일부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배는 (결국 담당자인 자신이 대조를 직접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후배가 일을 배울 수 있도록, 신입 편집자에게 일부러 교정지 대조를 맡긴다. 이 일을 오랜 세월 해온 사람의 언어 감각, 균형 감각을 엿볼 수 있도록 한다.
다른 이의 교정지를 볼 기회가 생기면, 마다하지 말고 열심히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동료의 작업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지 못한 부분, 다른 이와 나의 감각 차이, 교정·교열 강도와 수위, 저자/독자와 소통하는 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사람 교정지에서 자신이 예민하게 다루지 않던 사항을 한두 가지만 발견하고 배워도 교정·교열 실력은 상승한다. 알지 못해서 놓치는 오류나 실수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선배는 물론이고, 후배의 교정지에서도 본보기가 될 부분은 분명히 있다. 동의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내 작업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기 마련이다.
원칙과 예외를 정하여 통일하기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교정·교열의 한 방법은 ‘통일’이다. “통일했으면 됐지, 뭐.” 편집자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통일한다는 건 일관성을 지킨다는 말이다. 일관성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은 곧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일관성과 원칙이 있으면 가독성이 높아진다.
‘띄어쓰기’는 가장 흔한 통일 요소다. 책의 서두에서 특정 개념을 ‘인간문제’라고 표기했다면, 책이 끝날 때까지 ‘인간 문제’가 아닌 ‘인간문제’로 써야 한다. 교정·교열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띄었다 붙였다 하면 안 될까. 달려가던 독자가 급정거할 수 있어서다. 몰두하여 책을 읽다가 앞서 익숙하게 보던 단어가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표기된 것을 발견하면, 독자는 멈춰 선다. ‘왜 다르게 썼지, 다른 의미/개념인가, 실수인가, 숨은 의도가 있나’ 생각한다. 찰나일지라도 독서 흐름을 깨고 몰입을 방해한다. 교정·교열은 독자가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고 저자의 사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원칙을 벗어나야 하는 특정한 말이 있으면 ‘예외’를 둔다. 만약 한 권의 책에서 다른 모든 외래어를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표기했는데 ‘슈퍼맨’만 저자에게 친숙한 표현을 따라 ‘수퍼맨’으로 썼다면, 이것이 ‘예외’다. 특히 이 단어가 책의 핵심이거나 여러 차례 반복되는 주요 개념이라면 독자에게 의도를 미리 알리는 편이 좋다. 독자에게 알려야 할 원칙이나 예외, 특이사항을 적는 곳이 바로 ‘일러두기’다. 일러두기가 없는 책도, 두세 쪽에 이르는 책도 있다. 여러 고전이나 방대한 사료를 기초로 집필한 전문 서적 등에서 주로 길게 쓴 일러두기를 만날 수 있다. 용어나 표현에 관한 용례가 다양하고 해석과 선택의 여지가 넓을수록, 일러두기를 자세하게 쓴다. 저자의 뜻을 충분히 파악하고 독서를 시작한 독자는 불필요한 의문을 품지 않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본문 약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일러두기에서 알려주는 까닭도 동일하다. 책을 겹화살괄호(《》)로, 영화를 홑화살괄호(〈〉)로 표기한다고 알렸다면, 영화와 책이 동시에 언급될 때 독자가 기호만으로도 매체를 구분해 내용을 파악하고 읽을 수 있다. 일러두기를 세심하게 작성하면, 오래전에 만든 책이나 다른 사람이 작업한 책이라고 해도 독자에게 근거를 찾아 설명하기 수월하다. 책을 만들 때마다 기준을 정해야 하는 사항(약물 쓰임, 원어 병기 방식, 숫자 및 외래어 표기 등)은 출판사 원칙이 있으면 좋다. 반복되는 사항을 매번 다시 고민하고 결정하느라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이런 원칙을 편집하기 전에 저자에게 알리면,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부분을 미리 논의할 수 있다. 저자의 뜻을 파악해 예외 사항을 정하고 책의 성격과 방향을 섬세하게 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나아가 교정·교열 원칙은 때로 출판사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책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포털 사전의 함정
오탈자는 신이 만든다거나 인쇄소에서 오류가 자연 발생한다고 편집자들이 종종 농담할 만큼 교정·교열은 어렵고 까다롭다. 이미 말했듯 교정·교열은 책을 완벽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 실수와 오류를 줄여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 사전 찾기다.
사전을 얼마나 찾아봐야 할까.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을 찾아봐야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많은 편집자가 파일 교정 단계에서 거의 모든 말을 찾아보며 의미와 쓰임을 재확인한다. 사전 내용을 취하든 취하지 않든,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하는 뜻과 규범에 맞는 표현인지 아닌지 알아야 오판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국립국어원은 대중의 언어생활과 의사소통 편익을 위해 국어를 장기적으로 연구하며 언어 규범을 정비하는 국가 기관이기에, 언중의 공통 감각을 반영하여 비교적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원칙을 세운다고 보아 이를 곧잘 평균적인 기준으로 본다).
어떤 사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아마 네이버 사전을 가장 흔하게 쓸 것이다. 뜻, 예문, 참고 사항 등을 한눈에 살피기 편리해서 편집자도 실제로 많이 쓴다. 다만 주의할 점은 네이버가 포털 사이트이듯, 네이버 사전 역시 포털 사전이라는 사실이다.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오픈사전 등 다종다양한 사전이 한데 모인 곳이다. 단어를 검색하면, 일반적인 교정·교열 지표인 표준국어대사전 외에도 다른 사전의 검색 결과가 함께 나온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어대사전은 대중이 쓰는 말을 더 광범위하게 담고 있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말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만을 기준으로 하고 싶다면, 네이버 사전 검색 시 단어 하단에 작게 표시하는 사전 구분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포털 사전에서 단어를 입력한 후 검색 결과가 나온다고 무조건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다고 판단하면 실수할 수 있다.
띄어쓰기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시간 문제’와 ‘사회 문제’라는 말을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시간-문제’, ‘사회^문제’라고 나온다. 네이버 사전에는 ‘시간문제’, ‘사회 문제’라고만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시간-문제’처럼 붙임표로 이어진 단어는 한 단어로 등재된 말이다. 사전에 있는 ‘이미 결과가 뻔하여 조만간 이루어질 일’이라는 뜻으로 쓰려면 띄어쓰기 없이 붙여 쓰라는 의미다. ‘사회^문제’는 띄어 쓰는 게 원칙이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일러두기에 다음처럼 쓰여 있다. “한글 맞춤법에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 전문어나 고유 명사는 ^ 기호를 사용하여 표시하였다. 항상 띄어서 표기해야 하는 경우는 ^ 기호 없이 띄어서 제시하였다.” 네이버 사전은 ^ 표시가 있는 단어를 별다른 구분 기호 없이 띄어 쓴다. 따라서 항상 붙여 써야 하는 단어는 구분할 수 있지만, 띄어 써도 되고 붙여 써도 되는 단어나 반드시 띄어 써야만 하는 단어는 구분하기 어렵다.
맞춤법 검사기를 믿을 수 있을까
단어마다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좀 더 간편하게 오류를 걸러내고자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꽤 효율적이지만, 맞춤법 검사기를 무작정 믿을 수는 없다. 일례로 ‘현실에 맞기 때문’이라는 구절을 특정 맞춤법 검사기에 넣으면, ‘맞기’를 ‘맡기’로 고치라고 제안한다. 맥락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전문성은 맞춤법 검사기를 넘어서고, 넘어서야만 한다고 말한 까닭도 이와 같다. 각종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기는 엉뚱한 설명을 하기도 하고 여러 한계가 있다. 맞춤법 검사기로는 결정적인 교정·교열 사항을 찾기보다 오히려 사소해서 놓치기 쉬운 오류를 잡는다고 생각하면 좋다.
사전이든 맞춤법 검사기든 절대 불변할 기준과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전도 ‘지금, 이 순간’ 검색한 결과만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사전을 계속 업데이트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뜻이나 표기를 언중 의식 변화를 반영해 수정하기도 하고, 복수 표준어나 신조어를 새로 등재하기도 한다. 그런 탓에 교정·교열 일을 10년 했든, 30년 했든 편집자는 이미 아는 말도 습관처럼 사전을 찾아보며 끊임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다.
비틀즈가 아니라 비틀스
외래어 표기도 교정·교열에서 무척 까다로운 부분이다. 표기 규칙을 편집자나 저자 스스로 정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용례에서 제시하는 표기를 따르되, 관용적 표현이나 맥락에 적합한 표기를 취하고 싶은 일부 항목은 예외로 두어 통일하면 대체로 일관성 있게 쓸 수 있다. ‘용례’란 국립국어원-한국어 어문 규범-용례 찾기 항목에 있는 단어를 말한다. 모든 외래어가 등재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용례에 없는 단어는 한국어 어문 규범-외래어 표기법 세칙을 확인하여 표기한다. 세칙을 일일이 따져 적용하기 어렵다면, 원어의 실제 발음과 유사하게 적거나 비슷한 발음을 지닌 단어를 찾아 해당 표기를 빌려 쓰기도 한다. 용례를 벗어나고 세칙에도 맞지 않지만, 저자나 대중에게 친숙한 표기를 따르는 책도 있다. 국립국어원 용례에 따르면 ‘수전 손택’은 ‘수전 손태그’, ‘비틀즈’는 ‘비틀스’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오랜 세월 ‘수전 손택’, ‘비틀즈’로 써온 탓에 여전히 많은 곳에서 관용적으로 굳어진 표현을 따르고 있다.
편집자가 꿈꾸는 정원
편집자는 저자, 독자 양쪽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 의향에 치우치면 독자를 잃을 수 있고, 독자 취향에 과하게 몰입하면 저자 의도를 벗어날 수 있다. 편집자가 별난 고집을 부리면, 저자와 독자를 모두 놓칠 수도 있다. 편집자의 목표는 저자의 시각과 독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최대한 넓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명확한 원칙과 유연한 생각을 기초로 교정·교열을 수행하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언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저자와 독자 사이를 흘러 다니고 간단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흐름을 온전히 제어할 수는 없지만, 책이 지향하는 바에 맞추어 속도와 방향을 다소 조정할 수 있다.
“모든 관계엔 정원사와 장미가 있다.” 영화 <매기스 플랜>에 등장하는 인류학자 존 하딘이 내뱉는 말이다. 저자가 장미라면, 편집자는 정원사일 것이다. 편집자라는 정원사가 책이라는 정원을 훌륭하게 일구려면, 조화와 균형을 감지해야 하지 않을까. 완벽은 신의 영역이지만,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완벽한 정원은 없다, 그러나 제법 아름다운 정원은 만들 수 있다.
김서연
『풍경의 깊이』, 『묵상』, 『신해철』, 『한국영화 100년 100경』, 『추사 김정희 평전』 등 인문·예술·문학 분야의
다양한 책을 만들었다. 『묵상』으로 제8회 우수편집도서상을 받았다. 한밤의빛을 열고, 첫 책으로 『말하는 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