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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INTERVIEW] “결국 메시지를 다루는 작업” : 우유니가 말하는 책자 디자인
2023-06-22 / 조현익 / 스튜디오 하프-보틀 대표

PLATFORM P 웹진의 ‘INTERVIEW’ 시리즈는 세 명의 인터뷰어(글지마, 정유민, 조현익)가 각각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 북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작업에 대해 들어보는 연재입니다. 그 두번째 인터뷰는 조현익 스튜디오 하프-보틀 대표가 만난 우유니 그래픽 디자이너 이야기입니다. 

 

“결국 메시지를 다루는 작업” : 우유니가 말하는 책자 디자인

우유니 디자이너는 그래픽·책자 디자이너이자 출판사 운영진의 일원으로 폭넓은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이런 원고를 만들고 싶어서’ 책자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출판에 뛰어든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출판(디자인)이 본업이 되기까지 우유니 디자이너가 직접 고민하고 경험했던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유니와 책자의 만남

우유니 저는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을 팀원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고요. 굿퀘스천은 대전에 있는 신선아 디자이너와 리모트(원격근무)로 함께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또 바나나버드라는 패브릭 중심의 리빙 제품 브랜드를 만들어서 병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이드잡으로 FDSC,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이라는 곳의 운영진으로 커뮤니티 가꾸기와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요.

조현익 우유니 선생님은 디자이너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작업과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그 중에도 출판물 작업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유니 물론 클라이언트 작업도 많이 해요. 그렇지만 내 의지와 기획으로 시작된 작업이 많은 편이긴 해요. 클라이언트 작업이든 자기주도적 작업이든 제가 할 일을 직접 선택할 수 있기를 추구합니다.

조현익 선생님께서는 책이라는 매체에 젠더를 중심으로 한 다양성과 인권이라는 주제,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수단까지 세 가지를 결합한 흐름을 이어간다고 느껴집니다. 이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안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유니 학생 때만 해도 책을 디자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브랜딩 작업처럼 크기가 큰 그래픽 디자인이 저에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글자도 많고 “오밀조밀한” 매체라서 세심한 사람이 해야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출판 디자인을 시작한 건… 회사를 그만두고 쉴 때 봄알람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20-30대 여성 사이에 페미니즘 붐이 일었고, 온라인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 이민경 작가와 이두루 편집자를 만나서 첫 책(『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내고 크라우드펀딩을 했는데 그게 잘 되었어요. 얼떨떨하던 차에 이민경 작가가 다음 책을 생각하고 있대요. 저도 책자 디자인이 재밌어서 계속 하고 싶었고, 출판사를 만들게 되었어요. 처음엔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본업이 되어버렸죠.

❶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공중화장실 이용객이 살해당한 사건. 숨어있던 범인이 수 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후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음이 드러나고 “여성이라서 죽었(죽였)다”는 공분 아래 대규모 추모 운동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성 대상 증오범죄, 페미니즘, 젠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자기주도적 작업과 클라이언트 작업의 차이

조현익 책 작업은 작가의 글이 바탕이 되다 보니 디자이너가 개입할 부분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한데요. 이런 작업에서 우유니 선생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유니 봄알람의 책을 만들 때와 다른 출판사의 디자인 외주를 맡을 때가 다른데요. 봄알람에서는 제가 내부 구성원으로서 어떤 책을 낼지 부터 같이 고민하기 때문에 첫 기획단계부터, 출판 기획을 이야기하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디자인 구상을 벌써 시작하는 거예요.  반대로 이미 꾸려진 콘텐츠를 디자인할 때에는 편집자가 디렉션을 주잖아요.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하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봄알람에서 만든 책은 그런 기준은 없어요. 그래서 내용에 더 부합하는 디자인을 고민할 머릿 속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봄알람 초기에는 기성 출판물이 잘 시도하지 않는 것을 종종 시도했어요. 예를 들어 “대리모 같은 소리” 책의 띠지는 이렇게 사선으로 되어 있어요. 봄알람은 판촉을 위한 띠지를 만들지 않거든요. 하지만 “대리모 같은 소리”에서는 책이 주는 전복적인 메세지를 나타내려고 제작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일부러 사선 띠지를 만들었어요. 이처럼 내용과 형식이 잘 맞는 디자인을 많이 고민했어요.

조현익 내용과 형식을 맞춘 것으로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에서 글자/그림의 색상과 별첨된 셀로판지를 활용해서 ‘여성을 숨기는’ 디자인도 떠오르는데요.

우유니 맞아요. 이민경 작가 머리 속에 어떤 막연한 그림, 표현하고 싶은 심상이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들었고, 또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는 여성이 차별받는 부분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장치를 이 책에 심으면 좋겠다고 상의했어요. 그걸 바탕으로 색상과 책의 물성을 내용에 연결시키는 게 재밌었어요. 작가가 원하는 심상만을 따르는 건 아니지만 내용과 연결할 지점을 찾아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대리모 같은 소리』(봄알람, 2019)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봄알람, 2017)

조현익 사실 클라이언트 작업에서는 “이 부분에 색깔을 넣어달라, 크기를 키워달라.” 이렇게 ‘요청’받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사례는 작가가 생각을 전달하고 그 후엔 디자이너가 자기 판단에 따라 작업하도록 여지를 두었네요.

우유니 맞아요. 결국 메시지를 다루는 작업이니까요. 색깔이나 글씨 크기 같은 것보다 더 근본에 해당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대화를 통해 확인하면서 디자인의 힌트를 얻어요. 그리고 봄알람에서는 구성원끼리 의견과 피드백을 자유롭게 주고받지만 결정은 담당자의 몫이에요. 이민경 작가나 이두루 편집자가 기획자로서 원하는 방향을 툭툭 던져주면 제가 힌트를 얻고 시안을 만들어 보여주는데, 어떤 것이 좋은지 상의는 충분히 한 뒤에 최종 결정은 제가 하죠.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의견 교환은 자유롭게 하는 좋은 협업 형태라고 느껴요.

조현익 클라이언트 작업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클라이언트가 어떤 기준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조건은 보통 판형이나 컬러도수처럼 디자인의 근본을 좌우하는 요소잖아요.

우유니 사실 그런 것 까지 고민하지는 않아요. 클라이언트가 제시하는 조건에 대해서 제 생각에 더 나은 제안이나 의문점이 생기면 상의를 하긴 하는데, 그 조건이 보통은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수용하게 되어요. 다만 제가 그런 제안을 한 이유를 클라이언트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죠.

 

우유니 디자이너의 책자 디자인 작업

1. 유럽 낙태 여행

우유니 이 책은 저희가 어느 날 갑자기 유럽에 가자고 해서 현지의 (임신중단권 운동) 단체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여행하며 인터뷰를 했고, 여행기를 다 같이 쓴 책이에요. 이 책에서는 저희가 방문한 유럽 나라들의 국기를 뒷표지와 배면에 가져왔어요. 앞표지는 장식적이지 않게 검은 배경에 큰 글자로 “유럽 낙태 여행”이라고 빵빵 크게 박았는데, 뒷표지를 한 번 돌아보고 배면을 보면 되게 많은 색깔이 들어오죠. 책 내용은 여행한 나라 순서대로 챕터가 구성되는데 그 나라 국기를 내지의 배면 쪽에 넣어서 일종의 인덱스 역할도 해요. 이렇게 국기를 랜덤하게 연결해서 여성들이 국가에 상관없이 연결되고 연대하는 공통의 문제, 싸움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운동회에서 보는 만국기(萬國旗) 같기도 해서 즐거운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주제 자체는 무거울 수 있지만 책 내용은 정말 가벼운 여행기거든요. 근데 앞표지는 또 반전이죠. 이것도 일부러 이렇게 한 건데, “낙태”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 낙인이 되는 단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크게 빵빵 보여줘서 마치 방패로 쓸 수 있도록. 처음 보는 분들은 흠칫흠칫 놀랐어요.

조현익 특히 큰 서점 진열대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표지만 보이니까요.

우유니 맞아요. 이렇게 책 안에 여러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담았어요. 책의 첫 기획부터 함께 해서 애정이 많이 담겼어요.

조현익 책 안의 사진도 직접 촬영하셨나요?

우유니 네. 좋은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숙소 돌아가는 길에 바로바로.   

『유럽 낙태 여행』(봄알람, 2018)

❷ 책등의 반대편. 제본되어 한 덩어리로 묶인 책등과 달리 책을 읽기 위해 펼쳐지는 면.
❸표지를 제외하고 실제 내용이 인쇄된 종이.

2. 무한발설: 성매매 경험 당사자

우유니 그리고 이 『무한발설』는 내용 구성이 특이해요. (내지를 보여주며) 특이하죠? 이렇게 성매매 당사자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우울하지 않게, 피해자성이 느껴지지 않게 드러내려고 했어요.

조현익 나쁜 의미에서의 피해이기만 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이자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우유니 이 책은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진행한 ‘무한발설’이라는 대담을 토대로 만들어졌는데요. 누군가 관찰한 게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의견을 자기의 목소리로 말한 책이에요. 그 의미가 깊은 책이어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느낌을 이미지적으로 부각시키고 싶어서 구성을 이렇게 잡았어요. 중간중간 대담이 나오다가 다시 본문 파트가 나오고.

조현익 디자이너가 기획부터 참여하니까, 원고와 레이아웃 디자인이 서로 맞게끔 짜여질 수 있었군요.

우유니 맞아요. 이런 식으로 뭔가 생명력이 느껴지는, 살아 숨쉬는 모습으로 당사자가 발화한다는 것이 좀 더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느껴지도록. 그 목소리가 정말 들리는 것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제목도 “무한발설” 4글자라서 표지 제목에 (생명력이 느껴지는) 레터링❹을 했고요.

『무한발설 - 성매매 경험 당사자』(봄알람, 2021)

 

❹상용 타입페이스(폰트)를 활용하지 않고 그림처럼 직접 그린 글씨.

3.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시리즈

우유니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은 최근에 발행하는 시리즈고, 크리스틴 델피라는 학자가 1970년에 쓴 논고들을 번역한 책이에요. 원서는 짧은 논고글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냈지만 저희는 그걸 다시 하나씩 쪼개서 독립된 책의 시리즈를 내고 있어요. 그래서 시리즈임을 이용해서 재밌게 작업하고 싶었거든요. 표지 색깔이 계속 이어지게 구성했어요. 앞권의 앞표지 색깔이 뒷권의 책등 색깔로 이어져요. 또 프랑스어 원제를 오브젝트들이 조금씩 가려서 안 보이게 했잖아요. 다음 책을 보면 원래 보이던 곳이 가려지고 가려졌던 곳이 다시 보이고. 그리고 오브젝트들도 물체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실루엣만 보이고 그 위에 패턴만 채웠잖아요. 지금은 가부장제의 문제가 많이 알려졌지만, 1970년대에는 이 글이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거예요. 여성들이 유산, 상속, 결혼, 이혼 같은 제도 속에서 해를 입는 부분을 다루고, 또 여성의 가사 내  노동, 재생산 노동의 가치가 흔히 말하는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것까지. 사람들이 이전에 몰랐던 사실을 낱낱이 뒤집어 까서 보여준 책이라고 느껴서 그 주제와 관련 있는 오브젝트를 이용한 메타포적 아트워크를 만들었어요.

조현익 이 오브젝트는 먼지털이(0권)와… 수세미(1권)인가요?

우유니 맞아요! 수세미인 걸 어떻게 아셨나요? (웃음)

조현익 오브젝트 색깔이 수세미와 비슷해서 떠올린 것 같아요. (웃음)

우유니 그리고 내지 디자인으로 넘어가면… 조판할 때 저는 글씨가 너무 작지 않게, 행간도 여유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학생 시절엔 글씨 조그맣게 하면 예뻐 보였는데, 제가 책을 집중해서 읽지 못하는 성격이고 저희 엄마는 지금 이 조판도 읽기 힘들어 하시거든요. 요즘엔 사람들이 집중해서 읽기 힘든 환경이다보니 이런 부분도 신경쓰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시리즈 (봄알람, 2022~2023)

실물 제작의 현장

조현익 배면과 책등/앞표지 같은 책자 실물 구성요소를 세심히 따지며 디자인하려면 책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실물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실 것 같아요.

우유니 그보다는 제가 그냥 만들어서 보여주는 편인데요. 예를 들어 『유럽 낙태 여행』에서 양쪽 가장자리에 색띠를 넣을 때 인쇄소에 물어보니 두께가 4mm는 되어야 페이지별 오차가 덜 보이고 안전하다고 해서 그렇게 넣었어요. 원래는 이것보다 더 얇게 하고 싶었거든요. 또 이 책(“곱게 지지 말기로 해”) 코팅도 ‘에칭(etching)❺’이라고 하던데, 용어를 몰라서 레퍼런스 책을 가져가서 “이런 코팅을 하고 싶어요”라고 보여드리고 소통했어요.

조현익 출판을 처음 할 때 그런 단어가 어렵죠.

우유니 그리고 처음 편집 디자인을 익힐 때 다른 책을 많이 참고했어요. 편집 디자인을 다루는 책 말고, 이 책은 어떤 폰트를 썼는지 크기가 어떤지 레이아웃을 어떻게 했는지, 이런 것을 참고할 여러 레퍼런스를 살펴봤어요. 옛날에는 책을 완전 많이 모았거든요. 지금 하는 작업에 대한 힌트를 얻을까 해서. 그리고 한국에는 후가공이 특이한 책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외국 잡지를 아마존에서 시켜서 많이 봤어요. 이건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Design No Hikidashi》라는 인쇄 후가공 잡지거든요. 정말 온갖 후가공을 다 볼 수 있어요.

《Design No Hikidashi》(Graphic, 일본, 2009~)

조현익 매 호 마다 표지부터 후가공이 넘쳐나네요.

우유니 특이한 제본도 많이 나오고요. 이걸 제 작업에 바로 적용하는 건 어렵죠. 하지만 이런 걸 많이 보면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디자인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레퍼런스를 보는 편이에요.

❺표면에 모래로 긁은 듯 거친 질감을 남기는 코팅 방식.

 

디자이너가 바라는 협업

조현익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우유니 선생님이 FDSC에 게재한 〈클라이언트가 알아야 할, 디자이너와 잘 소통하는 법〉이라는 글을 봤어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디자이너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우유니 작업 요청하시는 분들께 제가 견적서와 함께 보내는 문서가 있는데요. 그게 FDSC에 올린 글과 비슷해요. “이렇게 협업하고 싶다”는 가이드라인이거든요. 업무 소통에 대한 내용, 시안 갯수나 수정 갯수 제한 두는 것,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등등을 적어놓았어요. 일단 “서로 존중해야 한다.” 상하관계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같이 운영하는 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 레퍼런스 그대로 해달라는 분이 계세요. 저는 레퍼런스를 좋아하시는구나- 하면서 그걸 모티브로 찰떡같이 맞춰서 시안을 만들었는데, 이 시안이 아니라 그냥 레퍼런스 그대로 하라는 거에요.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웃음)

조현익 작업에 삽입할 글자부터 다른데!

우유니 그런 경우가 되게 난감하죠. 그러면 안 된다, 카피할 것을 강요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고요. 또 “작업 피드백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서 달라.” 실무자 의견을 듣고 수정했는데 내부 의견은 아예 다른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지 말자는 거죠. 그리고 “피드백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표현해 달라.”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인상평 말고, 이해 가능하고 실행 가능한 평가를 달라. 그리고 “본질적인 이유를 알려달라.” ‘크기를 키우고 색을 바꾸라는’ 이런 사소한 사항 말고 그 이유와 배경을 알려달라. 이런 걸 잘 지켜줬으면 해요. 그 외에는… 상대방 나이를 묻거나 자기 경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는 식으로 서로 위축되게 하는 대화를 하지 말자. 그리고 혹시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면 제가 비건인 것도 말씀드리고, 한 쪽이 식사 비용을 다 결제할 것을 기대하지 말자. 또 카카오톡으로 업무 대화 나누지 말자. 계속 쓰다 보면 위로 올라가고 정리가 안 되잖아요. 또 답장을 바로 안 보내면 뭐라고 하고. 황당한 거죠. 그러니까 업무 연락은 이메일로 해달라. (웃음)

출판을 처음 다루는 마음에 대하여

조현익 마지막 질문입니다.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출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 지는 모르겠고, 막연히 부딪히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우유니 … 너무 어려운데요. (폭소) 희망적인 말을 잘 못하는데. 출판이 돈을 많이 벌어오는 영역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당장]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기분 좋을, 그런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시작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봄알람의 시작이 그랬어요. 처음에는 원고의 양이 얼마나 될 지 몰라서 얇은 진(zine), 무가지의 형태로 내려고 했거든요. 책의 형태가 될 줄도 몰랐고 판매하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근데 이민경 작가가 쓰다 보니까 길어졌고, 그래서 책이 되었고 출판사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봄알람은 책을 만드려고 모인 팀이 아니라 ‘이런 원고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인 팀이에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잘 되어서 다행이죠.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바라보다가 너무 상처를 받을 수 있어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라는 사실에 집중해서 하면 좋겠어요.

조현익 비슷한 맥락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책으로 당장 돈 벌 생각 하지 말라고. 대신 책 작업이 다른 영역의 활동이나 수입원으로 확장될 여지가 많아질 테니 작업을 계속 하라고.

우유니 맞아요.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세상이니까요.

조현익 첫 책을 펀딩하자고 제안한 그 분 덕분에, 봄알람과 우유니 선생님도 여기까지 이어갈 수 있었고요.

우유니 그러게요. 펀딩, 펀딩을 하자고 누가 그랬지? (웃음) 7년이나 지나니까 너무 가물가물해요.

조현익 누군지 모를 그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며 (웃음) 오늘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우유니 네, 즐거웠습니다.

 

 

조현익 
그래픽 디자이너이면서 작가와 출판인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 관점, 상상, 가치관을 시각화하여, 인상적인 사고와 감각을 전달하는 문화를 만듭니다. 포스터와 책자 편집디자인, 웹디자인, 저널리즘 컨텐츠 디자인, 로고와 굿즈를 비롯한 비주얼 아이덴티티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