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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INTERVIEW]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트북의 매력 : 에디시옹 장물랭 이하규 대표
2023-06-23 / 글지마 / 작가

PLATFORM P 웹진의 ‘INTERVIEW’ 시리즈는 세 명의 인터뷰어(글지마, 정유민, 조현익)가 각각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 북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작업에 대해 들어보는 연재입니다. 그 네번째 인터뷰는 글지마 작가가 만난 에디시옹 장물랭의 이하규 대표 이야기입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트북의 매력 : 에디시옹 장물랭 이하규 대표

화려한 색감의 표지와 매력적인 이야기. 아트북은 한순간에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 십여 종의 아트북을 1인 출판하며 독보적인 행보를 걷는 출판사가 있다. 독자들 사이에서 일명 ‘믿고 사는 출판사’로 통하는 ‘에디시옹 장물랭’이 그 주인공이다.
에디시옹 장물랭은 2017년부터 꾸준히 외서를 번역출간하고 있다. 이하규 대표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이 출간 기준이라 말할 만큼 확고한 철칙으로 출판에 임하고 있다. 그의 책이 독자들에게 꾸준한 지지와 인기를 얻는 비결이 무엇일까? 해외 판권 계약부터 번역과 편집, 현실적인 실무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줄 이하규 대표를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입니다. 저희는 1인 출판사고요. 주로 유럽의 독립출판물과 19세기의 출판물을 복각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해바라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을 했었고, 《한겨레21》에서 출판 칼럼 「생각하는 만화」「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썼습니다.

‘에디시옹 장물랭’이 지닌 뜻이 궁금합니다. 또한 처음 1인 출판사를 차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에디시옹(editions)’은 프랑스어로 ‘출판사’를 의미하고요. ‘장 물랭(Jean Moulin)’은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위인의 이름입니다. 우리에게는 김구 선생님과 비슷한 이미지예요. 제가 프랑스 역사를 공부했을 당시 워낙 좋아하는 인물이었고, 또 한국인들도 알았으면 하는 홍보 목적으로 출판사 이름을 장물랭으로 지었습니다.
사실 출판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2016년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었는데요. 그때 강아지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죠. 그래서 강아지랑 저랑 먹고살기 위해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에디시옹 장물랭은 2017년, 영국 작가 로버트 헌터의 그래픽 노블 새내기 유령』를 시작으로 다양한 외서를 번역출간하고 있죠. 해외 작가와 소통하고 판권을 계약하고, 번역하여 출간하는 전체적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외서를 국내에서 번역출간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에이전시’가 중개를 해줘야 해요. 저작권 에이전시는 외국 출판사의 대리인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흔히들 중개 수수료가 클 거라고 예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대충 40만 원 정도예요. 대표적으로 ‘신원 에이전시’, ‘KCC’, ‘시빌 에이전시’ 등이 있죠.
먼저 국내에 출간하고 싶은 책을 찾으면 저작권 에이전시에 연락해 판권이 살아있는지 문의합니다. 판권이 살아있으면 계약을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책의 데이터 파일을 넘겨받습니다. 번역은 계약이 확정된 순간부터 시작해요. 작품 내용에 따라 역자를 섭외합니다. 역자는 외국어의 능력보다는 이력을 검토하고 섭외해요. 아무리 뛰어난 예술서 번역가라 하더라도 양자역학의 번역을 할 수 없으니까요. 최종 번역본을 받으면 편집에 들어갑니다. 편집자는 반드시 번역본과 원본을 대조하며 오역을 검토해야 하죠. 최소한 영어로라도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원본 자체가 오류는 없는지 본문 내용도 일일이 확인합니다.

앞서 말씀하신 ‘국내에 출간하고 싶은 책’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으시나요?
새로운 책은 아마존에서 찾습니다. 거의 매일 밤 보기는 해요. 제가 예전에 배운 건데 “10년 넘은 책이 좋은 책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 책은 출판사가 작가랑 두 번 넘게 계약을 한 거잖아요. 재계약한 이유는 책이 안 팔려도 출판사가 자존심으로 그 책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강산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이 찾는다는 얘기죠. 그래서 저는 신간보다 10년 이상 된 책을 찾아요.

그 외에도 특별한 출간 기준이 있나요?
저희는 외서를 출간하는 출판사예요. 그래서 출간 기준은 명확합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작품을 출간하는 것’이에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국내 출판계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일조하고자 한달까요? 또한 국내에는 저희보다 좋은 출판사들이 많으니 “그들이 출간할 만한 책이라면 피하자.”라는 원칙도 있습니다. 저희가 안 해도 다른 누군가가 할 테니까요.

에디시옹 장물랭의 팬이라면 익숙한 이름이 있는데요. 바로 ‘로버트 헌터’ 작가입니다. 한 작가와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출판사가 언제 제일 멋있는지 아세요? 그건 바로 작가를 사랑할 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었던 이렌 네미로프스키 작가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알뱅 미쉘 출판사의 일화를 보면서 저는 “출판사는 책을 내는 곳이 아니라 작가를 사랑하는 곳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저도 여러 가지 사정과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저희 작가님들에게 실수할 때도 있고, 서운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희 첫 작가인 로버트 헌터 작가님만은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래서 헌터 작가님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습니다.

에디시옹 장물랭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재쇄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20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매번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그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매번 저희 프로젝트를 지지해 주시는 150분 정도의 후원자님들이 계십니다. 제가 ‘명예 이사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인데, 저희가 출판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들 덕분이에요.
펀딩이 매번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플랫폼, 즉 텀블벅 덕분이에요. 만약 저희 책이 좋았기 때문이라면, 당연히 대형서점이나 동네책방에서도 반응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없습니다. 텀블벅에는 젊고, 개성 넘치고, 고지식하지 않은 분들이 모여 있는데 저희 책이 그 코드에 살짝 맞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 책을 만들 때도 기성 독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텀블벅 후원자님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넣고 있습니다. 디자인, 번역, 제작 모두요.

 

에디시옹 장물랭은 ‘인쇄물로 예술을 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 사양이 다채롭습니다. 이는 곧 제작비용과도 연결이 될 텐데요. 특히 외서의 경우 번역비, 저작권료 등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지?
규모가 큰 조직은 돈을 ‘쓰는 팀’과 ‘버는 팀’을 철저하게 구분해요. 그 경계가 모호하면 결국 돈 눈치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결과는 뻔해집니다. 책도 마찬가지예요. 제작비를 생각하면 결국 대형서점에 있는 규격화된 책밖에 만들 수 없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원칙을 세웠어요. “텀블벅 펀딩 금액은 모두 제작비로 쓴다.”라고요. 그러다 보니 종이의 질이나 제본, 후가공 수준이 올라가면서 전체적인 퀄리티가 상승하더라고요.
생활은 다른 일을 하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만으로 돈 걱정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건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얘기예요. 출판의 경우, 1인이 매월 400권 이상을 팔아야 최저 생계유지가 가능하다고 봐요. 누군가는 출판업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판만 하지 않으니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스트레스도 덜해서 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유통 계약, 세금 신고 등 할 일도 무척 다양한데요. 직원 채용의 필요성을 느끼신 적은 없나요?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작은 출판사다 보니 계획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해요. 자정이건 주말이건 할 거 없이요.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그럴 수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때가 되면 출판사를 그만둘 거예요.
사실 지금도 버겁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감각과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물론 패배적인 마인드로 이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뿌듯하달까요?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출판에서 중요한 제작 개념과 기법을 정형화시켰고, 꼭 이를 정리해서 남길 생각이에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죠. 굳이 억지로 계속 출판하는 것보다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직원이 있으면 저의 이러한 행보에 큰 지장이 생길 거 같아요.


대개 ‘독립출판’, ‘1인 출판사’라 했을 때 일반 독자들은 에세이나 소설을 떠올리기 쉬울 듯한데요. 그래픽 노블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만의 강점과 생존전략이 있을까요?
텍스트북은 독자가 책을 판단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비주얼 아트는 순식간에 판단이 가능하죠. 잘 만든 책은 반응도 빨라요.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이 독자들이 사랑해 주죠. 그래서 책을 보자마자 누구나 ‘와!’하는 감탄이 나오게끔 만들어야 해요. “예쁘지 않은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라는 평가는 이미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죠.

사업체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로서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10년이면 다 사라져요. 누군가 쓴 글이나, 그린 그림, 만든 책 모두요. 흔적도 없이요. 하지만 극히 일부는 그 시간이 흘러도 남아있죠. 시대를 넘어서 우리에게 여전히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전 그런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흘러가는 것엔 미련은 없습니다.

예비 창작자나 출판사 창업자가 가장 깊게 고민해 봐야 할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책 만드는 일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원고를 다듬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깔끔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데요. 또 여러 샘플을 꺼내 종이를 고를 때는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죠. 뛰어난 교정교열자와 디자이너가 근사한 최종본을 보낼 때는 가슴이 설렌답니다.
하지만 여기는 놀이동산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터에 가까워요. 필사적이어야 하죠. 요즘은 좋은 제작 툴과 플랫폼이 많기 때문에 출판을 전업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롯이 이 일을 통해 즐거움만 가져가시는 방안을 찾는 걸 추천드려요.

 

글지마 
‘글쓰기를 멈추지 마’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좋은 소설 쓰는, 참 독한 작가를 꿈꾼다. 꾸준히 1인 출판하며 매주 금요일에는 팟캐스트 [크래커스 북]을 통해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