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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DETAILS] 살랑거리는 문장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유영하는 교정·교열 3
2023-07-10 / 김서연 / 한밤의빛 대표

4회에 걸처 게재될 <살랑거리는 문장들>은 출판사 ‘한밤의빛’의 김서연 대표가 PLATFORM P에서 진행한 동명의 워크숍에 기반해 출판에서의 교정·교열의 방향과 방법, 원칙과 예외 등을 살펴보는 연재입니다.

“모름지기 남의 실수를 바로잡을 때는 친절해야 한다.

훗날의 작가들이 당신의 실수를 바로잡을 때에도 그렇게 친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❶

❶ 프랜시스 A. 버클영·손드라 로즈 맬리, 『각주의 기술』[『뉴욕은 교열 중』(메리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마음산책, 2018) 재인용]

 

절대 고치지 마시오, 마음껏 고치시오

“도대체 왜 고치는 겁니까.”

생각치, 생각지, 생각치, 생각지. 어간의 끝음절 ‘하’가 줄어들 때, 앞말에 ㄱ, ㅂ, ㅅ 등의 받침이 있으면 ‘하’를 통째로 줄인다. ‘하지’를 ‘치’가 아닌 ‘지’로 줄여 쓴다. 따라서 ‘생각치’가 아닌 ‘생각지’라고 써야 한다. 편집자는 ‘한글 맞춤법’에 따른 수정이라는 사실을 저자가 알 거라 믿었고, 저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반복된 수정에 화가 났다. 도대체 왜 고치는 겁니까. 저자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명해야 했구나. 저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저자는 해명을 확인한 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선호하는 뉘앙스 차이로 고치는 줄 알고 조금 화가 났다고 했다. 되짚으니, 운이 좋았다고 느낀다. 저자가 오해를 아집으로 덮기보다는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고 원칙대로 움직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사소한 교정 사항이라도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랜 세월 숙고하며 글을 써온 저자라도, 세련되고 멋진 글을 쓰는 저자라고 해도 맞춤법과 문법에는 능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교열하려는 내용을 저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수정 이유를 자세히 밝혀야 한다. 물론 구성과 흐름을 중심으로 오탈자만 살피면 되는 원고도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고심 끝에 써내는 것은 어느 저자나 마찬가지겠지만, 간결하고 명확하며 맞춤법에 맞고 읽기 쉬운 문장을 쓰는 습관이 배어 있는 이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편집자가 끼어들 여지가 적어, 교정·교열을 위해 문장에 일일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문장이 이미 잘 완성되어 있기에, 최소한의 교정·교열만으로도 독자가 저자의 뜻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쪽이 반드시 더 좋은 저자라는 말은 아니다. 글 쓰는 이는 저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다. 구성과 내러티브 짜기에 능숙한 저자도 있고, 문장 쓰기에 능란한 저자도 있다.

그리고 저자는 대부분 편집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깎고 다듬어, 독자에게 전해질 책을 정성스럽게 구축한다. 다만 교정·교열의 방법론을 궁리하고자, 잠시 양극단을 가정해본다. ‘절대 고치지 마시오’와 ‘마음껏 고치시오’. 언뜻 절대 고치지 말라는 저자가 함께 작업하기에 훨씬 까다롭다고 짐작할지 모른다. 하지만 뜻밖에, 작업은 효율적이고 압박감도 덜하다. 절대 고치지 말라고 말하는 저자는 대개 ‘글은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마음껏 고치시오’라고 말하는 경우는 어떨까. 맞춤법이니 비문이니 하는 문제는 편집자의 전문 영역이니 알아서 해달라는 저자를 만났다면, 이때야말로 긴장해야 한다.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온전히 편집자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믿고 맡긴다’ 하는 저자는 긴 세월 여러 책을 출간하면서 편집자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 경우다. 편집자는 저자가 문장을 수정했다고 불쾌해할까 봐 전전긍긍하지는 않아도 되겠지만, 교정·교열은 그만큼 더 철저하게 진행해야 한다.

어느 쪽도 쉬운 길은 아니지만, 편집자는 어떤 경우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적절한 물살을 타고 독자에게 오롯이 흘러가도록 할 최선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저자의 뜻을 이해하고자 부지런히 교류해야 하고, 독자의 마음을 읽고자 열심히 둘러보아야 한다. 교정·교열은 소통의 기술이기도 하다.

 

호흡과 리듬 조율하기

독자와 책으로 소통하고자 할 때, 교정·교열의 기본 방향은 뜻이 분명하고 읽기 쉬운 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연재 글과 이어지는 맥락에서) 원칙을 세워 일관성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하고,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범과 표준국어대사전은 범용 기준이 된다.

교정·교열에 필요한 원칙은 무엇일까. 어문 규범을 기초로, 조사는 붙이고 의존명사는 띈다. 사전에 품사가 ‘조사’라고 쓰여 있으면 체언, 부사, 어미 등과 붙여 쓴다. ‘의존명사’는 자립성이 있어서 띄어 쓴다. 보조용언 띄어쓰기는 책의 성격에 부합하도록 원칙을 세운다. 보조용언을 붙이기로 했으면, 보조동사/보조형용사가 나올 때 일관성 있게 붙여 쓴다. 보조용언 띄어쓰기를 통일하면, 책에 일관된 리듬감을 주고 가독성이 높아진다.

외래어 및 숫자 표기 방식과 고유 명사 띄어쓰기 등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외래어를 국립국어원 용례에 따라 쓸 것인지, 숫자를 만 단위로 띄어 쓸 것인지, 숫자를 한글로 쓸지 아라비아로 쓸지(‘오후 한 시’ 또는 ‘오후 1시’), 고유 명사는 어떠한 단위로 띄어 쓸지(‘뉴욕 주립 대학교 미술 대학 부속 시설’ 또는 ‘뉴욕주립대학교 미술대학 부속시설’) 정해야 한다.

글에는 호흡이 있다. 글쓴이가 책에 부여한 리듬이 독자에게도 전달된다. 빠르게 읽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곱씹으며 천천히 읽게 되는 부분도 있다. 띄어쓰기와 문장 구조, 한 문장의 길이 등은 독서 리듬에 영향을 준다. 교정·교열을 거치며 책 전체의 리듬감이 적절히 조율되어야 한다.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편집자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독자에게 알맞은 속도로 유연하게 흘러가도록 작업해야 한다.

 

엄마 뱃속에 아이가 있다?

자주 실수하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수많은 사례가 있어, 여기서는 극히 일부만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 열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에 맞추어 교정·교열을 한다면, 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된 말은 붙여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안쪽을 의미하는 ‘속’은 다른 명사와 결합해 한 단어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 가슴속, 마음속, 뱃속, 콧속, 입속, 물속, 땅속, 산속, 바닷속 등은 모두 붙여 쓴다. 특히 ‘뱃속’을 유의하자. 이따금 방송 자막 등에 신체의 배 안쪽을 ‘뱃속’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 속’이라고 써야 옳다. 뱃속은 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엄마 뱃속에 아이가 있다’라는 말은 엄마 마음에 아이가 있다는 뜻인데, ‘뱃속’은 사실상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임신했다는 의미로 쓰려면 ‘엄마 배 속에 아이가 있다’라고 해야 한다.

지난주, 지난달, 지난해, 지난밤 등도 모두 한 단어다. 다음날, 다음번도 한 단어다. 다만 ‘다음날’은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어떤 날을 의미하며, ‘다음 날’은 특정한 날의 바로 다음 날을 뜻하므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 지난봄, 지난여름, 지난가을, 지난겨울은 모두 한 단어이지만, 다음 봄, 다음 여름, 다음 가을, 다음 겨울은 띄어 써야 한다. 첫해, 첫눈, 첫여름 등 ‘첫’과 결합한 말도 한 단어가 많다. 가로막다·들어서다·빠져나오다 등 합성동사는 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된 말이므로 보조용언을 띄어 쓰는 것으로 정했어도 붙여 써야 한다.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도 주의해야 한다. 꽃피우다(은유)·꽃 피우다(실제 꽃), 찬바람(은유)·찬 바람(실제 차가운 바람), 벗어던지다(체면, 굴레 등 추상적인 것을)·벗어 던지다(옷 따위를), 그사이(시간 간격, ‘그사이를 못 참고, 집을 청소했다’)·그 사이(공간 간격, ‘그 사이에 책상을 배치했다’), 집안(일가)·집 안(실내), 잘 하다(종종)·잘하다(실력), 못 하다(상황이 되지 않음)·못하다(능력이 떨어짐) 등은 맥락과 의도에 따라 구분해서 써야 한다.

시간/기간과 함께 쓰이는 ‘간’·‘만’·‘지’도 띄어쓰기를 자주 혼동하는 항목이다. ‘시간+-간’(‘사흘간’), ‘시간+∨만’(‘20년 만의 귀향’), ‘기간+∨지’(‘헤어진 지 3년’)로 구분해서 써야 한다. 대상과 대상 사이를 뜻하는 의존명사 ‘간’(‘사촌 간’)은 띄어 쓰므로 주의한다.

 

외우지 말고 찾아보자

맞춤법을 주의해야 할 항목도 다양하다. 앞서 말했듯, 어간의 끝음절 ‘하’ 앞말에 ㄱ, ㅂ, ㅅ 등의 받침이 있으면 ‘하지’를 ‘지’로 줄인다. 동사의 원형이 ‘-하다’가 아닌 경우도 표기에 주의해야 한다. 동사의 원형이 ‘삼가하다’가 아닌 ‘삼가다’이므로, ‘삼가해주세요’가 아닌 ‘삼가주세요’라고 쓴다.

이어지는 행동이나 내용을 표현할 때는 동사 ‘그러다’를 활용한다. ‘그리고는’이 아니라 ‘그러고는’이라고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나서’가 아니라 ‘그러고 나서’라고 쓴다. ‘알맞다’, ‘걸맞다’는 형용사다. 형용사에는 현재형 어미 ‘는’을 붙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알맞는’, ‘걸맞는’이 아니라 ‘알맞은’, ‘걸맞은’이라고 쓴다. 동사의 어간 뒤에는 어미 ‘는’과 ‘은’이 모두 올 수 있지만, 형용사 뒤에는 어미 ‘은’만 붙는다.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와 ‘-히’도 틀리기 쉽다. 발음으로 구분하거나 전부 기억하기는 어렵다. ‘꼼꼼이’가 아니라 ‘꼼꼼히’ 사전을 찾아보자. 사이시옷도 규칙이 있다고(‘셋방·숫자처럼 한자어와 한자어가 합쳐질 때 사이시옷을 사용한다’, ‘된소리와 거센소리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사용하지 않는다’ 등등) 하지만, 외우기 어렵고 예외가 많다. 사실상 규칙을 외울 수 없다 여기고 그때그때 검색하자.

‘되’와 ‘돼’ 구분은 흔히 아는 내용이다. ‘되’ 뒤에 ‘-어’가 붙었을 때만, 줄여서 ‘돼’로 쓴다. 곧잘 쓰는 구분법으로 ‘되/돼’ 대신 ‘하/해’를 넣어보고 말이 자연스러운 쪽을 따르는 방법이 있다. ‘선생님이 핬어(됬어)?’와 ‘선생님이 했어(됐어)?’를 비교해보면, ‘선생님이 했어?’가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됐어?’라고 쓴다.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말의 형태가 여러 가지일 때, 그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주로 그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 따라서 비표준어가 표준어만큼 익숙해서 틀리기 쉬운 단어도 많다. 표준어(괄호 안은 비표준어)와 비표준어를 비교해보자. 새벽녘(새벽녁), 희로애락(희노애락), 안절부절못하다(안절부절하다), 어쭙잖다(어줍잖다), 천장(천정), 머리말(머릿말), 며칠(몇일), 설렘(설레임), 금세(금새), 눈곱(눈꼽), 곱빼기(곱배기), 오랜만(오랫만), 웃어른(윗어른) 등이 있다. 비표준어 단어가 언중에게 표준어만큼 널리 쓰이면, 나중에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기도 한다. 맞춤법이나 이와 관련된 규칙을 무조건 외우려고 애쓰기보다는 혼동되는 말이 나오면 즉시 사전을 찾아보는 편이 정확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의문부호

어문 규범이나 표준어는 의식 변화를 반영해 수정되곤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물론이고 교정·교열이나 맞춤법 관련 책도 그 내용을 항구적이라 믿고 의지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편집자는 아는 바도 항상 의심하고, 믿는 바도 매번 다시 찾아본다. 오랜 세월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찾는 항목이 조금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암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쉼 없이 질문을 던지며, 반드시 찾아보고 확인하는 것이다.

다른 많은 일이 그러하듯, 편집도 끝없이 의문을 품는 일이라 생각한다. 편집자는 저자/독자/편집자를 신뢰하되 또한 의심해야 한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특히 편집자 자신에게 엄격하고 세심하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낼 수 있다.

최승자의 시 <?>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몸은 걸어 다니는 의문부호, 그 숫자는 날마다 늘어간다.” 삶도, 생각도, 편집도, 의문부호를 끊임없이 피워 올리는 일 아닐까. 줄곧 느낌표를 찍고 싶지만, 끝없이 물음표를 나열하다가 느닷없이 마침표를 마주하는 숙명을 헤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으로서, 일개 편집자로서, 날마다 겸허해진다.

 

김서연
『풍경의 깊이』, 『묵상』, 『신해철』, 『한국영화 100년 100경』, 『추사 김정희 평전』 등  인문·예술·문학 분야의
다양한 책을 만들었다. 『묵상』으로 제8회 우수편집도서상을 받았다.  한밤의빛을 열고, 첫 책으로 『말하는 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