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FORM P 웹진의 ‘INTERVIEW’ 시리즈는 세 명의 인터뷰어(글지마, 정유민, 조현익)가 각각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 북디자이너를 만나 각자의 작업에 대해 들어보는 연재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글지마 작가가 만난 에디토리얼 출판사의 최지영 대표 이야기입니다.
작은 출판이 희망적인 이유 :
에디토리얼 최지영 대표
최근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그 해답을 찾는 사람들이 과학 분야 서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한 김초엽 작가의 등장으로 SF(공상과학) 소설은 장르 마니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격변의 흐름이 일어나기 전부터 과학을 주력 출간 분야로 한 ‘작은’ 출판사가 있다.
에디토리얼 출판사의 최지영 대표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2018년부터 과학과 인문학 분야의 교양서, SF소설 등 17종의 책을 출간했다. ‘오래도록 읽히는 한 권’을 내는 것을 출판 기준이라 밝힌 그녀는 노련한 편집자답게 기획 철학부터 외주 작업자와의 소통 방법, 노동 방식과 환경에 대한 생각 등 다채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에디토리얼 출판사를 꾸려 가는 중인 최지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출판사 ‘에디토리얼’이 지닌 의미와 출판사 창업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인하우스 편집자로 오래 재직하다가 2012년에 동업으로 1인 출판사를 처음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새롭고 도전적인 시도를 통해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10년 전이니까 팔팔했던 때라고 할 수 있죠, 지금에 비하면요.(웃음)
2018년에야 독자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하던 일을 자연스레 이어 갔던 상황이라 새롭게 창업한다는 느낌이나 각오 같은 건 갖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명도 어떤 의미를 새겨 짓지 않았어요. 그저 평소에 ‘도토리’의 어감과 생김새를 좋아하는데, ‘도토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출판사들이 있는지라, 초성이 들어 있는 영어 단어를 골랐어요. 작명이 좀 무성의했나요?
전혀요! 가끔은 단순함이 최고의 기술이니까요. 무성의를 걱정해 주신 것과는 다르게 지금껏 에디토리얼은 2018년부터 한국 작가들의 앤솔러지 소설과 과학서, 일본 SF소설, 프랑스 작가의 철학서까지 총 17종의 책을 출간했는데요. 출판 분야가 명확한 동시에 또 다채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님만의 출판 기준이 있을까요?
출간 분야가 다채롭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호적으로 봐주셨다고 생각해요. 1인 출판사로서는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게 약점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점을 의식해서 최대한 이르게 10종을 출간하리라 작심했는데도 5년 동안 17종에 그쳤습니다. 과학과 인문학 분야의 교양서, SF소설 이렇게 세 분야의 책을 출간하고 있는데, 이 기조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소설은 장르 전체로 확대해 보려고 합니다.
출판 기준을 물으셨는데 ‘오래도록 읽히는 한 권’을 내는 것입니다. 혼자 출판하게 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1인 출판이 아니라 ‘작은 출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작다’는 낱말의 뜻이 부정적일 수 있으니까 바꿔 말한다면, 적정한 인원이 모여 적정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적정한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나누는 거예요.
‘작은 출판’이라니. 멋진 의미네요.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는데, 제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제가 추구하는 작은 출판의 모델을 만드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분은 자랑삼는 일을 삼가 알려지길 피하는 성향일 것 같거든요.(웃음) 능력치가 100인 사람이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능력치가 80, 50, 70, 60으로 제각각인 여럿이 일할 때 가장 좋은 창발성이 발휘된다고 믿어요. 어떤 책을 내고자 한다는 철학이 아니라 노동 방식과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후자가 전자를 채워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디토리얼은 최지영 대표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만큼 디자인, 편집, 교정 교열, 마케팅 등의 업무는 외주 작업을 많이 하실 듯한데요. 평소 협업하고 싶은 작업자는 어떻게 찾아보시는 편인가요?
지금까지는 주로 친구 출판사의 도움으로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분기당 1권을 출간하는 것이 목표이니까 아주 많은 외주 작업자가 필요하지는 않아요. 여전히 직접 책을 만들고 싶은 편집자 본성이 살아 있기도 하고요. 초기에는 새로운 작업자와 일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제가 커버할 용의가 있었고 체력도 됐거든요.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문제더군요. 에디토리얼에서 내는 책들이 무겁진 않지만 얇거나 말랑말랑하지도 않아서 이제는 현실에 순응하여 베테랑 외주자를 선호합니다. 마케팅은 외주로 맡기지 않아요. 외주 마케터를 고용하려면 출간 종수를 더 늘려야 하는데 아직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외주 분야마다 소통하는 방식도 차이가 있을까요?
제 경험에 국한된 것이니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외주 작업자와의 소통은 작업의뢰서로 시작됩니다. 진행할 원고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저이니까 작업을 수락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의뢰서를 작성합니다.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일의 범위와 내용, 일정, 조건이고요. 이런 아웃라인을 의뢰서를 통해 미리 전달하고 작업이 수락되면 미팅을 통해 세부적인 것을 결정합니다.
외주 분야마다 일의 내용과 특성이 명확히 다르고 작업자의 개인차도 있기 때문에 상황에 처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외주 작업자는 의뢰인의 요구를 경청하고 수용하시는 편입니다. 그리고 일잘러로 알려진 분들을 보면 질문을 꺼리지 않습니다. 묻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체크하기 위해 묻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사실 책은 늘 새로운 책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길게 호흡을 맞춰 온 외주 작업자와 일을 해도 책이 바뀌면 이전과 다른 작업이 됩니다. 연락 횟수는 적은 것보다 많은 편이 낫다는 통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대표님은 기획 단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시나요?
투고의 경우 출판사의 결에 맞는 기획/원고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오래도록 읽히는 한 권, 출판사의 결에 맞는 책 같은 문구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의 수명은 독자에 의한 지속적인 발견이 좌우합니다. 출판사 대표/편집자의 머릿속에 있는 지향점이 독자가 필요로 하는 책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이 간극을 최대한 좁히는 일이 기획이겠지요. 독자의 필요는 이미 존재하기도 하고, 그로부터 작은 분화가 생기기도 하고, 새로운 갈래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후자로 갈수록 난도가 높은 장기 과제가 되겠네요.
그렇다면 에디토리얼은 출판사의 지향점과 독자의 필요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왔을까요?
앞서 말한 세 영역 중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창업 준비 단계에서 결정될 겁니다. 에디토리얼은 과학을 주력 출간 분야로 정했는데, 융합적인 관점에서 집필된 과학책을 포지셔닝 포인트로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런 저술 방향에 적합한 저자를 섭외하는 일은 처음에도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SF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르물 중에서도 마이너한 장르라고 인식되고 있는 SF를 내기로 했으니 이 장르의 ‘찐’ 맛을 보여주는 소설을 선별해 결을 맞추어 가기로 결정했지요.
그런데, 정말 환영할 만하고 바람직한 변화가 급작스럽게 발생했습니다. 김초엽이란 소설가의 등장으로 기성 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고 있던 견고한 장벽에 균열이 생겼고 이후로는 비가역적 변화와 혼종 현상이 도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중대한 변화기류는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1인 출판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입장에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그 힘든 점은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 편인지?
힘든 점만 말씀드리면 그 여집합이 좋은 점이라 여겨주세요. 몇 년 전부터 진흥원 지원사업의 1인 출판사 기준도 변경되었어요. 그만큼 1인 출판사가 증가 추세인데, 대략 10년 전 1인 출판사란 명칭이 활발히 불리기 시작했을 때의 1인 출판사와는 다르게 최근 1인 출판사는 사내 정규직 없이 대표자 1인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 많아진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해요. 편집자 1인이나 영업자 1인과 대표 1인으로 창업하던 상황에 비하면 더 가벼워진 것인데 이를 단순히 열악해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듯해요.저도 대표자 1인으로 구성된 작은 출판사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힘든 점은 혼자 일을 해야 하는 환경 자체라는 걸 해가 갈수록 절실히 깨닫습니다. ‘아, 난 회사 체질인가?’라는 생각이 이따금 들기도 하고요. 다시 말해 업무상 꼭 필요한 대화만이 아니라 일을 하는 중에 불쑥 말이 나올 때가 있잖아요. 가령 원고를 읽다가, 인터넷 기사나 소셜미디어를 읽다가 “어,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올 때 대꾸해 주는 동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냥 사사로운 수다가 필요한 때도 있고요. 무용한 대화의 시간은 여러모로 유용해요. 카톡도 바로 곁에 있는 동료의 즉자성을 대신해 주진 못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직원보다는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동료가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에디토리얼은 『에디토리얼 사이언스 : 모두를 위한 과학』과 『마로 시리즈』 등 꾸준히 시리즈 도서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독자들이라면 열광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한데요. 꾸준히 높은 퀄리티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역시나 호의적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내세울 만한 특별한 원동력이 없는데요. 타고난 체질이 뭔가 꾸준히 하는 데 최적화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큰 틀을 짜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궁리하면서 기획하고 출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현재와 같은 시리즈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소설 『진화 신화』의 경우 알라딘 독자 북펀드를 진행하셨습니다. 알라딘 북펀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알라딘 북펀드는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절차와 준비가 간소하며, 후원자에게 도서 외 추가적인 리워드를 드리기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손이 적은 작은 출판사에게 알맞은 형태예요. 알라딘 회원 중 장르물 애호가가 많기 때문에 해볼 만했습니다. SF계에는 서로 끈끈하게 지지하는 미풍양속이 살아 있어 당시 펀딩은 무난히 달성했습니다. 물론 지인 후원이 상당했을 거예요. 늘 음으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을 잘 압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 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이용해 보신 적이 있나요? 북 펀딩을 여러 번 진행하면서 느낌 점이 있다면?
저는 텀블벅과 알라딘 북펀드를 진행해 봤습니다.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개인 창작자나 소규모 출판사가 아니라 중견 상업 출판사가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북펀딩이 마케팅 수단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펀딩의 주체에 따라 여러 층위가 형성되는 것이죠.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기성 출판사와 달리 제작비 마련과 확실한 초기 판로 확보를 타깃으로 하는 소규모 출판사라면 책의 성격을 잘 판단해 펀딩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플랫폼 유저와 일반 시장의 구매자가 상당히 중첩되는 경우가 있어, 펀딩 완료 후 일반 시장에 배본된 후 책이 움직이지 않아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시장의 홍보는 별도의 업무이기도 하고요.
앞서 언급했던 책 『진화 신화』의 경우 『신령한 것이 나오시니』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도 출간됐습니다. 글자책과 그림책의 홍보 방법이 많이 달랐을까요?
『진화 신화』 홍보 작업은 그림책 버전인 『신령한 것이 나오시니』의 출간 후 본격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진화 신화』는 김보영 작가님의 단편 중 가장 여러 번 출간되었을 정도로 이미 많은 독자가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신장판 출간 소식을 알리면서 그림책 버전을 알리는 일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림책은 작업 기간, 개발비 등 투입 요소를 감안하면 정말 열심히 알려야 했거든요. 원화를 활용해 만든 그림엽서를 판촉물로 제작하고, 원화 전시회를 겸한 북토크도 계획했고요. 특별한 계획은 아니죠. 속초의 명소인 ‘완벽한 날들’에서 1박 2일 일정을 잡아 첫날에는 책거리를 하고 둘째 날에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원화 전시회는 ‘완벽한 날들’과 제주 명소인 ‘책방 소리소문’에서 진행되었고요. 원화를 보내고 받는 일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서 더 이어서 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작은 출판’을 꿈꾸고 있는 예비 창작자나 출판사 창업자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독립출판을 하시거나 창작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보면 기성 출판계 안에서 성장한 저와는 다른 점이 보여요. 굉장히 적극적이고 자기 목소리를 발화하는 데 서슴없어요. 저는 편집자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데 훨씬 익숙하고 편해요. 성향 탓도 있겠지만요. 제 MBTI를 모르지만 저처럼 I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책을 만드니까 일단 시작하기로 결심하셨다면 집중해서, 꾸준히, 즐겁게 하시길 바랍니다.
글지마
‘글쓰기를 멈추지 마’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좋은 소설 쓰는, 참 독한 작가를 꿈꾼다. 꾸준히 1인 출판하며 매주 금요일에는 팟캐스트 [크래커스 북]을 통해 청취자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