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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DETAILS] 살랑거리는 문장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유영하는 교정·교열 4
2023-07-28 / 김서연 / 한밤의빛 대표

4회에 걸처 게재될 <살랑거리는 문장들>은 출판사 ‘한밤의빛’의 김서연 대표가 PLATFORM P에서 진행한 동명의 워크숍에 기반해 출판에서의 교정·교열의 방향과 방법, 원칙과 예외 등을 살펴보는 연재입니다.

망각을 견디는 일
푸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낙마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초인적인 기억력을 얻었다. 그는 영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라틴어를 어려움 없이 익힐 수 있고, 포도 덩굴을 이루는 모든 줄기와 포도알을 인식할 수 있으며, 4월 30일 동틀 무렵 남쪽 하늘 구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온전히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개별자처럼 기억하고 인지하는 까닭에 일반화나 추상화를 할 수 없다. 푸네스는 ‘개’라는 말이 수많은 크기와 형태를 지닌 다양한 개체를 포괄함을 이해하기 어렵고, 3시 14분에 옆에서 본 개와 3시 15분에 정면으로 마주한 개가 동일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해 괴롭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쓰레기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보르헤스는 『Funes El Memorioso』에서 절대적인 기억 능력을 지닌 푸네스라는 인물을 묘사하면서, 역설적으로 망각과 죽음이 지닌 의미를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은 기억하기 위해서 망각하는 게 아닐까.
인간을 알고 싶어지면 인간 아닌 것을 생각하게 되고, 문명이 무엇이냐 물으면 문명 이전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책을 궁리하다 보니 자꾸만 그 반대를 짚어보게 된다. 좋은 책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은 안다. 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푸네스와는 정반대로 모든 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불안해질 만큼, 내가 읽은 무수한 책이 머릿속을 그저 스쳐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몇몇 책은 분명히 살아남는다.
우리는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까맣게 잊기도 하고, 사소한 일을 절대 잊지 않기도 한다. 인간은 주의를 집중한 내용만 기억한다고 한다. 즉 무엇이든 자신에게 유의미하게 인식되어야만 오랜 기억으로 남는다. 출간하는 모든 책은 독자에게 유효한 흔적을 남기려 몸부림치며, 교정·교열은 그 노력의 일부다. 좋은 문장을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측정할 수 없기에, 교정·교열은 까다롭다. 내게 교정·교열은 망각을 견디는 문장을 만드는 일이다. 잊을 수 없어서 어딘가 적어두고 싶은 문장. 좋은 문장은 글쓴이와 읽는 이를 잇는다.

 

문장을 섬세하게 가다듬기
지난 글에서는 맞춤법, 띄어쓰기 등 (굳이 구분하자면) ‘교정’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교열’과 관련한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독자에게 기억될 만한, 의미가 분명하고 좀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고자 편집자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까. 이 역시 극히 한정적으로만 다룰 수 있을 테고, 일부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될 것이다. 우선순위가 아니라 떠오르는 순서대로 언급할 텐데, 다른 편집자는 무슨 내용으로 교열하는지 궁금한 분에게 약간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교정·교열을 진행할 때, 아는 단어는 아는 바를 재확인하려고 사전을 검색하고 모르는 단어는 제대로 알고자 사전을 찾는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하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처럼, ‘다르다(비교되는 두 대상이 같지 않음)’와 ‘틀리다(올바르지 못하거나 순조롭지 않음)’는 다르다. 불은 댕기고, 얼굴은 땅기고, 입맛은 당긴다. 창가에 있던 짐을 들어내면, 산봉우리가 드러난다. 벽지는 붙이고 편지는 부친다. 친구를 의자에 앉히고, 떡은 시루에 안친다.
근거 없는 구어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와 동일한 의미로 옛말의 뉘앙스를 담아 ‘헌데’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데’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를 대체하는 말도 ‘허나’가 아니라 ‘하나’라고 써야 한다. ‘이제와 이럴 수는 없다’ 같은 표현도 이따금 보인다. ‘이제와’가 아니라 ‘이제야’ 또는 ‘이제 와(서)’로 써야 한다.
의미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각종 번역어 투도 피한다. 번역어 투가 단순히 외국어 투여서 문제시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꺼린다.

대표적으로, 불필요한 피동형이나 이중 피동형 문장이 있다. 피동형을 남용한 문장은 뜻을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피동사 ‘찢기다’에 피동 표현 ‘-어지다’가 결합하여 이중 피동 형태인 ‘찢겨지다’라는 동사가 탄생한다. ‘찢기다’, ‘찢어지다’라고 쓰는 편이 명료하고 적확하다. ‘묻혀지다’는 ‘묻히다’, ‘보여지다’는 ‘보이다’, ‘불리우다’는 ‘불리다’, ‘쓰여지다’는 ‘쓰이다’, ‘잊혀지다’는 ‘잊히다’, ‘읽혀지다’는 ‘읽히다’로 쓰면 충분하다. ‘나는 엄마에게 길들여졌다’라는 문장도 ‘엄마는 나를 길들였다/나는 엄마에게 길들었다’라고 수정하면 뜻이 명확하고 더 좋은 문장이 된다.
일본어 투에서 생겨난 어색한 말도 있다. ‘법에 있어 원칙’은 ‘법의 원칙’이라고 쓸 수 있고, ‘교육에서의 발전’은 ‘교육의 발전’이나 ‘교육 발전’으로 쓰면 된다. 조사 ‘의’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부모님의 집의 창문’, ‘혼자의 힘으로’, ‘사건의 해결’은 모두 ‘의’를 쓰지 않아도 되는 표현이다. 되도록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말을 쓰고자 애쓴다.
영어 투에서 발생한 부자연스러운 말도 있다. ‘만남을 가졌다’는 ‘만났다’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 ‘웃음을 터트렸다’로, ‘그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연구 중에 있다’는 ‘연구하고 있다’, ‘하고 있는 중이다’는 ‘하고 있다’로 고치면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된다.
복수형을 만드는 보조사 ‘들’도 남용하지 않는다. 한국어에서는 복수형을 쓰지 않으면 외려 간결하고 읽기 편한 문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식어에 이미 복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때는 ‘들’을 쓸 필요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그 모든 학생들, 선생님들, 학부모들’이 아니라 ‘모든 학생, 선생님, 학부모’라고 쓰면 같은 의미가 더 간명하게 드러난다.
비문도 꼼꼼하게 점검한다. ‘선생님은 친구에게 새해 선물을 전했고, 그 보답으로 식사를 대접했다(주어가 없는 경우)’, ‘소란이나 신발을 벗지 마세요(주어와 서술어 불일치)’, ‘우리는 결코 승리했다(‘결코’는 부정어와 호응)’, ‘최근 들어 극심하게 슬퍼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시제가 자연스럽지 않음)’ 등은 저자에게 의도를 확인하여 수정해야 하는 문장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내용은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원칙이 아니다. 저자가 의도한 바를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지만 그대로 써야 할 때도 있고, 반복되는 일부 습관이 간혹 저자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물론 교열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글을 쓰는 저자도 있다. 좋지 않은 습관으로 점철된 글을 쓰는 저자가 외려 드물다. 다만 어떤 표현이든 저자가 의도했다고 느껴지면 괜찮지만, 퇴고나 교정·교열을 게을리했다는 인상을 준다면 곤란하다. 정교한 문장과 저자의 생생한 표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감각이 편집자의 요령이자 역량이다.

불안과 긴장의 쳇바퀴
실수나 오류가 있으면 책의 인상이 나빠진다. 독자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이 생긴다. 정성스럽게 교정·교열을 하여 좋은 문장을 만들어놓고, 엉뚱한 곳에서 실수하면 독자가 허술한 책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편집자가 ‘마감 전 체크리스트’를 정리해두고, 데이터를 넘기기 직전까지 재차 원고를 확인하는 이유다. 따라서 본문 문장을 다듬는 일뿐만 아니라, 마감할 때까지 책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편집자가 수행하는 모든 일이 큰 틀에서 교정·교열 범주에 속한다.

본문 마감 시 우선 확인해야 할 사항은 표제지, 속표제지 등에 쓴 제목, 저/역자 이름, 출판사명 등이다. 저자나 역자 이름을 잘못 써서 책을 다시 찍는 사례를 가끔 보았기에, 이름과 제목 표기는 마감 전에 수십 번 들여다보아도 부족하다 느낀다. 번역서라면 원서 저작권 표기도 꼼꼼히 보아야 한다. 기재한 내용이 계약서에서 요청한 사항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발행 연도가 올바른지 살핀다. 한국어 판권도 저작권자와 디자이너 및 제작처, 출판사 정보 등 표기가 정확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발행일도 잘 확인해야 한다. 연말연시에는 각별히 주의한다. 해를 바꾸어 쓰는 일이 생각보다 잦다.
차례의 쪽수 및 각 장 제목이 본문과 일치하는지 최종적으로 대조해야 하고, 디자인 오류나 누락이 없는지도 살핀다. 쪽 번호 등이 불필요한 면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인쇄 시 문제가 발생할 부분은 없는지 살핀다. 의도치 않게 한 행이 비거나 백면이 생긴 부분은 없는지 검토한다. 인쇄 대수를 고려한 쪽수인지, 본문 흐름이 어긋나거나 본문 일부가 빠진 부분이 없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살펴본다.
표지를 마감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역자 이름과 제목 표기가 정확한지(제목 띄어쓰기와 맞춤법, 원제) 살피는 일이 최우선이다. 영문 등 외래어가 쓰인 표지는 철자를 여러 번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 도판, 일러스트, 디자인 관련 저작권 표기도 정확한지 살핀다. 바코드는 문제없이 인식되는지, 표지와 띠지에 모두 있는지, 전부 동일한지, 최종 가격으로 입력했는지 확인한다. ISBN 및 부가 기호와 가격 숫자에 오류가 없는지 살펴본다. 날개 등에 실리는 저/역자 소개도 세심히 봐야 한다. 생몰년·수상 연도·출간 연도 등 숫자에 오류가 없는지, 기출간 도서명이 정확한지, 현재 시점에서 수정할 내용은 없는지 점검한다. 제작처에 데이터를 넘길 때는 표지·띠지·후가공 파일 분할이 정확한지, 발주 내용과 표지 사양 및 파일이 일치하는지, 디자인 관련하여 전달해야 할 유의 사항은 없는지 확인하여 보낸다. 발주서 내용(제작 사양, 발행 부수, 본사 입고 부수 등)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인쇄소에서 보내준 확인용 데이터 검토까지 끝내면 제작이 진행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감 후에 만세를 부르거나 개운해하는 편집자가 종종 보인다.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다. 마감하고 나면 한시름 놓기는 하지만, 책에 결정적인 오류가 없는지 책이 무탈하게 제작될지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제작이 끝나고 입고된 책을 확인하여 큰 문제가 없으면 불안함을 조금 덜어내지만, 독자의 손길을 충분히 탈 때까지 긴장감은 지속된다. 출간하고 분기에서 반기쯤 지나면 그제야 불안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책을 만들며 새로운 긴장이 쌓인다. 이 굴레를 반복해서 돌다 보면 이따금 형벌을 받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좋은 원고나 독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거운 마음이 씻긴다.

 

끝내 잊히지 않는 책
글을 닫는 시점이니, 연재를 시작할 때 꺼낸 이야기로 돌아가려 한다. 편집이 없다면, 책의 언어는 방향 없이 떠다닌다. 저자의 말을 독자에게 어떤 흐름과 속도로 흘러가게 할지 정하는 일이 교정·교열, 나아가 편집의 역할이다. 물론 그 물살을 정하는 데 정답이나 불변하는 길잡이는 없기에 편집자는 매 순간 고민한다.

독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책은 예상한 내용을 담고 있되 기대를 넘어서는 책일 거라 짐작한다. 이런 책은 좋은 문장에 기댄다. 은유적이든 직설적이든, 저자의 뜻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하려면 의미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와 편집자가 협심하여 문장을 깎고 고치고 다듬는다. 단단한 뼈대를 더욱 꼿꼿이 세우기도 하고, 뒤늦게 발견한 군더더기를 떨구기도 한다. 교정·교열은 남기고, 또한 지우는 일이다. 독자가 어디에 주의를 집중하게 할 것인가. 독자에게 결국 어떠한 기억을 남길 것인가. 교정·교열의 고민은 여기로 귀결하는지 모른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오래 기억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 밤, 『밤은 선생이다』에서 만난 문장이다. 황현산 작가가 쓴, 용산 참사에 관한 짧은 글이었다. 잊어버리지 않는 이가 쓴, 끝내 잊히지 않는 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어떤 독자에게는 스쳐 지나갈 문장이, 다른 독자에게는 평생 간직할 문장일 수 있다. 한 문장도 허투루 다룰 수 없는 까닭이다. 여전히, 독자를 향해 유영하는 밤이다.

 

김서연
『풍경의 깊이』, 『묵상』, 『신해철』, 『한국영화 100년 100경』, 『추사 김정희 평전』 등  인문·예술·문학 분야의
다양한 책을 만들었다. 『묵상』으로 제8회 우수편집도서상을 받았다.  한밤의빛을 열고, 첫 책으로 『말하는 눈』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