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2023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포도밭출판사의 최진규 대표가 소규모 출판의 과정을 살피고 안내합니다. 6편은 <디자인 시안이 맘에 안 들 땐 어떻게 해야 하나>입니다.
먼저 이 문제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을 의뢰할 때 의뢰인이 디자이너에게 개인적 취향을 말하면서 그대로 해주길 요구해도 될까요? 된다, 안 된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실로 여러 다양한 상황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정답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뢰인들은 흔히 자신이 원하는 걸 디자이너가 구현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건 당연한 일도 마땅한 일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모두가 자기 취향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 티브이에서 <빈집살래 시즌 3 : 수리수리 마을수리>라는 프로그램의 한 회차를 보았습니다. 마을 안의 빈집을 선정해 방송인 출연자와 전문가가 합심해 새롭게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본 회차는 전주 팔복동의 빈집을 선정해 수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송인 출연자 한 명당 건축가 한 명(혹은 한 팀)이 결합해 팀을 이뤄서 자신들이 맡은 집의 특징 파악부터 시작해 수리 방향 회의를 하는 모습 등이 나왔는데요, 특히 그중 한 팀이 출연자와 건축가 간의 의견 조율이 안 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연자는 건축가에게 다음의 내용을 요구했지요. “집을 서커스처럼 꾸미고 싶다” “집이 발랑 까졌으면 좋겠다” “더 판타지했으면 좋겠다” 이 말들을 듣던 담당 건축가들은 쉽게 응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짐작되는데요, 자신들이 수리를 맡은 집의 지형이나 위치 및 원래 가진 특징을 고려할 때 서커스, 관능미, 판타지 같은 콘셉트가 과연 맞을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건축가들이 평소 추구하는 스타일과 상당히 충돌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원래 그들은 건물이 주변 환경과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을 내는 작업을 해왔다고 소개되더라고요.
욕구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프로젝트 안에서 만나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욕구와 취향이 다른 건 그 자체로는 결코 누구 잘못도 아니지요. 모두가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작업을 공동으로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이런 갈등의 역학은 어떻게 푸는 게 좋을까요.
일단 의뢰인 쪽에서 자기 취향을 요구하기 전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취향이라는 것은 무척 갈대 같습니다. 때로 자기는 언제나 취향이 확고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그의 취향이 확고하다고 해서 작업 대상이 언제나 그 취향과 어울리는 건 아닙니다. 어떤 대상은 그의 취향과 어울리지만 또 대상이 바뀌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취향과 대상 간의 어울림의 정도는 갈대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결국 확고한 건 없다고 봐야겠지요. 때문에 디자인이란 항상 누구의 취향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대상에 대한 파악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취향보다 대상 분석이 중요합니다.
의뢰인은 대상 분석에 있어서도 디자이너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집을 수리하는 경우, 땅도 내 땅이고 살 사람도 나라면 내 의견이 젤 중요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집을 지어본 경험이 많은 건 아닐 테고 해당 환경에 대한 지식이 저절로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비교할 만한 다양한 경험치를 가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의뢰인과 전문가는 갑을관계여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이든 일방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이때 더욱 주의해야 하는 쪽은 의뢰인 쪽이지요. 자연스레 갑의 자리에 서는 쪽에서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의뢰인이 전문가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맞지만, 작업이 잘 되려면 서로가 요구 관철에 힘쓰기보다 합의에 힘쓰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의 핵심을 다음처럼 요약하고 싶습니다. “의뢰인이 취향을 가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다만 대상 분석을 결여한 취향을 ‘강요’할 때가 문제적이다.”
책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표지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서 의뢰인에게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의뢰인 측으로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담당 편집자, 부서장, 마케터까지 셋이었습니다. 자립을 위해 분투하는 청년들의 수기를 모은 책이었고 책 제목은 서정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제목에 쓸쓸하고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지요. 표지 시안에는 일러스트 작품을 넣었습니다.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해 서정적인 그림을 발주하여 표지 그림으로 넣었지요. 시안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일단 부서장은 “다 좋은데...”로 말을 시작했는데요. 이 말은 이런 회의에서 아주 불길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좋은데, 일러스트에 드문드문 들어간 파란색이 좀 우울한 느낌이네요. 책이 우울하면 안 되지 않나? 파란색을 안 우울한 색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쓸쓸한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이 아닌가? 그림 작가에게 여기서 파란색만 골라서 안 우울한 색으로 바꿔달라는 말을 어떻게 한담? 그게 과연 가능한가?’
이어서 담당 편집자가 말했지요. “전반적으로 노란 톤이 올라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럼 우울한 느낌도 없어지고 화사해 보이지 않을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노란색을 밝고 화사한 색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노란 톤을 올린다는 건 일단 배경을 노랗게 하자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건 그림과도 안 어울리고 오히려 더 우울해질...’
그때 마케터가 말했습니다. “제목 글자가 너무 작네요. 이 크기로는 전혀 눈에 안 띌 거예요. 지금 서체도 약간 손글씨 느낌인데 그러지 말고 볼드한 고딕으로 바꾸고, 글자 크기도 확 키워야 해요. 그것만 바꾸면 좋겠어요.” 저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 쓸쓸한 제목 문구를 볼드한 고딕체로 바꾸고 큼직하게 넣으면... 그건 지금까지 말한 우려들을 오히려 배가시키지 않을까...’
이런 회의의 통상적인 결말이 무언지 여러분 아시겠나요? 당시 새내기 디자이너로서 협상력이 전혀 없었던 저는 통상적인 추가 지시를 받아들였습니다. 즉 부서장을 위한 시안, 편집자를 위한 시안, 마케터를 위한 시안, 이렇게 세 가지(와 추가 변주 시안)를 만들어 다음 회의 때 보여주기로 하는 것이지요. 제가 ‘통상’이라고 말한 까닭은, 보통 디자이너가 이 후속 작업을 받아들여야 회의가 정리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책의 디자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후의 결과 또한 아마도 여러분의 예상에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열댓 개의 수정 시안을 만들어서 편집자에게 전달하면 며칠 후에 연락이 옵니다. “저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원래의 시안으로 가기로 정했습니다. 네, 젤 처음에 보여주신 거요. 그걸로 마무리 작업해주세요. 되도록 빨리...”
제가 일해온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아주 많이 반복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갈수록 고민이 들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일단 저는 의뢰인들이 취향을 말할 때 신중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자기 취향 혹은 자기 관점을 말하기 이전에 꼭 해당 작업의 특징, 성격, 본질 등을 찬찬히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모적이지 않은 회의를 할 수 있습니다. 회의에서는 저마다 자기가 무얼 좋아하고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를 말할 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이 작업이 가진 특징, 성격, 핵심 등을 이야기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회의를 더욱 회의답게 만드는 덕목입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빈집살래>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건축가에게 자신은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면서 계속 화려한 디자인을 주문했다는 얘기를 했었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의뢰인 측에서는 건축가에게 요구 사항을 분명히 말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요구 사항을 분명히 말하는 차원이 아니라 원래의 재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개인 취향을 요구한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이런 상상을 해보면 이 상황의 문제점이 더 잘 보입니다. 의뢰인이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인 경우, 의뢰인의 취향이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인 경우. 한 사람은 차분한 것을 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잠잠한 것을 원하는 경우. 이럴 경우, 디자인은 무엇을 좇아야 할까요. 난감하지요. 그렇기에 더더욱, 디자인은 의뢰인의 취향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가진 특징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합니다. 취향은 흔들리니까요.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후의 본격적인 회의들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과연 대상의 특징을 잘 파악했는가, 대상의 성격을 잘 해석했는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시안이 저러한 해석을 잘 구현했는가, 이런 점들을 따지면서 얘기를 나눠야 하는 것이지요. 파란색이 우울한 색인지 노란색이 우울한 색인지를 얘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안 회의: 제때 잘 헤어지기 위한 절호의 기회
이제 마지막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시안 회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 디자이너 섭외가 되었고, 의뢰인과 디자이너가 대상에 집중하면서 신중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면 서로 최선을 다한 것이며 아주 좋은 흐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안 회의 날짜가 다가옵니다. 디자이너가 시안을 완성했다고 연락을 해옵니다. 그런데 의뢰인이 보기에 시안의 느낌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면, 멀어도 너무 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때가 서로 제때 잘 헤어지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시안을 받아보고 인연이 아니다 싶으면 헤어져야 합니다. ‘인연’이라고 썼는데요. 의뢰인 입장에서 디자이너 작업이 자기랑 취향이 다르면 헤어지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간 함께 대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해온 시간을 전제로, 그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이 없다고 여겨질 때는 헤어지는 게 맞다는 뜻입니다. 이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저는 디자인 시안을 여러 개 만드는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우울한 파란색’이 문제가 되어 열댓 개의 수정 시안을 만든 이야기도 했었는데요, 이와 같이 회의 테이블에 참석하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수의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 일이 관행처럼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이런 쪽으로 써서는 안 되지요.
무엇보다 의뢰인은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분석을 디자이너와 꼼꼼하게 공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 시안이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그중에 잘 고르는 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대상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문제부터 관여하면서 디자이너와 협업해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 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협업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그리고 디자이너는 자신의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인 최고의 시안을 완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 결과 시안 회의에서는 그들, 즉 의뢰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만들어낸 셈인 그 시점까지의 최고의 결과물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시안 회의가 그만큼 결정적인 회의가 돼야 마땅하지요. 그리고 이때 서로가 추구하는 게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 더 늦게 전에 헤어지는 게 답입니다. 이 순간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없기 위해서는, 시안 회의 이전에 가능한 노력을 전부 기울여야 하고요. 이런 헤어짐은 의뢰인과 디자이너 서로에게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서로가 이런 프로세스(구체적으로는 디자인 시안 비용은 얼마로 한다, 시안 작업은 몇 차례로 제한한다, 등의 내용을 정해놓을 수 있습니다)를 미리 정하고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책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최진규│충북 옥천의 소규모 출판사인 포도밭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북디자이너로도 일한다. 학교에서 편집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책방무사 멤버십이다. 어떤출판연구회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