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만한 게 왔다고 생각했다. 책이 서점이 아닌 오늘의집, 텐바이텐, 무신사에서 팔린다고 들었을 때. 가짜책 트렌드 이야기다.
가짜책(페이크북)이란 인테리어를 목적으로 제작된 모형 책 상품을 말한다. 무심결에 가짜책을 집어 들어본 사람이라면, 습관처럼 책을 다루려다 당황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텍스트나 이미지가 인쇄된 페이지를 애초부터 누락한 상자❶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장식품으로서 책이라면 이미 커피 테이블 북(coffee table book)이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다만 커피 테이블 북은 주로 응접실의 장식품 용도에 걸맞게 육중하고 수려한 아트북이나 양장본 위주여서 접근성이 떨어졌다면, 가짜책은 그 표지만 베껴 무게나 가격 면에서 ‘가성비’가 좋다. 물론 방송 세트장 속 모조 책이나 견장 정본(때때로 비상금)을 넣어두는 책갑(冊匣), 책을 본뜬 북엔드(bookend), 디오라마(diorama) 속 책 미니어처도 커피 테이블 북을 오마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조들이 촬영 현장이나 애서가 등 일부의 수요만 충당했다면, 지금의 가짜책은 보편화된 수요다.
가짜책 트렌드에 대한 비판은 애서가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가짜책이 대중들의 방뿐 아니라 서울 강남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 중국 톈진의 빈하이 도서관 등에서 진짜책의 자리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책을 신성시하는 오만함이라고 지적한다. 인형이나 조화, 레트로 CD 플레이어 등 인테리어 상품으로 제작된 다른 사물들에는 그러려니 하면서, 책만 유별나게 취급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그러니까 이 가짜책에 대한 논란은 매체 근본주의자들의 저항감에 불과할까? 텍스트가 꼭 책에 담겨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분리불안?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짜책은 진짜책의 아우라에 의존한다. 패션 산업에서 첨예히 단속하는 가품처럼 말이다. 가짜책의 ‘표지’들도 기존의 아트북들을 베낀 형태❷가 많은데, 불법 복제한 만큼 열화돼 있다. 그렇다면 지적 아우라에 대한 숭배일까? 그런데 별다른 제작 공정이 들지 않는 가짜책은 가능태로서 항상 등장할 수 있었는데, 왜 이제야 보편적 상품으로서 기획이 된 걸까. 아니면 문구형 도서 시대의 극단적인 형태? 그러니 이런 가짜의 형태로라도 사람들이 책을 소장하려는 욕구에 감지덕지해야 하나?
유구한 출판계의 위기에 무뎌져서인지, 나는 가짜책 트렌드를 접했을 때 무덤덤했다. 다만 어릴 적 집 거실 책장의 귀퉁이 기억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꽂혀 있던 낡은 위인전의 책등 이미지다. 그 책등은 흉측히 너덜거렸는데, 그럼에도 종이들은 서로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이상했다. 응당 천에만 꿰어져 있어야 할 실이 페이지들도 누비고 있다니? 이 기억의 나타남을 실마리 삼아, 가짜책이 가짜로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이리저리 따라가 봤다.
❶ 그 사이 공간에 수납이 가능하거나 접이식, 아예 가짜책 몇 개가 나란히 부착돼 나온 상품까지 형태는 다양한 편이다.
❷ 대표적으로 캐시 라이언(Kathy Ryan)의 사진책 『Office Romance』(Aperture, 2014)을 꼽을 수 있다. (편집자 주)
흥미로운 인테리어가 되기 위하여: 지적 허영에서 #지적인_느낌으로
얼마 전 독서 논쟁이 일었었다. 장강명 작가의 칼럼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하여」가 시작이었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하듯 정신의 매력을 키우려면 책을 읽자는,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이 이야기에 너도나도 나서 페이스북과 칼럼 지면에서 언성을 높였다. 2000년대 초반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의 열풍, ‘서울대 권장 도서 100권’이 교실과 각 가정 책상마다 붙어 전집 구매가 유행이었던 시대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분위기다. 나는 이 독서 논쟁의 열기를 보고 책이 지적 허영으로서 용도도 와해 중이라고 직감했다.
‘Real이 아니여도 지적인 느낌은 REAL’ 한 가짜책 판매 업체의 광고 카피다. 지적 허영조차 사라지고, 지적 느낌만을 빌리는 시대다. 개인의 매력을 돋보이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지적 허영과 지적 느낌은 공통된다. 하지만 2020년대 현상으로서 지적 느낌(다른 말로 ‘갬성’)은 책 자체도 프로필화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인스타그래머블 소비재로서 시집이 소비되고, 박제된 향기로서 이상·김소월·윤동주가 ‘북 퍼퓸(book perfume)’으로 팔린다.
독일의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Andreas Reckwitz)는 저서 『과잉 히스테리 사회, 단독성들의 사회』(새물결, 2023)에서 개인들이 매력 시장에서 독특한 프로필을 추구하는 현상으로서 ‘하이퍼 문화’를 지적했다. 모든 것이 “미학·윤리·서사·기호학·유희적 또는 창조·형성적 습득에 활용할 수 있는 객체나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하이퍼 문화는 남들이 감지할 수 있도록 시각화되는 것이 핵심이기에, 소비가 필수적이라고도 강조한다.
레크비츠 말마따나 장강명 작가가 강조하는 ‘책 읽기’는 예술과 교양이라는 부르주아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실천을 통해 내면의 미학적 세계를 민감화하는 시대의 산물이고, 가짜책 트렌드가 도래한 지금의 책 읽기는 소비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시각적 표면을 민감화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최근의 독서 논쟁은 이 두 에토스가 부대끼며 불붙은 화제다.
또 다른 가짜책 판매 업체의 카피. ‘허전했던 공간에 감성을 더해주는 감성 인테리어 소품 모형 가짜책 10종’. 이처럼 ‘허전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울 이미지로서 감성을 제시하는 것은 오늘의 집(뿐 아니라 衣·食) 산업의 역할이다. 요즘 사람들은 카페도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감성을 구매하고 충전하기 위해 간다(그래서 메뉴판의 ‘미숫가루’에 가짜 영어라도 동원해서 ‘M.S.G.R.’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거다).
자아 미학화 프로젝트에서, 모든 것에서 미학적 자원을 발견하는 오늘의 집이 존재의 집이 됐다. 굳이 인스타그램에 인테리어 이미지를 업로드 해 남들에게 ‘좋아요’를 당기지 않더라도, 집은 응당 스튜디오처럼 아름다워야 거슬리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오늘의 집도 다 같지 않다. 공간-자본이 부족할수록 가짜책 들이기 자체가 사치가 된다.)
무덤화되는 책들
강조하건대, 가짜책 흐름은 결국 피상적인 물신 숭배니 태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태울 능력도 없거니와 태우고 싶지도 않다 — 내 방에도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문학동네, 2021) 표지를 본뜬 가짜책이 고이 비치돼 있다). 독일 작가 미할리스 피힐러(Michalis Pichler) 식으로 말하자면, 외려 책에 대한 ‘물질적 애정(Materalzärtlichkeit)’을 더 밀고 나가야 한다. 피힐러는 그의『출판 선언문 출판하기』(미디어버스, 2019)에서 책의 물질적 애정에 관해 “다량의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료와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를 의식적으로 조정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나아가 “종이, 잉크, 타이포그래피부터 포맷과 제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성의 측면들은 다양한 구조적 요소들(페이지네이션, 표지, 마지막 장, 여백 등)을 넘어 심지어 유통 양식까지도 책의 가치에 기여한다”고 급진화한다. 내 식으로 번역하자면 자아-시각중심주의에서 누락된 ‘사회적인 것의 재단선’을 재발견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코끝으로 지적 페티시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려는 출판계의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❸들을 쫓아야 한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출판계에 벌어진 일들은 —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지원 관련 사업들에 대한 예산 삭감, 출판진흥원과 한국문학번역원을 겨냥한 감사 착수,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출판협회 회장 등에 대한 수사 의뢰, 과거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던 시절 문체부 장관으로 재직한 인사의 문체부 장관 후보 내정, 그리고 이곳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의 용도변경 및 입주사 퇴거 시도까지 — 책을 ‘권(volume)’이 아닌 ‘개(quantity)’로서 인식하는 이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책을 책이게 만드는 하이퍼링크들을 단절시키는 일들이었다. 권으로 엮이지 못한 출판에는 지은이가 없다. 엮은이도 없다. 펴낸이도 없다. 디자이너도 없다. 출판사도 없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시민이 텅 비어있다.
얼마간 만나던 남자 이야기 하나. 그가 무심코 발언한 단어 하나로 이별을 예감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전송한 내 방 책장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답했다. “와, 책무덤이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그의 말이 옳았다. 내가 습작 시기부터 몇 년간 고르고 골라서, 빌릴 책과 그러지 않을 책, ebook으로만 볼 책과 종이책으로 읽을 책을 신중히 분별해서 사들이고, 주제별 혹은 추억별로 꽂아둔 — 나만의 ISBN으로 분류한 책들에 대해 그는 어떤 촉점도 없었다. 아무리 잉크가 갓 마른 책들로만 꽂아 두었어도 책들은 더미(dummy)처럼 보였을 것이다. 만약 내 책장이 가짜책으로 꾸며져 있었다면 그와 좀 더 만날 수 있었을까? 그랬을 것이지만, 그 하이퍼링크는 이미 내가 아니다.
결국, 언제나, 항상, 맥락이다. 지금의 가짜책은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탈독자화가 가속화되는 사회에 딸린 각주일 수밖에 없다.
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주인공. 18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가상의 인물로, 초인간적 후각을 타고났지만 정작 무(無)체취이기에 인간답지 못한 존재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결국 그르누이는 타인의 체취를 추출하고 간직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벌인다.
도래할 페이지
“그러므로 그래도 결국 샴페인 애호가가 옳은 것이다. 병이 아니라 샴페인이 중요하다. 샴페인 애호가는 어떻게 하든 간에 머지않아 병 파편에 베일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 출신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의 이 통찰을 빌린다면, 어떻게 하든 간에 프로필 문화로서 가짜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는 여전히 ‘진짜책’을 읽고 쓸 수 있다. 다만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까.
방금 페이지를 열다가 갈피 하나가 떨어졌다. 반듯이 말려져 있는 시간. 그리고 피어오르는 우주.
바벨의 도서관이라면, 그 묘안이 쓰인 책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의 집이 아닌 무한한 집에 꽂혀 있을 것이므로. 그 우주의 폭은 결국 인간의 상상력만큼이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그 페이지들을 넘겼다가 접고, 다시 펼치려는 우리들의 손길일 것이다.
도우리 | 자연과 마찬가지로 숨기기를 좋아하는 일상에 대해 써 왔다. 2023년 교보문고 세계 책의 날 16인의 작가에 선정되었고, 현재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 삶의 실감을 살리는 비판적 관점을 지향하며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한겨레출판, 2022)를 출간했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