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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아카이브 [BASIC] 협업하는 짜릿함
2023-11-30 / 최진규 / 포도밭출판사 대표

[BASIC]
2023년 PLATFORM P 웹진에서는 포도밭출판사의 최진규 대표가 소규모 출판의 과정을 살피고 안내합니다. 연재의 마지막 편인 이번 원고는 <협업하는 짜릿함>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협업’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책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주 다양한 협업이 벌어집니다. 아무리 혼자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1인 출판사라고 해도, 필연적으로 협업을 통해 작업을 해내갈 수밖에 없습니다. 협업은 출판 일의 대전제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조금 살펴볼까요.

1.
첫째로, 우리는 항상 저자와 협업해야 합니다. 저자가 집필을 마친 후 출판사로 보내온 원고를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목들을 바꾸고, 구성을 조정하고, 원고를 매만지는 과정을 거치지요. 그러다 보면 저자와의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수입니다. 저자와 편집자가 잘 협력할수록 책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자와의 긴밀한 협업은 책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협업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와의 원활한 협업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출판계 금언 중에 이런 말이 있는데요. ‘같은 원고로 열 사람의 편집자에게 책을 만들게 하면 열 권의 다른 책이 만들어진다.’ 같은 원고로 작업을 해도 다른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편집자가 만들어가는 편집의 방향성이 책의 완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겠지요. 이런 이유로 인해, 아무리 좋은 저자와 좋은 편집자가 만나 책을 만든다고 해도 서로 바라는 방향성이 다른 경우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이렇게 만들고 싶은데 편집자는 저렇게 만들고 싶은 경우가 꽤 빈번하지요. 꼭 누구 말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꼭 누구 말만 따라야 하는 법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어서, 일단 서로 잘 합의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어찌 됐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이유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저자가 여럿이면 작업은 몇 배로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저자마다 생각이 다른 경우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일이 크나큰 과제가 되기 때문이지요. 가장 기본인 저자와의 협업부터 난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잘 풀어나가는 일이 또한 편집자의 주요 업무입니다. 

제 생각에 이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중심에 있으며 출간 업무의 핵심에 있는 편집자가 자기중심성을 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편집자가 저자의 의견이든 회사의 의견이든 잘 받아들이되 결국엔 자신이 지휘해나간다고 생각하면서 중심이 되어 과정을 이끄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너무 자기 맘대로만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럼에도 자신이 이끌어나간다는 생각을 지니고서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자 의견이 중요하지만 저자 뜻에 휘둘리게 되면 책은 산으로 갑니다. 회사 의견을 잘 반영해야 하지만 회사 뜻에 휘둘리다 보면 책은 또 산으로 갑니다. 그럼 편집자 말만 정답이냐. 당연히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이때 해당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과업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입니다. 그러니 본인이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둘째로, 우리는 항상 제작처와 협업해야 합니다. 자신이 직접 종이를 수급하고, 인쇄기를 돌리고, 제본기를 돌려서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획, 편집, 디자인 일을 도맡아할지라도 제작 전반의 일들까지 도맡을 순 없지요.

제작처와 출판사가 손발이 잘 맞는 사이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이 점의 중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데요, 불가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상당히 곤란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소위 제작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그렇죠. 비록 작은 사고라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일정이 늦어지고, 일정이 늦어지는 것에 따른 추가 업무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만약 손해 배상이 필요한 수준의 사고가 벌어진다면? 간단히 생각했던 제작 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으로 바뀌기 십상입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작처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충분한 교감을 만들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작처와의 사이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가깝지만 만만하지 않은 친구 사이 같으면 좋은 것 같습니다. 일단은, 뭐든 바라는 게 있는 경우에 서로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할 정도의 친밀함이 필요합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때로 제작사양이 매우 복잡한 책을 발주할 때도 있고, 자신이 봐도 무리다 싶을 정도로 급하게 책을 완성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탁하기가 너무 꺼려진다면 일이 힘들어지겠지요. 그렇다고 ‘나는 일을 맡기는 출판사니까 내가 해달라면 해줘야지’ 식으로 나가도 안 됩니다. 그런 ‘갑질’은 비웃음을 사기 쉽습니다. 그러니 결국엔 가까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간혹 제작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고가 났을 때의 후처리는 무척 곤혹스러운 과정입니다. 저는 이때도 ‘가깝지만 지킬 건 지키는 친구 사이’처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변상 책임이 발생했을 때 변상 받을 것은 분명히 받되, 제작처의 노력을 쉽게 무시하거나 제작처의 역량을 함부로 비난하는 행동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되 일은 확실하게. 무척 간단한 말이지만 현장에서는 또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전적으로 믿고 일을 맡길 제작처와 일을 하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작처의 역량만 중요한 게 아니고 나의 역량이 더욱 중요합니다. 서로 가깝지만 신중한 사이가 되어서 서로를 위하는 노력을 해야 제작 사고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게 약간 인간관계랑 비슷해서, 서로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고, 어느 정도 손발이 맞았다고 해도 변수는 또 계속 생깁니다. 그러니 제작처와의 관계에는 늘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래 사귀고자 하는 친구처럼 말이죠.

3.
셋째로, 우리는 항상 서점과 협업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출판 마케팅 활동 중 가장 비중 있는 것이 광고일 때가 있었습니다. 주요 일간지의 좋은 지면에 큼직하게 책 광고를 하면 바로 그 주에 해당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요. 신문이나 잡지 광고가 거의 즉각적인 홍보 효과를 일으킬 때가 있었죠.

지금 출판 마케팅에서 가장 비중이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굿즈 이벤트와 더불어 서점에서 여는 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소규모 서점들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독자와의 만남, 저자 사인회, 독서모임 등)은 책의 재미와 의미를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출판사와 서점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일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말은 쉽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하면 또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서점에서 저자가 강연을 하는 행사 기획을 한다고 할 때, 저자에게 행사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사실 아주 유명한 저자가 아닌 경우 행사 자체에서 행사비를 충당할 만한 이익이 나기 어렵습니다. 행사에서 팔리는 책도 수어 권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껏 열심히 행사를 하고도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남는 수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파생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그도 분명치 않고요. 그럼에도 책을 내놓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기에 또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럴 때도 서점과 접촉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는 게 좋습니다. 소규모 출판사와 소규모 서점이 서로의 여건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방법을 찾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의외의 수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 중 하나로 기획해 저자 강연회를 연다거나, 혹은 처음엔 출판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다음번에는 서점이 손해를 감수하는 식으로 협의해 두 번의 행사를 진행한다거나, 혹은 저자의 단골 서점에서 행사를 기획하여 저자 행사비 없이, 대신 일종의 파티처럼 행사를 연다거나. 쉽진 않지만 다양한 방식을 궁리해볼 수 있습니다.

4.
저자, 제작처, 서점과의 협업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일하는 1인 출판사라고 해도 협업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협업은 때론 어렵고 고되지만, 종종 설레고 짜릿한 일입니다. 출판일 역시 늘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결국 책 만드는 일도 내가 누구와 어떤 협력을 하는지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흔적이 알게 모르게 책에 새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책상 앞에 앉아 원고와 씨름하는 일인 동시에, 같은 출판 산업에 속해 있는 동료들과 작업 현장에서 열심히 마주치고 어울리는 일입니다. 그러한 협업의 짜릿함도 많이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8회의 연재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최진규│충북 옥천의 소규모 출판사인 포도밭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북디자이너로도 일한다. 학교에서 편집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책방무사 멤버십이다. 어떤출판연구회 연구원이다.